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1000만원 더 싼 외국서 사려고.. 불법송금 급증
국내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 가격이 외국보다 높은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한 차익 거래가 급증하면서 은행권에 비상이 걸렸다. 차익(差益)거래란 어떤 상품의 가격이 시장마다 다를 경우 싼 곳에서 사들여 비싼 곳에서 파는 방식으로 차익을 얻는 거래를 말한다. 차익 거래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는 자금세탁에 악용될 수 있는 데다 차익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어 은행들이 긴장하고 있다.
◇‘김치 프리미엄’ 뭐길래… “사고팔기만 해도 15% 이득”?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외국인들의 가상화폐 환치기로 의심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평소 은행 거래가 전혀 없던 외국인, 특히 중국인들이 현금 다발을 들고 지점을 찾아와 해외 송금을 요청하는 사례가 최근 급증했다”며 “서너명의 중국인이 한꺼번에 몰려와 5만달러(약 5500만원)씩 송금을 요청하는 등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외국환거래법상 사유를 소명하지 않아도 되는 해외 송금액 한도는 연 5만달러다. 위안화 송금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지점은 서울 대림동과 인천, 경기 부천시 등 중국인 밀집 지역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시중 4대 은행과 농협에서는 이달 들어 중국으로 보내는 외화 송금액이 급증했다. 4월 1일부터 9일까지 5개 은행의 개인 해외 송금액은 7억2940만달러(약 8023억원)이고 이 중 중국으로 송금된 돈이 1억1030만달러(약 1213억원)로 15%를 차지했다. 특히 이번 달 9일간 중국으로 송금된 금액은 지난 한 달 송금액(1억720만달러)을 넘어섰다.
금융권에서는 외화 송금 급증이 가상화폐 시장에서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한 차익 거래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암호화폐 가격 비교 사이트에 따르면 14일 오후 3시 30분 기준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에서는 비트코인이 6만4470달러(약 7092만원)에 팔렸다. 반면 국내 거래소인 업비트에서는 8142만원에 거래됐다. 두 거래소 간 가격 차가 14.8%(1050만원)가량 나는데, 이 차이가 ‘김치 프리미엄’이다.
차익 거래를 하는 사람들은 해외 거래소에서 싼 가격에 가상화폐를 사들인 후 이를 국내 거래소에서 팔아 차익을 남긴다. 이 과정에서 해외 거래소에 전송 수수료를, 국내 거래소에 거래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이런 부가 비용을 고려하더라도 가상화폐 가격 차 때문에 이익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김치 프리미엄이 50%를 웃돌던 2018년에는 이런 식으로 1700억원을 불법 환전해 수수료를 챙긴 환전상과 중국인이 적발되기도 했다.
◇은행들 “코인 관련 해외 송금 의심되면 거래 중단” 지침
이런 차익 거래는 국내 거주 외국인이나 유학생처럼 한국과 외국에 은행 계좌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만 가능하다. 환전·송금 시 국내외 계좌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국내에서는 가상화폐 구매 목적으로 외환을 송금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데, 외국인이나 유학생은 생활비나 유학 자금 등 명목으로 대규모 송금을 할 수 있다.
5대 시중은행은 지난 주말 일선 지점 창구에 ‘가상화폐 관련 해외 송금 유의사항’ 공문을 내려보내 거래가 없던 개인이 증빙 서류 없이 5만달러 상당의 송금을 요청하거나, 같은 증빙 서류를 여러명이 돌려 사용하는 등 의심스러운 경우 해외 송금을 거절하라고 지시했다. 가상화폐 투자를 위한 해외 송금은 현행법상 불법인데, 은행들이 이에 휘말려들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가상화폐 관련 해외 송금을 정확히 걸러낼 방법은 없다. 현재 외국환거래법상 건당 5000달러, 연간 5만달러까지는 송금 사유 등에 대한 증빙 서류 없이도 해외 송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은행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감독 당국이 가상화폐 매매 목적의 외국환거래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관리에 나선 것”이라며 “하지만 가상화폐 관련 외국환거래에 대한 세부 규정은 없어 금융 당국의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김치 프리미엄
우리나라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가격이 해외 거래소에 비해 높은 현상 또는 그 차액을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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