[imazine] 돌담길 따라 ③ 돌담의 재발견, 상도문 돌담마을

김희선 2021. 4. 1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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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는 설악산, 앞에는 쌍천..500년 된 역사·문화 마을

(속초=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설악산 초입에 있는 상도문 돌담마을은 500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마을이다. 설악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앞으로는 대청봉에서 발원한 쌍천이 흐르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다.

도문(道門)이란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전해 내려온다.

신라 때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신선의 안내로 설악산으로 향하던 중 이곳에 이르자 갑자기 숲속에서 맑고 우아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무상무아의 불법을 아뢰는 듯한 소리에 도통의 문이 열렸다고 해서 도문(道門)이라 불렀다고 한다.

양양군 강현면 강선리에서 내려온 신선이 이곳에서 설악산으로 가는 길을 물은 뒤 설악산 와선대에 누워 놀다가 비선대에서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도 있다.

이곳에서 길을 물었다고 해서 도문(道問)이라고 하던 것이 도문(道門)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수도객들이 도를 닦기 위해 설악산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라고 해서 도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상도문 돌담마을 [사진/전수영 기자]

상도문 돌담마을 탐방은 속초 8경 중 하나인 학무정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속초도문농요전수관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소나무 숲이 우거진 야트막한 언덕 위에 조그만 정자 하나가 눈길을 끈다. 정자에 오르니 붉은빛을 띤 금강송들이 구불구불 학이 춤추는 듯한 형상이다. 그래서 학무정이라 이름 붙였나보다.

학무정은 구한말 성리학자인 매곡 오윤환(1872∼1946) 선생이 1934년 만든 정자다. 정자가 육각 모양이어서 육모정이라고도 불린다.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에 반대하고 3·1운동에 앞장섰던 오윤환 선생은 이곳에서 선비들과 글을 짓고 시를 읊으며 후학을 양성했다.

지금은 물길이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학무정 앞으로 쌍천이 흘러 풍광이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오윤환 선생은 쌍천 주변의 아홉 명소에 이름을 붙이고 구곡가(九曲歌)를 지었는데, 그중 2곡이 학무정이다.

학이 춤을 추는 듯한 송림 너머로 매곡 오윤환 선생이 만든 학무정이 보인다. [사진/전수영 기자]

학무정 아래쪽에는 비석 두 개가 놓여 있다. 속초에서 충효를 상징하는 인물인 이재 박지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망곡터비와 충효비다.

그는 헌종이 승하하자 이곳에서 삼시세끼 상을 올리면서 삼년상을 지냈다고 한다.

고종 30년에는 이곳에 그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각이 세워졌다. 정려각은 이후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대신 후손들이 세운 충효비가 남아있다.

학무정에서 내려오면 마을 반대편으로 둑길이 펼쳐진다. 둑에 올라서면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쌍천이 보인다. 뒤를 돌아보니 설악산의 수려한 봉우리들이 손에 잡힐 듯하다.

쌍천은 원래 마을 앞으로 흘렀는데 1954년 큰 수해가 난 뒤 마을 바깥쪽으로 물길을 돌렸다고 한다.

제방을 따라 5분쯤 하류 쪽으로 내려가면 사발을 엎어놓은 것처럼 돌을 둥그렇게 쌓아 올린 탑이 있다. 돌로 된 돛이라는 의미의 행주석범(行舟石帆)이다.

배 모양을 닮은 상도문 돌담마을에 돛을 달아 금은보화 싣고 역동적으로 진·출입한다는 의미를 담아 돌탑을 세웠다고 한다.

돌탑은 400년 전부터 있었는데, 지금의 탑은 1954년 수해에 허물어진 것을 2013년 마을주민들이 복원한 것이다.

설악산을 병풍처럼 두른 상도문 돌담마을 [사진/전수영 기자]

둑길을 산책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즐긴 뒤 본격적으로 마을길 탐방에 나섰다. 3월 초 봄을 시샘하는 폭설이 내린 뒤였다.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쌓였던 눈 속에서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돌담 너머 서 있는 매화나무 한 그루가 아주 작은 꽃봉오리를 막 터뜨린 상태였다.

돌담 위로, 지붕 위로 소복이 쌓인 눈이 녹으며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개울물 흐르는 소리처럼 청량하다.

졸졸 눈 녹는 소리에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어우러져 귓가에 울려 퍼진다. 원효와 의상이 들었다는 맑고 우아한 소리가 바로 이런 소리가 아니었을까.

마을은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을 따라 미로처럼 펼쳐진다.

돌담을 장식한 이 조형물은 녹슨 고철과 폐품을 이어 만들었다. [사진/전수영 기자]

설악산에서 굴러 내려온 듯한 둥글둥글한 돌로 쌓아 올린 돌담은 담 너머가 훤히 보일 정도로 낮다.

신기한 것은 집마다 담은 있지만, 대문이 없다는 것. 누구에게나 열린 마을 사람들의 후한 인심을 보여주는 듯하다.

낮은 담 너머에는 고풍스러운 전통 한옥도 있지만, 대부분은 근현대 들어 지어진 개량 한옥들이다. 그래서 더 편안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마을길을 걷다 보면 돌담을 장식한 아기자기한 조형물들에 발걸음을 자꾸 멈추게 된다. [사진/전수영 기자]

느릿느릿 길을 걷노라면 돌담을 장식한 아기자기한 조형물들이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자갈에 정성껏 그려 넣은 참새와 부엉이가 돌담 위에서 지저귀고, 포동포동하게 살찐 고양이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다.

담장 위에 걸터앉아 책 읽는 소년은 녹슨 고철과 폐품을 이어 만들었다.

돌담 위를 느릿느릿 기어가는 무당벌레 가족과 달팽이 가족, 돌담 한 귀퉁이에서 힘겹게 돌을 밀고 있는 이름 모를 벌레…

곳곳에 숨어있는 조형물들을 보물찾기하듯 발견하며 걷는 것이 산책에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마을의 고즈넉함을 담은 조형물들이 산책에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사진/전수영 기자]

마을의 고즈넉함을 닮은 이 조형물들은 지난 3년간 예술가들이 이곳에 머물며 만들고 설치한 것이다. 2018년부터 추진해 온 문화마을사업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오랜 세월 묵묵히 마을을 지켜온 돌담에 주목하고, 마을을 상징하는 예술품들로 꾸민 돌담 갤러리를 조성했다.

마을 이름도 '상도문1리 전통한옥마을'에서 '상도문 돌담마을'로 바꿨다. '돌담의 재발견'인 셈이다.

마을에는 현재 20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시골 마을치고는 꽤 규모가 크다.

약 30가구가 민박을 운영하고 있어 설악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하룻밤 묵어가기에도 좋다.

주민들은 마을 방문객을 위해 천연염색 체험과 손글씨를 돌에 새기는 '스톤아트'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마을길을 걷다 보면 돌담을 장식한 아기자기한 조형물들에 발걸음을 자꾸 멈추게 된다. [사진/전수영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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