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미·중 회담 '16분 통역'의 의미 / 곽중철

한겨레 2021. 4. 1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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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8일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의 캡틴쿡 호텔에서 열린 미-중 외교 수뇌 회담은 조 바이든 대통령 시대 미-중 신냉전 서막을 알렸다는 점에서 아직도 국내외 언론이 복기하고 있다.

미국 측 두 대표의 예정된 2분씩의 서두 발언이 끝나고 중국의 양제츠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은 역시 2분 정도로 예상됐던 서두 발언을 무려 16분이나 중간 통역 없이 마쳤는데 장징 통역사가 이를 무리 없이 우아하게 통역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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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각)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에 미국 쪽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맨 오른쪽)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오른쪽 둘째), 중국 쪽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맨 왼쪽)과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왼쪽 둘째)이 참석했다. 앵커리지/AP 연합뉴스

지난 3월18일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의 캡틴쿡 호텔에서 열린 미-중 외교 수뇌 회담은 조 바이든 대통령 시대 미-중 신냉전 서막을 알렸다는 점에서 아직도 국내외 언론이 복기하고 있다. 예정된 만찬도 취소시킨 1시간여의 첫 회동이 끝난 후 중국 언론은 특이하게도 자국 통역사의 훌륭한 통역을 칭송하면서 중국 측의 일방적 판정승 결론을 내렸다. 최근 유튜브를 보면 이번 회담 통역사들을 많은 중국 티브이에서 소개하고 있다.

중국 측 통역사 장징의 통역은 과연 훌륭했다. 미국 측 두 대표의 예정된 2분씩의 서두 발언이 끝나고 중국의 양제츠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은 역시 2분 정도로 예상됐던 서두 발언을 무려 16분이나 중간 통역 없이 마쳤는데 장징 통역사가 이를 무리 없이 우아하게 통역해낸 것이다. 미국 쪽의 영어를 알아듣는 중국 쪽에 비해 중국어를 모르는 미국 쪽에 16분은 길고도 지루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장징이 다시 16분에 걸쳐 지루하지 않게, 경쾌하고 명료한 발음과 논리로 영어로 통역해낸 것은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 다만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야 할 것은 이번 미-중 회담의 통역이 중국 측의 치밀한 연출의 결과일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번 미-중 회담 같은 중차대한 역사적 회담을 맡은 통역사는 순수한 의미의 통역사라기보다는 외교관들과 철저히 발을 맞추는 동업자이자 준외교관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중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장징은 한달 전 중국 외교부 통역국의 70여 통역사 중에서 선발되어 지옥 훈련을 거쳤다고 했다. 그동안 회담이 어떻게 흘러가고 양측이 어떤 내용으로 발언할지를 면밀히 예측하고 대비했을 것이다. 중국의 영원한 외교관으로 불리는 저우언라이 총리가 남긴 말과 같이 “입장을 확고히 하고 업무에 익숙하며 정책을 파악하고 기율을 엄수한다”(站稳立場 熟悉業務 掌握政策 嚴守紀律)는 외교의 철칙에 맞추어 통역을 준비했을 것이다. 중국 외교부에서도 완벽한 통역을 위해 모든 ‘말씀 자료’를 통역사에게 제공하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 측이 애당초 “우리의 모두발언은 의전을 무시하고 중간 통역 없이 끝까지 중국어로 마친다”는 전략을 세웠던 건지, 아니면 회담 하루 전 미국이 홍콩 사태와 관련해서 중국 측 인사 24명에 대해 제재를 발표하자 앵커리지 현지에서 그런 당돌한 결정을 내렸는지 내막을 알 수는 없다. 어쨌든 장징은 그의 앞에 놓인 노트에 가필해가며 통역을 준비했고, 아주 듣기 좋은 음성과 우아한 영어로 통역을 했으며 예상할 수 없는 두 중국 대표의 즉석 발언마저 무리 없이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해냈다. 그 자체로 칭송받아 마땅한 일이다.

한 나라의 외교력에 화룡점정이 되는 것이 훌륭한 통역이다. 우리나라 외교의 통역 역량은 얼마나 될까? 우리도 외교부의 통역 담당 부서를 강화하든지 이참에 국가통번역원을 설립하는 안을 고려할 때가 왔다고 본다.

곽중철ㅣ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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