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번식견이자 미용 실습견입니다"..무슨 일이길래 청원까지

한류경 기자 2021. 4. 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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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도 모자라 미용 실습에 고통받는 개들
한 애견미용학원의 동물 학대 실태 고발
동물단체 "문제의 학원, 고발 준비 중"
누리꾼들 "개농장 근절 위해 힘써야"
〈사진=A 씨 인스타그램 캡처〉
아래는 누리꾼 A 씨가 번식견의 시점으로, 한 애견미용학원의 실태를 고발하며 쓴 글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 내용을 최대한 반영했습니다.

저는 번식견입니다. 그리고 숨겨진 저의 또 다른 이름은 미용 실습견입니다.

번식견 농장에 사는 저는 오늘 임신할 수 없는 기간 동안 일하는 미용학원에 왔습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살이 베이고 귀가 잘리고 심지어 혀도 잘립니다. 가위에 눈이 찔려 앞을 못 보는 친구도 있습니다. 관절이 뒤틀리고 무섭게 생긴 기계가 살을 파고들어 피가 났습니다. 너무 무섭고 두려웠지만, 오늘도 억지로 참고 견뎠습니다.

날이 추운데 찬물에 목욕해야 한대요. 다른 친구가 씻느라, 그리고 사람들이 손 씻느라 더 이상 따뜻한 물이 없대요. 어차피 늘 그랬는걸요. 같이 온 친구 2~3마리 빼곤 다들 늘 찬물로 목욕했으니까요.

전 그래도 오늘은 재수가 좋은 편입니다. 오늘 배정받은 사람은 따뜻한 물 없다고 발 동동 구르고 화내다가 결국 정수기 물 섞어서 사용해줬어요. 헹굴 땐 그것마저 안 돼서 거의 찬물로 헹궜지만요. 옆에 친구는 5분이고 10분이고 찬 샤워기를 몸에 붙이고 있어요. 친구가 얼어가고 있어요. 여긴 환기 땜에 창문을 열어놔서 가만히 있어도 추운 곳이랍니다. 전 팔다리가 다 굽어서 이렇게 미끄러운 탕 속에 들어오면 너무 힘들어요. 옆에서 털을 말리던 친구는 눈 쪽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요. 너무 아픈 뾰족한 빗으로 살을 긁었대요.

우린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겠죠. 우리에겐 희망을 꿈꾸는 건 사치겠죠.

〈사진=동물단체 '유엄빠' 인스타그램 캡처〉
■ 번식도 모자라 살 찢기고 다리 뒤틀리고…"아프면 아픈 대로 내버려 둬"

평생 새끼만 낳으며 고통 속에 살아가는 번식견들, 이들의 고통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비임신 기간엔 미용 학원으로 끌려가 인형처럼 다뤄지고, 아파도 제때 치료받지 못하며 지속적인 학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애견미용학원에 다니던 A 씨는 실습한다는 이유로 고통 속에 학대받는 개들을 더는 마주하기 힘들어 결국 학원을 관뒀습니다.

A 씨는 학원에 가는 날이면 '오늘은 어떤 미용을 배울까'가 아니라, '어떤 더 불쌍한 아이를 만날까' 두려웠다며 해당 학원의 실태를 알렸습니다.

A 씨에 따르면, 이 학원에선 실습견들이 날카로운 가위에 다치고 피 흘리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실습 견으로 동원된 개들은 어디 한 군데 멀쩡한 곳이 없는 번식견들입니다. 번식하지 않는 기간엔 학원으로 끌려와 지속해서 학대당했습니다. 상처가 나도 치료받지 못하는 건 당연했습니다.

강사는 실습 교육을 위해 개들을 기죽인다며 다리를 비틀어 꺾고, 목이 돌아가 똑바로 앞을 볼 수 없는 개들은 억지로 목을 꺾어 앞을 보게 했습니다. 한쪽 다리가 없어 제대로 설 수 없는 개에겐 똑바로 서지 않는다며 윽박질렀습니다.

거센 빗질로 얼굴에 피가 나는데도 아주 심한 정도만 아니면 괜찮다는 식으로 넘기고, 피나는 개에게 약을 바르려고 하면 강사는 '다치면 다친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그대로 놔두라'며 손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귓속 털을 관리하는 수업에선 '어차피 아플 거 한꺼번에 다 뽑는 게 낫다'며 털을 뽑았고, 개는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처절하게 울었습니다.

강사의 잘못된 교육 때문이었을까. 일부 학생들은 강사한테 배운 대로 뜻대로 안 되면 다리부터 비틀거나, 악담을 퍼붓거나, 냄새난다고 아이를 막 다루기도 했습니다.

A 씨는 학대에 시달려 삶을 다 놓은 듯 누구에게도 눈길 주지 않고 허하게 누워 있던 개의 모습이 떠올라 괴롭다고 호소했습니다. 오죽하면 개들이 죽어야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진=A 씨 인스타그램 캡처〉
■ "동물의 생명 존중과 관리 방법을 알려야 할 교육자들이 폭력과 학대 가르쳐"

동물보호단체 '유기동물의엄마아빠'(유엄빠)도 해당 학원의 실태를 제보받고 고발에 나섰습니다.

단체에 따르면, 이 학원에는 일주일에 두 번 각각 30마리씩 번식견이 실습견으로 동원됩니다. 대다수가 치료가 시급한 개들입니다.

단체는 "제왕절개 후 실밥도 풀지 않은 아이, 턱이 으스러져 혀가 밖으로 흘러내리는 아이, 창살에 발가락 사이가 찢어져 피가 흐르는 아이, 네 다리가 굽어져 서 있기도 힘든 아이, 이런 아이들이 미용 실습견으로 이용당하고 추운 겨울에도 온수 시설이 부족하단 이유로 찬물에 씻겨진 뒤 다시 번식장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이어 "동물에 대해 마땅한 생명존중과 제대로 된 관리 방법을 알리고 실천해야 할 동물업계 교육자들이 오히려 폭력과 학대를 가르치는 슬픈 현실"이라며, 해당 애견학원을 동물 학대로 고발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단체는 "(번식견들의) 고통 사슬이 끊어지려면 펫샵에서 강아지를 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출처=동물단체 '유엄빠' 인스타그램〉
■ "개농장과 애견미용학원 내의 끔찍한 동물 학대, 법 개정 등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이 사연은 소셜미디어(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며 많은 누리꾼이 공분하고 있습니다.

누리꾼들은 "농장견들이 있으니 일부 양심 없는 학원들의 이 같은 문제가 일어나는 것", "애견 미용 실습 시 강아지들은 다 개농장에서 오기 때문에 그것부터가 문제", "펫샵 근절해야 이런 아이들이 없어집니다. 제발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평생 새끼만 낳고 제대로 된 관리도 못 받아본 개들이 또 실습을 위해 보내지다니…너무 불쌍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연이 알려지자,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누리꾼의 글도 잇따라 올라왔습니다.

"제가 다닌 학원도 그랬는데, 말 안 듣는다고 목만 잡고 공중에 발버둥 치게 하고 서 있게 하던 거 생각난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에 직업으로 선택하고자 배우러 갔다가 결국 포기했다"
"새끼 밴 개가 실습에 동원됐는데, 강의가 빈 시간에 새끼를 낳은 적도 있었다"

이들은 모든 애견미용학원이 아닌 일부 비양심적인 학원의 문제점이라고 강조하며, 이런 잘못된 관행을 서슴지 않는 학원은 없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논란이 불거지면서, 해당 학원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처벌해달란 청원 글도 올라왔습니다.

청원인은 "앞으로 반려견 산업이 커지면서 애견 미용 산업도 확대될 텐데, 이렇게 동물 학대가 자행되는 행태는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애견미용학원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하고, 동물보호법에 따라 학원 관계자, 개농장 관계자, 수강생 등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규범과 시행이 이뤄져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가 공론화되어, 개농장과 더불어 애견미용학원 내의 끔찍한 동물 학대에 대한 법적, 제도적인 보호책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남겼습니다.

지난 12일 올라온 이 청원에는 지금까지 5,100여 명이 동의했습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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