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퍼커셔니스트 박혜지 "서울시향과 '말하는 드럼' 연주..다양한 타악기 매력 놀랄 것"

박현주 미술전문 2021. 4. 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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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형수 기자 = 박혜지 퍼커셔니스트가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중 타악기를 연주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1.04.14. kyungwoon59@newsis.com


[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 = 퍼커션(percussion)은 서양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든 타악기를 총칭한다. 퍼커셔니스트는 건반 타악기의 기본인 마림바, 북 종류의 스네어 드럼, 팀파니 등 수 십개에 이르는 퍼커션을 다루는 연주자를 말한다.

오는 16~17일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협연하는 퍼커셔니스트(타악기 연주자) 박혜지(30)를 만나 이름도 낯선 퍼커셔니스트가 되기까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혜지가 협연자로 나선 '2021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1번①&②'은 15~16일 양일간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이 공연은 취임 2주년을 맞는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의 2021 시즌 첫 무대로, 벤스케가 지휘를 맡아 버르토크 '춤 모음곡'과 시벨리우스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박혜지는 페테르 외트뵈시의 '말하는 드럼'을 선보인다.

"타악기는 한계가 없다. 소리가 나는 아무 소품이든 악기가 될 수 있다. 악기가 무제한으로 있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타악기 협주곡 중 악기가 없이 하는 곡도 있다. 한 편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것이다."

박혜지는 타악기가 주목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타악기 협주곡은 현대 곡들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실험적인 작품이 많은데, '말하는 드럼'은 그 중에서도 특히 파격적이다. 이 작품은 타악기 협주자가 드럼스틱 모서리로 스네어 드럼을 두드리며 내는 '정체불명의 말'로 시작한다.

이 곡을 듣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연주자가 내뱉는 단어들의 의미다. 작곡가는 헝가리와 인도의 시를 인용해 가사로 만들었는데, 고려 가요 '청산별곡'의 '얄리얄리 얄랴성'처럼 아무 의미가 없는 단어들이다.

"연주 중 연주자가 반복적으로 단어를 여러 음정으로 말해요. 작곡가의 의도를 생각해 보면 악기한테 이 (단어들)을 가르치려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이 이렇게까지 악기랑 대화할 수 있다는 걸 묘사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 협연하는 '말하는 드럼'은 타악기 협주곡 중 규모가 가장 큰 편이다. 연주에 필요한 악기만 해도 팀파니, 심벌즈, 마림바, 차임벨, 트라이앵글 등 그나마 익숙한 것들부터 모쿠쇼(Mokusho)와 라이언 로어(Lion's roar)처럼 생소한 것도 포함한다. 심지어 이번 공연에서 박혜지는 자신의 집에서 직접 쓰던 프라이팬을 악기로 활용한다.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타악기가 다양하지 않아요. 모쿠쇼의 경우는 이번 연주를 위해 서울시향에서 구해 주셨죠. 냄비 부분의 경우 곡에 '쇠로 된 무언가를 사용해 애드립을 하라'는 부분이 있어요. 타악기 주자들이 악기를 들고 나와 제 옆에 서면 제가 그걸 가지고 애드립을 펼치죠. 저는 부엌에서 쓰던 프라이팬을 직접 사용할 예정입니다. 그을음까지 때가 묻어있는 프라이팬이죠. 하하"

[서울=뉴시스]김형수 기자 = 박혜지 퍼커셔니스트가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1.04.14. kyungwoon59@newsis.com


박혜지는 타악기의 가장 큰 매력으로 '다양함'을 꼽았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를 보러 가면 한 시간 동안 바이올린 연주만 본다. 타악기 연주를 보러 가면, 연주자가 무대에 다양하게 세팅된 타악기를 돌아가며 다채롭게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타악기하면 시끄럽다고만 생각하시는데, 타악기만큼 예민한 악기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소리도 낼 수 있다. 정말 섬세하고 아름다운 악기다. 모든 걸 나타내는 악기"라고 퍼커셔니스트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클래식에서 가장 비주류인 타악기 연주자로서, 손꼽히는 클래식 콩쿠르인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2019년 1위에 오르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대구 출신으로 어린 시절 음악가의 길로 들어선건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던 어머니때문이다. 4살에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시작했다. 어린 나이지만 자신의 전공으로 삼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9년간 열심히 수련했지만 '돈' 앞에 꿈을 접어야만 했다.

"6학년 때 서울에 있는 예술 중학교에 가려고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막상 입시 준비를 하다 보니 이사도 가야 하고 학교 등록금도 많이 들어가고…목돈이 감당이 안 될 것 같더라구요."
그렇게 박혜지는 일반 중학교에 입학했고, 꿈을 잃었다는 생각에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다시 음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우연히 드럼 수업을 들으면서다.

어머니의 지인이 수강 중인 드럼 강사가 피아노 반주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곳에서 드럼 레슨을 받게 됐다.

드럼 강사는 "너는 타악기를 해야 한다. 네가 타악기를 하면 내가 서울대까지 보내줄 수 있다"며 박혜지에게 타악기를 전공으로 할 것을 권유했다.

돈 때문에 음악을 그만두고 좌절에 빠져 있던 박혜지는 자신이 음악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직감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이를 반대하는 어머니를 단식 투쟁으로 설득했다. "퍼커셔니스트의 길로 들어선건 당시 레슨을 해 줬던 강사가 레슨비를 깎아주는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돈'은 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하지만 박혜지는 '돈'이라는 벽에 부딪칠 때마다 주저앉지 않았다.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거나 스스로 기회를 만들며 자신의 길을 열어 나갔다.

"예고를 가고 싶었지만 사정상 어려웠어요. 등록금이 비쌌으니까요. 그런데 마침 제가 가고 싶던 경북예고에서 주최하는 콩쿠르 대회가 열렸어요. 이 대회에서 입상하며 장학생으로 선발돼 예고에 들어갈 수 있었죠."

[서울=뉴시스]김형수 기자 = 박혜지 퍼커셔니스트가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1.04.14. kyungwoon59@newsis.com


이후 그는 서울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자력으로 도독해 슈투트가르트 국림음대에서 퍼커셔니스트 마르타 클리마사라를 사사한다.

박혜지는 "당시 서울대는 꿈도 꾸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울에서 레슨을 받고 서울 스타일로 연주하지 않으면 서울대에 입학할 수 없는 게 당시의 경향이었다.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원서도 내지 않으려 했는데, 학교 선생님의 등쌀에 원서만 내고 시험은 보러가지 않으려 했다"고 회상했다.

"서울대는 특이하게 심사위원인 교수님들과 지원자인 연주자 사이에 막을 치고 시험을 보더라구요.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고, 연습하듯이 연주를 하고 나왔습니다. 그러면서도 합격할 거라는 상상도 못 했기에 발표날 저녁이 돼서야 결과를 확인했어요. 합격 소식에 너무 좋아 소리를 질렀고, 등록금 고지서 버튼을 누른 후 장학생 선발 소식을 알았을 때는 기뻐서 눈물까지 나더라구요."

서울대학교 졸업 후에도 음악가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9개월 간 카페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은 돈을 갖고 또 다시 한계를 시험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 수준의 독일어만 학습한 채, 독일 유학을 꿈꾸며 2014년 12월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쥐고 있던 돈이 비행기표 값, 2개월간 시험 보러 다니기 위한 숙소비, 원서비 정도였어요. 떨어지면 악기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악착같이 시험에 임했죠."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림음대에 입학했고 "독일 엄마"인 그의 정신적 지주, 마르타 클리마사라를 만난다. "연애 상담도 할 정도로 가까웠다. 매일 레슨이 기다려졌다. 선생님은 모든 것에 있어서 저한테 완벽했다. 지금도 자주 영상통화할 정도로 엄청 가깝다"고 스승을 자랑했다.

[서울=뉴시스]김형수 기자 = 박혜지 퍼커셔니스트가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1.04.14. kyungwoon59@newsis.com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를 통해 독일에서 생계를 유지하면서 타악기 음악가로서 포기하지 않았다.

유럽에서 뮌헨 ARD 국제음악콩쿠르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에서 1등과 함께 특별상 6개를 거머쥐며 7관왕에 올랐다. 이 상이 더 특별한 이유는 1939년 창설된 이 콩쿠르가 타악기 부문을 시작한 것은 1982년이고, 악기별로 돌아가며 대회를 여는 이 대회의 특성상 타악기 부문은 10년 만에 열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르타 클리마사라 선생님 같이 미래 세대에게 음악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도움을 주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재능은 있는데 금전적인 문제로 음악을 하지 못 하는 친구들도 언젠가는 꼭 돕고 싶구요. 무엇보다도 한국에 타악기를 알리며, 현재의 '트로트 열풍'처럼 '타악기 열풍'을 몰고 올 수 있다면 좋겠어요."

퍼커셔니스트 박예지는 서울시향과 협연 후 대구로 금의환향해 29일 독주회를 연다. 스위스와 프랑스 등에서도 초청 공연이 예정돼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nam_j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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