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아프간 완전 철군 공식 발표..나토도 철군하기로
[경향신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20년 간 아프간에 주둔해온 미군의 완전 철수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연설에서 아프간 주둔 미군이 5월 1일부터 철수하기 시작해 9·11테러 20주년이 되는 오는 9월 11일 이전에 모두 철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바이든 “아프간전을 다음 대통령에게 넘기지 않겠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아프간 주둔 미군을 지휘하는 네 번째 미국 대통령으로, 이 책임을 다섯 번째 대통령에게 넘기지 않겠다”면서 “미국의 가장 긴 전쟁을 끝내야 할 때이며, 이제 미군이 집으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분명한 목표로 전쟁에 나서서 그 목적을 달성했다”면서 9·11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 테러단체 알 카에다가 아프간에서 격퇴됐고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이 제거된 사실을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아프간 무장세력 탈레반과 맺은 평화협정에서 5월 1일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을 모두 철수키로 합의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철수 시한을 4개월여 늦춘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철군의 이상적인 조건을 조성하고 다른 결과를 기대하면서 아프간에 있는 우리 군의 주둔 연장이나 확장을 계속 반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9월 11일까지 완전 철군 방침이 ‘조건부’가 아니라고 못박은 것이다.
현재 아프간에는 미군 2500여명이 주둔 중이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병력도 약 7000여명이 주둔 중이다. 나토 30개 회원국도 이날 성명을 통해 동맹국들이 5월 1일부터 나토의 아프간 지원 임무 병력 철수를 시작하기로 했다면서 나토의 아프간 지원 임무를 몇 달 내로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군과 함께 나토 연합군도 완전 철수하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001년 10월 아프간 침공을 개시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철군 결정을 설명했다. 그는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아프간 주둔 미군 철군 방침을 설명하면서 미국이 개발 지원 및 인도적 지원, 안보 지원을 포함해 아프간인들을 계속해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백악관은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전 종전 방침을 발표한 뒤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전사한 미군 등이 안장된 묘역을 참배했다.
■ 아프간 완전 철군 결정은 바이든표 아메리카 퍼스트?
20년 전 상원의원 시절 아프간전을 적극 찬성했던 바이든 대통령이 20년 전쟁에 종지부를 찍기로 결단한 배경에 대해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전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높은 데다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 등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미 정치권에선 찬반 양론이 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화당은 미군이 발을 빼면 아프간에서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해 아프간이 다시 테러 세력의 온상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대체로 100% 만족스러운 결정은 없다면서 오랜 전쟁을 끝낼 때라고 환영하는 입장이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2001년 10월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아프간전 개전을 선언하자 언론 인터뷰에서 이를 적극 찬성했고, 아프간에 대한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렇지만 패퇴한 것처럼 보였던 탈레반이 되살아나고 금방 끝날 것처럼 보였던 전쟁이 장기전 양상으로 흐르면서 부정적인 태도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아프간에 친미 정권이 들어섰지만 만연한 부패와 취약한 군사력·경찰력을 벗어나지 못하자 더욱 회의감을 가진 것으로 평가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 시절 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아프간 병력 증파를 저지하기 위해 군사·안보 당국자들과 충돌을 마다하지 않고 백방으로 뛰었던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더 많은 병력을 아프간에 배치하는 것이 해법이라는 군사 당국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부통령 재직 당시 이루지 못했던 뜻을 자신이 직접 정권을 잡은 다음 실행에 옮기게 된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도 아프간 주둔 미군 완전 철군을 공약을 제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군사 당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완전 철군을 결정한 것은 미국이 당면한 위협이 20년 전 아프간전 개전 당시와 달라졌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워싱턴포스트에 “대통령은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과 도전에 우리이 에너지와 자원, 인력,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고 깊게 믿고 있다”면서 “그러려면 20년 된 아프간의 갈등을 그만두고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당국자도 전날 “대통령은 2001년과는 다른 2021년의 위협과 도전과 싸워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면서 중국과의 경쟁, 감염병 위기, 테러 위협 등을 사례로 들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강력 비판하고 있지만 아프간 완전 철군에 관한 한 사실상 같은 입장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이 아프간에서 완전히 발을 빼면 아프간에 내전이 발발하고 미국에 대한 안보 위협이 커질 수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5월 1일을 철군 시한으로 못박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토와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아프간 완전 철군을 밀어부쳤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과 협의를 강조하고 있는 점은 차이점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측면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완전 철군 결정은 ‘바이든식 아메리카 퍼스트’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예정대로 9월 11일까지 아프간에서 모든 병력을 철수시킨다면 21세기 벽두에 미국인에게 큰 충격과 희생을 안겨줬던 ‘9·11 테러의 시대’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도 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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