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철학자 탁석산 "국뽕을 뛰어넘자"

유석재 기자 입력 2021. 4. 15. 03:06 수정 2021. 4. 15.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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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신간 '한국적인 것은 없다'

“한국적인 것, 한국만의 고유한 문화가 과연 있는가를 저는 의심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적인 문화’가 아니라 ‘수준 높은 문화’입니다.”

철학자 탁석산(65)이 돌아왔다. 2000년 ‘한국의 정체성’에서 “‘서편제' 보다 ‘쉬리’가 더 한국적인 영화”라는 도발적 주장을 했던 그는 최근 신간 ‘한국적인 것은 없다: 국뽕 시대를 넘어서’(열린책들)를 냈다. 2016년 ‘한국의 정체성 2’ 이후 5년 동안의 침묵을 깬 셈이다. 그동안 뭘 했느냐는 질문에 “한국인을 위한 서양철학사 책 집필을 위해 틀어박혀 공부하고 있었다”고 했다.

새 책 '한국적인 것은 없다'를 쓴 철학자 탁석산씨는“문화적 성취를 해 놓고 굳이‘한국적인 것’을 붙이려는 강박관념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제목만 보면 예전 책과 모순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한국만의 뛰어난 전통 문화가 있다거나, BTS나 블랙핑크가 한국의 우수성을 증명한다는 과도한 의미 부여에 반대하는 것”이라며 21년 전과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문화는 인공 식물입니다. 이식하고 물을 주고 돌봐야 하는 것이죠. 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국적이 아니라 수준이고, 문화 수출이 아니라 수입에 훨씬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수입이 더 중하다고? 그는 “문화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 목숨을 걸고 피 터지게 노력해서 높은 곳의 문화를 들여와 발전시킨 것”이라며 붓두껍 속에 목화씨를 숨겨 들여온 문익점을 상기해 보라고 했다. 그렇게 힘들게 문화를 수입해야 하는 이유는 “문화는 뮤지컬 감상이나 시 낭송을 넘어서서 시대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이나 학문·가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통 한국 고유의 문화라고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그다지 ‘고유’하지 않다는 점도 그는 지적했다. “샤머니즘은 다른 곳에서도 인류가 무질서를 처리해 온 방법 중 하나입니다. 미술에서 보이는 ‘무기교의 기교’는 오래 전 중국 당나라에서 등장했던 개념이죠.”

전통에 대한 집착은 건축에서 한옥에 대한 과도한 찬사로 나타나지만, 온돌 보일러를 설치하고 발코니와 다용도실이 마당 역할을 하는 아파트야말로 이미 한국적인 문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 초 오키나와 물소를 토종 소와 교배시켜 지금의 한우가 됐듯, 어떤 문화든 들어와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 나라 문화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 문화의 독자성을 굳이 찾으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문화 수입과 질 제고에 더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탁씨의 명함 속 직함은 뜻밖에도 김승우·김남주·예지원 등이 있는 연예기획사 ‘더퀸’의 고문이다. TV 시사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취업하게 됐다는데 “주로 하는 일은 말동무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원고지 1500매 분량의 서양철학사 집필을 내년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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