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원한 전쟁’ 아프간서 20년만에 손뗀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2021. 4. 1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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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난, 이 전쟁 치르는 4번째 대통령… 다음 대통령에게 안넘길 것”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 백악관에서 의회 블랙 코커스 의원들과 면담하고 있다. /백악관 풀기자단

미국 바이든 정부가 미 역사상 가장 긴 전쟁, ‘영원한 전쟁’으로 불리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4일(현지 시각) 오는 9월 11일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 3500여 명을 모두 철수하는 계획을 발표한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이 13일 보도했다. 오는 9월 11일은 아프간전을 촉발한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지 꼭 20년이 되는 날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을 통해 먼저 공개한 연설문에서 “미국이 계속해서 병력 자원을 (아프간에) 쏟아부으면서 (지금과)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며 “나는 아프간 전쟁을 치르는 넷째 대통령인데, 이 책임을 다섯째 대통령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병력 철수 일정을 공식화하면서 동맹국들 철군도 잇따를 전망이다.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 독일 국방장관은 14일 공영 ARD방송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도 9월까지 철군을 완료할 것”이라고 했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영국군 750여 명이 조만간 철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유럽을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이날 나토 측과 구체적인 철군 일정과 절차 등을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2월 트럼프 행정부는 아프간 무장단체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올해 5월 1일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미군은 1만2000명에서 3500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협정이 아프간 정부를 배제한 채 이뤄진 데다, 협정 체결 이후 탈레반과 IS(이슬람국가) 공격이 거세지면서 치안이 극도로 악화돼 철군 전망이 어두워졌다. 올 초 출범한 바이든 정부는 5월 1일 시한을 맞추지 못할 것으로 예고했다.

지난 2011년 아프간 주둔 미군들의 모습. 미국은 9.11 테러 이후 탈레반을 공격하며 시작한 아프간전에서 20년간 수조달러를 쏟아붓고도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AP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의 철군 결정은 코로나와 대중국 견제 등 핵심 정책에 힘을 쏟아야 하고, 임기 초가 아니면 이 문제를 매듭짓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이 온갖 위험에도 아프간 철군과 종전을 결단한 것은 미국의 관심이 중동의 대테러 전쟁에서 중국의 위협에 대한 대응,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변화 대응 등으로 완전히 옮겨졌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또 중동의 대테러 전쟁이 IS 제어로 어느 정도 일단락됐고, 탈레반의 무력 통치나 도발 위협은 현재로선 치명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바이든이 9·11 테러 20주년을 기해 종전(終戰)을 선언, ‘국내 문제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상징적 이정표로 삼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아프간전은 미국이 9·11 테러를 일으킨 국제 테러 조직 알카에다를 비호한 아프간 집권 세력 탈레반을 공격하며 시작됐다. 그간 미군 2400여 명을 포함해 아프간 민간인 등 총 16만여 명이 숨졌고, 미국은 2조달러(약 2231조원)를 쏟아부었다. 전쟁 초기 탈레반은 실각했고, 2011년 알카에다 수뇌 오사마 빈 라덴도 사살됐다. 그러나 미국이 지원해 수립한 아프간 정부는 끊임없이 약점을 노출했고, 탈레반은 취약한 민주주의와 경제를 이용해 아프간을 다시 잠식했다. 수렁이 된 아프간전에서 빠져나오려 조지 W 부시부터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등 그동안 모든 미국 대통령이 미군을 감축해왔지만 완전 철군은 20년간 이뤄내지 못했다. 철군은 미국이 무장 세력에 굴복, 아프간을 원점으로 돌려놓는 꼴이라는 지적 때문이었다. AP통신은 “바이든이 지금 결론을 내지 못하면 철군 계획이 또 무한정 지연될 수 있다며 마지막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

미 육군 부대가 지난 2020년 단계적 철수에 따라 아프간에서 떠나 뉴욕을 통해 귀국하는 모습. /NBC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간이 또다시 내전 상태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탈레반은 “약속한 5월 1일까지 철군하지 않으면 미군과 나토 동맹을 공격하겠다”고 했다. 현재 아프간은 정부군이 국토의 절반, 나머지는 탈레반과 토호 세력이 지배하고 있다.

미 정계에서도 민주당 내 진보 진영을 제외하곤 여야 모두 ‘철군이 중동의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미치 매코널 미 공화당 원내대표는 “현 상황에서 철군은 적 앞에서 패퇴하고 미국의 리더십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라며 “철군 즉시 아프간 정부가 붕괴되고 여성 인권과 교육 분야에서 미국이 20년간 이룩한 진보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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