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트랜스젠더는 미 공화당의 새로운 정치공학적 희생양"

정유진 기자 2021. 4. 1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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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공화당이 선거에서 역풍을 가장 적게 맞으면서도 보수 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는 새 희생양을 찾아냈다. 바로 숫자가 적고 힘이 없는 10대 트랜스젠더 청소년이다.” 13일(현지시간) 미국 시사주간지 애틀랜틱은 공화당이 장악한 주에서 잇따라 발의되거나 통과된 미성년자 성전환 금지법에 대해 이같이 분석했다.

아칸소주는 지난 6일 미국 최초로 18세 미만 청소년의 성전환 호르몬 치료 및 수술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이 이미 우울증과 자살 위험에 처한 트랜스젠더 청소년을 더욱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소아청소년과 의사 등의 탄원이 잇따랐지만 소용없었다. 앞서 임신중지 법안에 서명했던 공화당 소속 애사 허친슨 주지사조차 “너무 극단적인 법안”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이 장악한 주의회는 법안 통과를 밀어부쳤다.

지난 3월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열린 시위 참가자들이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보호해달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앨라배마주에서도 이와 비슷한 법안이 발의돼 주의회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태이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생물학적 성별의 보편적 특징과 어긋나는 미성년자를 발견한 공무원은 즉시 부모에게 서면 고지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공무원들에게 사실상 “젠더 경찰”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심지어 텍사스에서는 미성년자의 성전환 치료에 ‘아동학대’ 딱지를 붙여, 이를 돕는 부모는 아동학대 혐의로 자녀와 강제로 분리시키는 법안까지 발의된 상황이다. 미 시민자유연맹은 트랜스젠더 여학생의 여성 스포츠 금지법까지 포함하면 현재 미성년자의 성전환 권리를 제한하는 법안이 발의된 곳은 28개 주에 달한다고 밝혔다.

애틀랜틱은 “공화당은 지난 30여년 동안 표를 결집시키기 위해 소수 그룹을 사회적 위협 세력으로 ‘악마화’하는 전략을 써왔다”면서 “게이, 무슬림에 이어 이번에는 10대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그 타깃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당은 2004년 동성애자를 주요 타깃으로 삼아 대대적인 동성결혼 반대 운동을 펼쳤다. 그해 대선 당일에는 결혼을 남성과 여성만의 결합으로 정의하는 헌법개정안 주민투표를 11개 주에서 실시하기도 했다. 이는 보수 성향의 유권자를 더 많이 투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공화당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찬성 여론은 2004년 31%에서 2010년 42%로 오히려 높아졌다.

그러자 공화당은 무슬림을 새로운 희생양을 지목했다고 애틀랜틱은 분석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가 무슬림이라는 음모론을 부추기면서, 2011년 이슬람 규율인 ‘샤리아’를 금지하는 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또 이민자를 막기 위한 각종 법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무엇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쉬운 것은 전체 유권자 중 극히 소수에 불과한, 힘 없는 10대 트랜스젠더 청소년을 상대로 “문화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애틀랜틱은 “민주당도 (성소수자 권리는) 경제적 이슈 등에 비해 주변적인 문제로 여기는데다, 보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도 “친 성소수자 정책에 ‘전적으로 반대’한다고 답한 사람은 7%에 불과하지만, 이는 동시에 공화당이 영향을 미칠 여지가 많음을 보여준다”면서 “(코로나19 경기부양안 등) 경제적 이슈에서 밀리고 있다고 여긴 공화당이 새로운 전쟁터에서 싸움을 시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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