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끄덕끄덕]헛된 욕망을 먹고사는 불가사리

이진철 2021. 4. 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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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담속 괴물 '불가사리', 시대따라 변화
전쟁속 '반전', 때론 '계층 갈등' 상징하기도
영화·드라마속 괴물은 시대 불안 반영
드라마 '괴물', 이익 위한 카르텔 추악함 폭로
[정덕현 문화평론가] 한때 우리네 민담 중 ‘불가사리’라는 괴물 이야기에 푹 빠진 적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다. 쇠를 먹고, 먹으면 먹을수록 몸집이 커지는 괴물. 불가사리가 특히 흥미로웠던 건, 구전을 통해 재해석되고 첨삭되어 만들어지는 민담의 특징 그대로 여러 버전의 이야기들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쇠붙이를 먹고 점점 커져 전국을 돌며 쇠붙이란 쇠붙이는 다 먹는 불가사리라는 괴물 이야기는 그걸 구전하는 이가 가진 당대의 욕망들을 더해 계속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어졌다. 이야기 자체도 불가사리처럼 사람들의 욕망을 먹고 점점 커지고 확산됐다는 것이다.

쇠를 먹을수록 커지는 괴물 불가사리

정하섭씨가 편역한 ‘쇠를 먹는 불가사리(길벗 어린이)’는 전쟁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모두 잃은 아주머니의 염원을 담아 불가사리가 탄생했다는 버전이다. 여기서 쇠를 먹는 불가사리는 무기까지 다 먹어치워 전쟁을 막는 ‘반전(反戰)’의 의미로 해석됐다. 반면 김중철씨가 편역한 ‘불가사리(웅진출판)’는 산 속에 사는 한 할머니의 때에서 탄생한 불가사리가 마을로 내려와 한바탕 소동을 벌이지만, 할머니가 그 등을 툭툭 치자 다시 때 뭉치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로 그려진다.

여기서 불가사리는 자본이나 돈, 욕망의 헛됨을 상징하는 존재로 해석된다. 또 고 신상옥 감독이 납북되어 만든 영화 ‘불가사리’는 북한 영화라는 프레임 때문에 ‘계급투쟁’의 측면에서 해석되곤 했지만, 감독 본인은 한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가 당시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강대국들의 핵무기 경쟁에 대한 경고였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보면 이 영화는 정하섭씨 버전에 가깝게 반전의 이야기로 불가사리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불가사리의 사례처럼 괴물은 시대의 상상력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즉 그 시대가 끄집어내는 집단적인 불안감 같은 것이 상상력을 더해 빚어진 하나의 ‘물질적 존재’로 만들어지는 것. 그래서 콘텐츠 속에 등장하는 괴물을 잘 들여다보면 당대 사회가 어떤 불안감과 위협요소들을 갖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예를 들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폐수가 만들어낸 괴생명체와 한 가족의 사투를 다루지만,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콘트롤 타워에 대한 불안감을 담고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부터 최근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진 일련의 비극들이 만들어내는 대중들의 불안감과 분노는, 그래서 ‘연가시’나 ‘부산행’ 같은 괴물체가 등장하는 영화 속에 일관되게 투영되어 왔다.

또 199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터져 나온 충격적인 연쇄살인사건들은 범죄스릴러가 점점 대중적인 장르가 되고 그 안에서 잔혹한 범죄자들이 괴물로 그려지게 된 원인이 됐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공포가 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영화화됐고, 1991년에 각각 벌어졌던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과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역시 ‘그 놈 목소리(2006)’, ‘아이들...(2011)’로 영화화됐다. 2000년대 초반에는 ‘추격자(2007)’나 ‘거북이 달린다(2009)’ 같은 작품과 더불어 이 같은 범죄스릴러들이 대거 제작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그것은 90년대 말부터 지존파 사건, 유영철 사건 같은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범죄들이 사회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앞에는 어떤 괴물이 서 있을까. 그리고 그 괴물은 우리 사회의 어떤 불안과 욕망들을 투영해내고 있을까.

최근 종영한 JTBC드라마 ‘괴물’은 문주시 만양읍이라는 가상의 자그마한 마을에서 벌어진 연쇄 실종 살인사건을 다룬 범죄스릴러였다. 이 범죄스릴러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재개발 이야기가 솔솔 피어나는 이 낙후되고 소외된 지역의 땅 속에서 유기된 사체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장면이다. 그 장면은 그저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던 이야기가 그 이면에 있는 진짜 괴물의 얼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그 괴물은 다름 아닌 이권을 가진 지역 유지는 물론이고 주민들까지 재개발에 눈이 멀어, 그 곳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사건을 부랴부랴 덮어버리게 된 비뚤어진 욕망이다.

삶의 공간으로서의 땅을 언젠가부터 돈의 가치로만 보게 된 그 욕망이 불가사리처럼 커지면서 생겨난 마을의 비극. 최근 LH 사태 등으로 불거진 부동산 투기의 참혹한 현실은 그렇게 ‘괴물’이라는 드라마에서도 그 불안의 실체를 드러낸다.

드라마 ‘빈센조’, 악당의 방식으로 악 차단 카타르시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가 끄집어내는 괴물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을 모종의 카르텔을 떠올리게 한다. 정보를 흘린 이가 있고, 그 정보를 법적, 세무적인 문제를 피해가며 활용하게 해준 전문가가 있다. 법이 약자의 편에 서지 못하고 오히려 가진 자들의 편에 서서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도 법망을 피해가며 치부하게 해주는 현실. 지금의 대중들이 마주하고 있는 괴물은 바로 이런 ‘저들끼리 연결된 세상의 부조리’가 아닐까.

tvN 드라마 ‘빈센조’는 그래서 이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을 바벨그룹과 그들 간의 카르텔로 상정하고, 이들을 모조리 불 질러 버리는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송중기)를 등장시킨다. 지포라이터에 불을 붙여 저들이 세운 불법적인 공장을 폭파시키는 장면은 이제 이런 괴물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더 강한 괴물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악당의 방식으로 악당들을 처단한다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을 열광케 하는 건 얼마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만만찮은가를 말해준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싹 다 불 싸질러 버리는 것으로 시대의 괴물들을 제거할 수 있을까.

불가사리는 버전에 따라 그 이름이 ‘죽일 수 없다(不可殺)’라는 뜻과 ‘불로 죽이는 게 가능하다(불可殺)’는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곤 한다. 후자의 의미는 해피엔딩 버전에서 주로 쓰이지만, 욕망의 헛됨을 드러내는 버전에서는 주로 전자의 의미로 쓰인다.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로서의 불가사리는 그래서 아마도 빈센조처럼 불 지른다고 사라지진 않을게다. 단순한 드라마 속 시원한 복수가 바닷물을 마시듯 더 큰 현실의 갈증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이진철 (cheol@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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