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 봉우리들 사이로 뜨는 해..옛사람들도 감탄했을까

군산 | 글·사진 김종목 기자 2021. 4. 14.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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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군산군도와 군산시 저수지들

[경향신문]

고군산 옛이름은 군산도(群山島)다. 섬들이 산봉우리처럼 무리진 듯 보여 붙은 이름이다. 봉우리는 높지 않다. 군도 각 섬 정상에선 구릉성 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고군산은 서해다 보니 일몰이 유명한데, 해돋이도 해넘이 못지않다. 사진은 대장도 대장봉에서 촬영한 군도.

지난달 23일 전북 군산시 대장도 대장봉 정상 덱에 오르니 ‘백패킹’족들이 텐트와 침낭을 정리한다. 코로나19 이후 늘어났다는 백패킹족의 존재를 확인한다. 네 팀이 정상에서 밤을 지새웠다. 짐을 꾸려 배낭을 둘러메던 이에게 산 정상 야영이 뭐가 좋은지 물었다. “(당신처럼) 일찍 일어나 오르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웃으며 답한다.

오전 6시35분쯤 덱으로 여명이 스며들었다. 낮은 구릉의 섬들과 너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해돋이에 사람들이 감탄한다. 이곳은 해넘이로도 유명하다. 대장도는 ‘오래된 섬’이다. 선사시대 조개더미가 나왔다. 당시 사람들도 일출과 일몰을 좋아했을까. 어떤 경로로 이 섬에 다다랐을까. 훗날 고려시대 ‘명주→흑산도→군산도→벽란도’의 항해 기록은 나와 있다. 고려시대 고분군과 조선 때 봉수대 터도 남았다.

장자도에서 바라본 대장도. 저 덱 조형물은 할매바위 설화의 부부를 형상화한 것이다. 대장도 위쪽 횡경도 바위 하나는 상투에 갓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형상이라 할배바위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할배바위가 할매바위를 바라본다는 이야기를 넣었다.
사진은 일몰 무렵 신시도 대각산에서 촬영한 군도. 사진 왼쪽 고군산대교가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다.
63개 섬들 산봉우리처럼 무리 져
‘군산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돼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니 오방색 띠를 두른 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할매바위다. 옛사람들은 ‘아기를 업은 여자가 밥상을 차려 들고 나오는 것 같은 모양’이라고 봤다. 한 부인이 과거에 합격한 남편이 첩을 데려온 것을 보고 굳어 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등과도 못한 남편이 새 부인에 아들까지 낳아서 오는 것을 보고 상심해 돌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장도에선 ‘매일 아들을 등에 업고 산에 올라 한양에 과거 보러 간 남편을 기다렸다’는 설화 속 부인의 시선이 향한 것처럼 고군산군도의 섬들을 두루 볼 수 있다. 고군산군도 63개 섬 중 유인도인 대장도-장자도-선유도-무녀도-신시도-야미도가 이어진다. 고군산이 군산이었다. 군산도라 불렀다. 인조 때 이곳에 설치한 군산진과 세종 때 옥구현에 세운 군산진을 구별하려고 옛 고(古) 자를 넣어 고군산(古群山)이라고 했다는 추정이 나와 있다.

선유도 오룡묘는 뱃사람들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던 당집이다.
비응항과 고군산군도를 연결하는 새만금 방조제 길. 오른쪽 섬이 야미도다. 야미도-신시도-무녀도-선유도-장자도-대장도는 연륙교로 이어진다.

군산도(群山島)는 섬들이 산봉우리처럼 무리 진 듯 보여 붙은 이름이다. 이 명칭을 확인하기 좋은 전망 지점이 신시도 대각산이다. 사람들이 고군산대교와 군도를 촬영하러 온다. 새만금 방조제도 한눈에 들어온다. 새만금은 한때 보존과 개발 논리가 첨예하게 부딪쳤다. 지금은 개발 논리가 우세하다. 새만금개발청이 한국재정학회에 의뢰해 지난 2월 내놓은 ‘새만금사업 특별회계 설치 및 효율적 운영방안에 관한 연구’를 보면, 해상관광리조트와 해상케이블카 사업에다 새만금 경마장 사업 안도 들어 있다. 이미 “새만금에 경마공원 조성되면 부안 부동산 폭등!! 지금이 기회!!”라는 부동산업자 광고가 떠돈다.

저 연구보고서엔 외국인 카지노 사업을 특례 규정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안도 있다. 2018년 새만금 내국인 카지노가 반발에 부딪힌 뒤 나온 대안이다. 그때 내국인 카지노를 반대한 곳 중 하나가 강원랜드를 둔 강원지역 시·군과 시민단체, 정치인들이다.

전북 지자체들끼리도 다툰다. 김제시와 부안군이 새만금 3·4호 방조제의 행정지역 귀속지를 군산시로 한 정부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1호 방조제를 부안, 2호 방조제를 김제로 결정했을 때는 군산시가 반발했다. 금강, 만경강, 동진강의 물줄기와 김제평야, 만경평야의 땅줄기를 공유한 역사는 온데간데없다.

시·군의 경계와 다툼 너머 한편으론 ‘고군산군도 물이 300리 밖으로 물러나면 이곳이 천년 도읍이 된다’는 <정감록>의 ‘퇴조(退潮) 300리설’을 공유한다. 새만금개발공사가 이 문구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소개한다. 지역 부동산업자들도 이 설을 내세우며 투자를 유도한다. ‘한양-계룡산-가야산-고군산군도’ 순인데, 계룡산 부근에 세종특별자치시가 들어서고 이 설을 믿는 이들이 늘었다. 가야산은 또 언제 도읍이 될 건가 싶다.

새만금 이전 일제강점기에도 군산에선 대규모 간척사업이 벌어졌다. 후지이 겐타로의 불이흥업주식회사가 1904년 조선에 들어와 1919년부터 간척사업을 벌었다. 일본인 이주자들이 땅을 차지했다. 일본 식량 공급지 역할을 했다. 간척지에 물을 대려 만든 게 옥구저수지다. 1921년 공사를 시작해 1923년 완공됐다. 김제와 부안 사람들까지 동원해 만들었다.

고군산군도 명소는 선유도 해수욕장(왼쪽 사진)이다. 시내에선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 초원사진관(가운데)을 많이들 찾는다. 영화는 1998년 개봉했다. 군산엔 저수지가 많은데 군산 사람들이 제일로 꼽는 건 은파호수공원(미룡저수지)이다.
‘세 바위 전설’ 전해진 미룡저수지
시민들 즐겨 찾는 호수공원으로

군산 하면 바다나 섬, 방조제를 떠올린다. 저수지도 많다. 군산호수(옥산저수지), 대위저수지, 월명호수, 은파호수공원(미룡저수지)이 있다. 군산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은 은파호수공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처음 등장한다. 고려 때 축조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에도 설화가 나온다. 그중 하나가 ‘세 바위(애기바위, 중바위, 개바위)’ 전설이다. “큰 마을 살던 부자가 시주 온 승려에게 돼지 분뇨를 퍼주며 내쫓는다. 며느리가 쌀과 금은보화를 시주하면서 시아버지 용서를 빈다. 극락장생하려면 떠나야 한다는 승려 말에 어린 아들을 둘러업고 집을 나온 며느리는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지키지 못한 채 마을을 돌아본다. 그 순간 마을은 물바다가 된다.”

전국 1000여개 지역에 퍼진 ‘장자못 설화’ 유형을 따른다. 어느 지역에선 돼지똥이 아니라 쇠똥으로 변형된다. 신이 내린 금기, 집과 마을의 몰락, 인간의 변신은 외국의 신화나 설화에도 나온다. <구약> 중 ‘소돔과 고모라’에서 뒤를 돌아보다 소금 기둥으로 변한 롯의 아내가 한 예다. 인색하고 고약한 성품의 부자 징벌에 그치지 않고 착한 며느리를 시험해 벌하는 이야기를 왜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은파의 설화는 아이와 개, 승려도 돌이 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의 장자못 설화와 다르다. 이 세 바위를 형상화한 게 물빛다리다. 산책로와 자전거길, 분수와 야간 조명이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도시 ‘호수공원’의 전형을 이룬다. ‘연꽃 자생지’도 유명한데, 7월이 되어야 꽃을 볼 수 있다. 지금은 풀 죽은 연꽃 줄기만 물에 잠겨 있다.

자생지 쪽에서 발견한 건 거북이었다. 물가에 떠 있길래 살아 있나 하는 마음에 10여분을 지켜봤다. 꿈쩍하지 않았다. ‘붉은귀거북’이다.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계 위협군 중 하나다. 군산 여러 저수지에 수만마리가 산다고 한다. 군산에선 붉은귀거북포획단도 활동했다. 붉은귀거북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애완용으로 들여왔다. 1998년 7월 열린 서울대공원 제1회 동물원 사생대회 시상품 중 하나가 붉은귀거북이었다. 싫증 난 사람들이 하천이나 호수에 버렸다. 부처님오신날 방생용으로 풀어놓기도 했다. 미국 미시시피에 살다 한국으로 들어와 애완용에서 퇴치 대상이 된 거북의 경로와 운명을 떠올렸다.

군산 근대문화역사 거리의 구 제일사료 주식회사 공장. 1973년 일제 강점기 창고 자리에 다시 건물을 세웠다. 2018년쯤 바람과 노후화 때문에 2층 벽면이 무너졌다고 한다.
원도심엔 ‘근대 문화 자원’ 조성
일제강점기 시절 건축물들 밀집

군산 시내에서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은 ‘근대문화 도시’다. 해망로(海望路) 쪽 밀집한 게 근대문화 자원이다. 군산시는 2009년부터 원도심에 ‘근대문화 도시 조성 사업’ ‘1930 근대 군산 시간여행 사업’ 등을 추진했다.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구 일본제18은행 군산지점, 구 군산세관 본관 등이 내항 쪽에 있다. 1970년대 건축물인제일사료주식회사 공장 외벽엔 태극기나 안중근의 손도장 같은 걸 그렸는데, 노후화와 바닷바람 때문에 2018년 태극기 쪽 외벽 상단이 무너진 상태다.

부산, 인천, 목포, 군산에 가면 ‘일본풍, 일본식 건축물’ 보존과 활용,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여미랑(고우당)은 일제강점기에 없던 건물이다. 민가를 헐고 새로 지은 일본식 여관이다. ‘일본 가옥 체험’을 표방한다. 군산시가 민간 위탁 운영한다. 2018년엔 이 신축 문제 등을 두고 ‘식민지 미화 투어리즘’(김종수 군산대 사학과 교수)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해망로는 군산시외버스터미널 길로도 이어진다. 터미널 쪽 해망로 왼쪽엔 ‘메트로타워’니 ‘레비뉴스테이’란 이름을 단 아파트 단지가, 오른쪽엔 ‘월세방 있음’ 종이를 붙인 쇠락한 주택과 가게들이 늘어섰다. 폐가와 빈 가게도 눈에 들어왔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부동산을 둘러싼 온갖 문제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대장도까지 자전거 도로 이어져…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



군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군산군도 대장도까지 45㎞다. 대부분 자전거 전용도로가 이어진다. 터미널에서 새만금 방조제 시작 지점인 비응항까지는 산업단지 구역이라 풍경이나 공기가 좋지는 않다.

새만금 방조제 길에도 널찍한 보행 겸용 도로가 깔렸다. 10여㎞의 테트라포드와 수평선의 단조로운 길을 감내할 수 있다면, 직선의 포장도로를 질주하고 싶다면 나쁘진 않다. 고군산군도 자전거도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태가 좋다. 코로나19 이후 차량이 줄어 일반도로도 한적하다. 반나절 정도면 야미도에서 대장도의 주요 지점을 다닐 수 있다. 군산시 홈페이지(gunsan.go.kr)에서 구불길과 자전거길 지도를 다운로드할 수 있다.

‘비응항~대장도’ 구간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다. 매시 40분 비응항에서 고군산군도로 가는 순환버스가 출발한다. 접이식 자전거는 실을 수 있다.

신시도 휴양림 개장 소식을 듣고 고군산군도를 찾았다. 3월 말은 개장 초기라 예약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이후 안전이나 방역 때문에 국공립 시설 선호도도 높아진 듯하다. 지금은 5월 주말 빼고는 예약(foresttrip.go.kr)할 수 있다.

야영은 고군산군도 지정 캠핑장에서 가능하다. 군산시 측은 “산 정상 덱 야영은 금지 대상”이라고 했다.

군산 |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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