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혁명절'이 필요하다 / 이동인

한겨레 2021. 4. 1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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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인ㅣ충남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역사의 전환점에 혁명이 있다. <새 우리말 큰사전>은 혁명을 ①왕통의 바뀜, ②지배계급의 바뀜, ③제도·관습·문화의 근본적인 변혁으로 설명하고 있다.

혁명은 새 시대, 새 정치, 새로운 제도·문물의 도래를 뜻하기 때문에 각각의 사회는 혁명을 기념하고 축하한다. 에펠은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에펠탑을 지었고, 미국 독립혁명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서 프랑스는 미국에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했다. 멕시코를 포함한 여러 중남미 국가들에서도 독립혁명일은 국가 최고의 경축일이고 기념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혁명은 어디에 있나? 우리가 축하하고 기억해야 할 혁명은 아예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혁명 없이 왕국에서 공화국이 되었다. 왕국에서 식민지가 되고, 식민지에서 독립하면서 민주공화국이라는 국체를 갖추게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프랑스혁명, 볼셰비키혁명, 신해혁명과 같은 체제전환 혁명의 기회를 처음부터 갖지 못했다.

또한 우리는 혁명 없이 피식민지에서 독립국이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을 결성해서 국토를 수복하는 독립혁명을 기도했건만, 미국이 내려뜨린 몇발의 원자폭탄의 직접효과로 일본이 황급히 ‘무조건 항복’하는 바람에 우리의 독립혁명은 시작도 못 한 채 좌절하고, 그것이 남북분단, 민족상잔, 외세의존 등 현존하는 많은 비극적 현실의 원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자랑하고 축하하고 후세에 길이 기릴 혁명이 있다. 4·19 민주주의 혁명이 그것이다. 4·19를 모르는 젊은이들은 오늘날의 미얀마 사태를 통해서 4·19 혁명을 이해하면 된다. 총알이 날아오고, 거리로 나가면 죽을 수도 있는데, 젊은이는 거리로 나가고, 그의 부모는 애처로운 눈으로 이를 보면서도 말리지 않는다. 그것이 정의이고,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4·19 때 현실이다.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기술했다 해서 대한민국의 성립과 함께 대한민국이 실제로 민주공화국이 된 것이 아니었다. 4·19 이전의 정권(자유당 정권)은 정의롭지도, 슬기롭지도 않았다. 권력에 대한 사랑은 넘쳤으나 나라와 겨레에 대한 사랑은 많이 부족했다. 급기야 그들은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서 이승만 종신집권의 틀을 마련했고, 부정선거를 통해 이를 실현했으며, 이에 저항하는 학생, 시민에게 총질하기에 이르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향배는 대체로 선거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부정선거는 민주주의 자체를 부인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4·19 혁명 이전의 대한민국은 전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었고, 다만 일종의 준비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4·19 민주혁명의 성공은 죽음을 무릅쓴 전 국민의 승리이며 이름만 민주공화국이었던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으로 가는 전환점이며, 불의에서 정의로, 사(邪)에서 정(正)으로, 탐욕에서 절제로 가는 이정표였다. 온 국민이 하나 되어 불의에 저항하여 목숨 걸고 맞선 것은 3·1 운동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4·19 혁명이 그 후의 군사 쿠데타에 의해 유명무실해졌고 빛바랜 사건이 되었는데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느냐고. 그러나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나폴레옹 황제에 의해 왜곡되고, 신해혁명 이후 위안스카이(원세개)가 황제 자리에 오른 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두 혁명의 역사적 의미가 훼손된 것은 아니다. 4·19 혁명도 마찬가지다. 혁명 후 우리는 이 혁명의 가치를 손상하는 일들을 무수히 겪었지만, 혁명의 의미는 여전히 중대하다. 그것은 불의에 저항한 3·1 운동의 맥을 잇고 있으며, 6월 항쟁, 촛불혁명 속에 여전히 부활하고 연소하고 있다. 필자는 이 의미심장한 역사적 사건에 ‘혁명절’이라는 합당한 이름을 부여하여, 그 거룩한 정신을 현창하고, 젊은 세대에게, 우리에게도 빛나는 혁명의 역사가 있음을 일깨워줄 것을 제안한다. 나는 말한다, “혁명절이 필요해”, 아니 “혁명절을 돌려줘”. 역사는 민중의 기억 속에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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