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 무상급식 반대'카드로 폭망했던 오세훈, '서울형 방역'카드는 어떨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주당의 ‘전면 무상급식’ 바람 속에 힘겹게 한명숙 꺾고 서울시장 재선고지 밟은 오세훈…시장직 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정치생명 타격◆
하지만 재선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그해 지방선거는 ‘전면 무상급식’ 공약으로 치고 나온 민주당의 완승이었다. 오 후보도 여론조사와 달리 한명숙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고전한 끝에 0.6%포인트 차이의 신승을 거뒀다. 그나마 여당의 체면을 세워준 그는 단숨에 유력 대선 주자가 됐다. 이후 전면 무상급식을 복지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며 포퓰리즘에 맞서는 전사를 자임했다. 특히, 지방선거를 통해 민주당이 장악한 서울시의회가 2011년 단독으로 전면 무상급식 조례안을 처리하자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대상으로 ‘선별적 무상급식’을 주장하던 오 시장은 조례안의 공포를 거부하며 맞섰다. 급기야 시장직까지 걸고 주민투표를 추진했다.
그러나 2011년 8월 실시한 주민투표의 최종 투표율은 25.7%로 개표 가능한 투표율(33.3%)에도 못미쳤다. 무상급식 문제로 무모하게 정치생명을 건 도박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쪽박을 찬 셈이다. 오 시장의 중도 사퇴로 10월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안철수의 양보를 받은 박원순 변호사가 무소속 시민후보로 나와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을 꺾고 당선됐다.
그후 10년간 정치인 오세훈 앞에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남미 페루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등 절치부심한 그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종로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정세균 후보에게 패배했다.
2019년 전당대회에서는 당 대표로 출마했으나 황교안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서는 서울 광진을에서 문 대통령의 입(청와대 대변인)이었지만 정치 신인과 다름없는 민주당 고민정 후보에게도 패해 재기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의 성추문 낙마로 치러진 보궐선거가 나락에 떨어진 오세훈에게 뜻밖의 동아줄이 됐다. 당내 경선에서 나경원을 다시 꺾고 안철수와의 단일화 관문까지 통과하더니 서울시장 3선 고지에 오르며 향후 대권 도전에 대한 입지를 다지게 된 것이다.
당선되자마자 서울시로 출근한 오 시장은 의욕적인 행보에 나섰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구멍과 사태 확산에 전전긍긍하는 와중에 ‘서울형 상생방역’ 카드를 던진 것이다.
오 시장은 지난 12일 온라인 브리핑에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률적인 ‘규제방역’이 아니라 민생과 방역을 모두 지키는 ‘상생방역’으로 패러다임을 바꿔가겠다”며 서울형 상생방역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방안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일부 영업규제 완화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가 앞서 의견 수렴을 위해 업계에 보낸 공문에는 유흥주점·단란주점·감성주점·헌팅포차 등의 영업시간은 자정까지, 홀덤펍과 주점은 오후 11시까지, 콜라텍은 일반 음식점과 카페처럼 오후 10시까지 각각 영업을 허용하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오 시장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해 자가검사키트 도입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10년 전 민주당이 선점한 무상급식 이슈에 제대로 한방 먹은 오 시장이 일률적 규제 중심의 정부 방역 문제점에 대응한 ‘서울형 방역’으로 이슈몰이에 나선 형국이다.
서울형 방역이 민생과 방역 성공이란 두 마라 토끼를 잡는다면 오 시장의 리더십과 직무능력이 돋보일 공산이 크다. 의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지난 13일 자신이 주장해온 ’상생·소통 방역’과 동일한 내용이라며 오 시장의 서울형 방역을 긍정 평가하기도 했다. “방역 전선에 구멍을 낼 가능성이 있다”는 민주당의 비판적 입장과 다른 목소리다. 신 의원은 입장문에서 “서울시와 박영선 캠프 등을 통해 그동안 여러 루트로 꾸준히 상생, 소통의 방역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왔는데 민주당에서는 활용되지 못한 정책이 국민의힘에서 채택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초선이라 힘이 없었던 것인지, 민주당 내에서의 의사결정기구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른다”면서도 “민주당 내부의 소통방식과 정책 결정 방식에 권위주의적 요소가 없었는지, 어디서 단절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쓴소리를 했다. 이어 오 시장을 향해서는 “코로나19로 어려운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계신 시민을 위해서 상생 방역 잘하십시오!”라고 격려했다.
반대로 오 시장의 구상과 달리 효과는커녕 오히려 코로나19 확산세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 될 경우 오 시장은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방역전략이 필요하다는 서울시의 입장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서울형 상생방역에 업종별 영업제한 완화 내용이 포함된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소상공인·자영업자의 피해를 야기하는 만큼 지속가능한 방역대책이 필요하다는 서울시의 문제 의식에 동의한다”면서도 “지금은 '4차 유행'이 시작되는 시점이고, 방역의 '골든타임'인 만큼 지금 이런 논의를 하는 것은 방역 완화의 신호로 잘 못 나갈 수 있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도 “지금 환자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고 더 증가할 가능성이 큰데 지금 논의하면 경각심이 풀어지고 갈등이 불거질 것”이라며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도 ‘오세훈표 생활 방역’ 구상에 부정적인 기류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13일 오 시장이 참석한 국무회의에서 “중대본 2차장이다. 지자체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경우 중대본과 협의해 달라”며 “협의를 거치지 않으면 방역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더욱 날을 세웠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4일 “오 시장의 방역 대책이 아슬아슬해 보인다.
방역 전문가들은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며 “서울시민,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방역 실험 구상”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최 수석대변인은 “'오세훈식 방역대책'이 4차 대유행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며 “정확성이 완전하지 않은 자가검사 키트를 믿다가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방역 당국의 우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서울에 거주하는 96명 중 ‘서울형 상생 방역’이 민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응답은 62.4%로 집계됐다. 민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응답은 35.1%였다. 방역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48.9%)과 ‘도움이 될 것’(47.0%)이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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