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처먹네"·"굶겨봐"..결심공판서 드러난 정인이 양부모의 '일상적 학대'

박영민 입력 2021. 4. 15. 03:36 수정 2021. 4. 1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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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모 장 씨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안아주면 안 운다"
양부 안 씨 "귀찮은 X"
2020년 3월 4일 두 사람의 문자 내용 中

생후 16개월 정인이를 학대 끝에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부모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두 사람이 주고받았던 SNS 메시지를 공개했습니다. SNS 메시지에는 입양 한 달여 만에 정인이를 귀찮아하는 정황이 담겼습니다.

검사는 이 메시지를 제시하면서 양부 안 모 씨에게 "보통 아이가 울면 안아주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안 씨는 "검사님도 아이를 키워봐서 알지 않느냐"면서 "아내랑 사적인 대화인데 이렇게 말씀하시면 ..."이라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러자 검사는 "사적이라서 본 마음이 드러난 것"이라고 되받아쳤습니다. 그러면서 "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게 입양 한 달 반 정도 됐을 시기인데도 피해자(정인이)를 귀찮은 존재로 인식한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양부는 "아이가 이미 낯가림이 심한 상태로 (입양을) 왔고, 적응이 힘들었던 건 사실"이라면서 "(지난해)3월 말부터 4월까지 아이의 짜증이 심했고 그래서 저런 대화가 오갔던 것 같다"고 메시지 내용을 인정했습니다.


■"지금도 안 처먹네" "굶겨봐"…학대 부추긴 양부

어제(14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양부모에 대한 결심공판에선 이처럼 양부가 양모의 학대를 알면서도 묵인하거나 부추긴 정황이 담긴 증거들이 공개됐습니다.

검찰이 공개한 증거에 따르면 지난해 3월쯤 양모가 '오늘 온종일 신경질. 사과 하나 줬어. 폭력은 안 썼다' 라고 메시지를 보내자, 양부는 '짜증이 느는 것 같아'라고 답했습니다.

또, 양모가 '지금도 (음식을) 안 처먹네'라고 하자 '온종일 굶겨보라'고 답장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정인이가 콧물이 나고 기침을 하는데도 양모는 '얘(정인이)는 기침도 장난 같아. 그냥 두려고'라는 메시지를 양부에게 보냈습니다. 그러자 양부는 '약 안 먹고 키우면 좋지'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러면서도 '머리가 아파서 약을 먹고 자겠다'는 양모에게는 '자기는 먹고 자요'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검찰은 이같은 메시지 내용을 볼 때 양부가 양모의 학대를 인식하고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양부는 자신의 성격 때문이라며 반박에 나섰습니다.

안 씨는 "검찰이 제시한 SNS 대화는 대부분 회사에 있는 시간에 일일이 대응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낸 것"이라면서 "(아내가 짜증을 내는 상태에서) 바른말을 하면 화를 돋우기 때문에 일단 제가 (기분을) 맞춰주고, 집에 와서 바른 방향으로 이야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안 씨는 또, "와이프가 (정인이에 대한) 정이 없고, 스트레스 받았다는 걸 알지만, 아이를 이렇게 때리는지 몰랐다"면서 "알았다면 이혼해서라도 말렸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제(14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양모에게 사형을 구형하자, 환호하는 시민들.


■양모 '학대치사'로 기소했던 검찰…결국 '사형' 구형

검찰은 양모 장 씨에 대한 피고인 신문에서도 일반적인 부모와는 다른 점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검찰이 공개한 영상에는 양모 장 씨가 잠에서 깬 정인이를 멀리 세워두고 걸어오라고 지시하는 상황이 담겨 있었습니다.

검사는 "어린 자녀가 자다가 일어나면 다정하게 불러야 하는데 왜 명령을 하느냐"고 묻자 장 씨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검사는 "이건 피해자(정인이)를 무시하는 태도"라면서 "보통 부모는 영상을 촬영하면 귀여운 모습을 담는데 이 영상은 무서운 목소리로 오기 싫은데 오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검사는 또, 사망 당일 잠에서 깬 정인이가 활동하다가 갑자기 졸음이 오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 눕혀둔 상태로 외출했다가 돌아왔다는 양모의 진술에 대해서도 '보통 엄마라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장 씨는 "그렇게 생각한다"면서도 "(그런 상황 전에) 제가 (정인이를) 때린 건 맞지만,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울먹였습니다.

검찰은 두 사람에 대한 피고인 신문을 끝난 뒤, 구형하기 위해 PPT를 화면에 올렸습니다.

이 PPT에는 양부모가 정인이를 입양해서 상습적인 폭행 등 학대를 하다가 장 씨가 정인이에게 강한 둔력을 가해 사망했다는 내용이 주제별로 담겨 있었습니다.

입양 전 정인이의 모습과 입양 후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어두워져 가는 정인이의 사진이 화면에 나올 때는 방청석 곳곳에서 울음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일반적인 보호자라면 이런 식으로 피해자(정인이)를 취급하는 걸 상상도 못 할 텐데 장 씨는 피해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관심도 없고 무책임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선 공판에 증인으로 나왔던 법의학자, 부검의 등의 의견을 제시하고, 장 씨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피해자의 건강 상태가 악화된 상태에서 발로 강하게 밟는 경우에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반적인 성인이라면 당연히 인지했을 것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면서 장 씨에게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동기관 취업제한 명령 10년, 전자장치 부착 명령 30년, 보호관찰 명령 5년을 함께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또, 양부에게는 징역 7년 6개월과 아동 관련 취업제한 명령 10년을 구형했습니다.


■"두 딸에 감사하다"…양모 '육아 일기' 공개한 변호인단 '혐의 부인'

앞서 피고인 신문에서 장 씨가 쓴 육아 일기에는 아이에 대한 감사함과 애정이 담겨 있다며 혐의를 부인했던 양부모 측 변호인은 "지속적인 폭력은 있었지만, 사망 당일 아이의 배를 발로 밟았다는 사실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혐의를 거듭 부인했습니다.

누적된 폭행으로 장간막과 췌장이 파열되면서 숨졌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살인의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변호인은 검찰의 구형에 대해서도 "억울하다고만 얘기하지 않겠다"면서도 "피고인은 피해자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반성하고 있다"고 재판부에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중형 선고는 불가하겠지만, 양형기준 등을 참고해 최대한의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말했습니다.

변호인은 이어 안 씨의 방임 혐의 등에 대해서도 "아내가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고, 그 과정에서 육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지 학대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고 밝혔습니다.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이거나 얼굴을 감싸 쥐기도 했던 장 씨는 최후진술에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 집착이 됐다"면서 "절대로 애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울먹였습니다.

그러면서 "아이의 부족함을 감싸 안아주지 못하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줘 무릎 꿇고 사죄한다"고 말했습니다.

안 씨도 직접 적어 온 종이를 보며 "이 자리에서 제 이야기 하는 것조차 죄스럽다"면서 "첫째만 아니라면 제 목숨으로 대신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 저는 못난 남편이다. 그리고 나쁜 아빠다. 선처라는 말은 입에 안 올리겠다. 평생 속죄하며 살겠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들에 대한 선고 공판은 다음 달 14일 오후 2시에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박영민 기자 (youngm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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