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 치료제 '헴리브라' 보험급여 기준 논란
12세 미만 '조건부 급여' 반발
복지부 "안전성 더 검증 필요"
"환자·의사 선택권 존중해야"
[경향신문]
혈우병 환아 가족들이 혈우병 치료제 ‘헴리브라’에 대한 건강보험급여 기준에 반발하고 있다.
자신을 ‘두 돌 된 혈우병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라고 소개한 A씨는 지난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만 12세 미만 소아도 면역관용요법(ITI)과 상관없이 헴리브라를 맞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급여 기준을 변경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혈우병은 혈액 응고인자가 부족해 지혈이 잘 안되거나 작은 충격으로도 멍이 드는 희귀질환이다. 출혈이 발생했을 때 응고인자를 투여하는 보충요법이나 주기적으로 응고인자를 투여하는 예방요법을 쓸 수 있다.
논란의 중심이 된 헴리브라는 JW중외제약이 개발한 8번 응고인자 결핍(A형 혈우병) 치료제(예방요법)다. 주 2~3회 정맥주사로 투여해야 하는 기존 치료제에 비해 피하주사로 1~4주마다 1회 투여하면 된다. 무엇보다 응고인자에 대한 항체가 생겨 기존 치료제로는 효과를 볼 수 없는 항체 환자에게도, 비항체 환자에게도 투여할 수 있다. ITI는 응고인자 치료제에 항체가 생겨 기존 응고인자 치료제가 듣지 않을 때 항체를 없애는 치료다.
헴리브라는 한국에서도 지난해 5월 만 12세 이상 혈우병 환자 일부를 대상으로 건보급여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올해 2월에는 12세 미만 항체 보유 환자에 대해서도 급여가 시작됐지만, 12세 미만을 대상으로는 △ITI에 실패한 경우 △ITI를 시도할 수 없음이 입증되는 경우 △ITI 성공 후 항체가 재출현한 경우 등으로 조건이 붙었다.
혈우병 환우의 가족들은 ITI가 길게는 2~3년 걸리는 등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만큼 헴리브라 투여와 상관없이 환아 가족과 주치의가 ITI 시행 여부를 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응고인자에 항체가 생긴 환아 B군(3)의 어머니 배모씨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면서 “ITI는 치료 기간이 길고 성공 확률이 70% 정도로 약 30%는 실패한다. 환아 가족과 주치의가 스스로 ITI 시행 여부를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헴리브라를 맞기 위해 ITI를 해야 한다는 조건은 환자의 치료 방법과 치료제 선택을 강제로 제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씨는 “지난해 기부 프로그램을 통해 헴리브라를 맞았는데, 넘어지거나 부딪혀도 출혈이 생기지 않아 또래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어울릴 수 있었다”며 “주사 방법 역시 정맥주사가 아닌 피부층에 맞는 주사로 가정에서 보호자가 주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헴리브라는 안전성이 더 검증돼야 하고 ITI가 더 근원적인 치료법이며 ITI 성공률도 항체 발생 초기일수록 더 높다는 전문가 의견에 따라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철우 을지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ITI가 항체를 없애는 치료는 맞지만 힘든 치료 과정에 비해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며 “정부에서 ITI를 권고할 수는 있지만 다른 방법이 있는데 환자와 의사의 선택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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