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햇살론, 따져보니 상호금융 돈으로 저축은행 퍼주기

조귀동 기자 2021. 4. 1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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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금융은 620억 손실인데, 저축은행은 1360억 흑자
출연금 많이 내는데 정작 쓰는 사람은 없어…제도 허점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 대상 정책금융상품인 햇살론으로 신협, 농·축협, 수협, 산림조합 등 상호금융이 입는 손실이 지난해 620억원으로 2019년 대비 47.2%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저축은행은 햇살론으로 1360억원의 이익을 냈다. 햇살론 재원인 출연금은 상호금융이 1조700억원을, 저축은행이 3800억원을 냈다.

이 때문에 상호금융업계 일각에서는 현 햇살론에 대해 상호금융 호주머니에서 저축은행을 배 불리는 결과만 낳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햇살론을 상시화하고 은행으로부터 출연금을 걷는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서민금융지원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유력한 가운데 정작 햇살론의 제도적 허점은 그대로인 셈이다.

14일 권은희 의원실(국민의당)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상호금융과 저축은행의 햇살론 이자손익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신협, 농·축협, 수협 등 상호금융은 햇살론으로 62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2019년(420억원)보다 손실 규모가 47.2% 늘어난 것이다. 상호금융은 2012년부터 햇살론으로 해마다 수백억원대의 손실을 보고 있다.

한 고객이 창구에서 서민금융상품인 ‘햇살론17’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저축은행은 지난해 1360억원의 이익을 냈다. 2019년(1230억원)보다 11.2% 이익이 늘어났다. 저축은행은 2016년 이후 햇살론 대출로 1000억원대 이상의 이익을 보고 있다. 햇살론으로 인한 손실을 상호금융이 집중적으로 받고, 저축은행은 상당한 이익을 얻는 구조인 셈이다.

햇살론은 상호금융권과 저축은행이 신용등급 6등급 이하인 사람들에게 저리로 대출을 내주는 서민금융 정책 상품으로, 2010년 도입됐다. 현재 햇살론 프로그램에는 ▲근로자햇살론 ▲햇살론 유스(youth) ▲햇살론17 등 세 가지 상품이 있다. 정부가 90~100%를 보증해주는 구조다.

햇살론의 재원인 관련 금융사 출연금은 상호금융이 많이 낸다. 서민금융진흥원 등에 따르면 2010~2020년 햇살론 출연금은 농·축협 7330억원, 수협 630억원, 산림조합 160억원, 신협 2560억원, 저축은행 3800억원, 새마을금고 4590억원 등이었다. 총 1조9000억원인 출연금 중 상호금융은 1조700억원, 저축은행은 3800억원을 부담한 셈이다.

하지만 이 기간에 대출과 관련해 보증이 이뤄진 금액은 상호금융은 4조5400억원, 저축은행은 14조2000억원으로 저축은행이 3.1배 더 많다. 결국 햇살론 운용과 관련해 상호금융이 저축은행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을 부담하지만, 저축은행이 햇살론을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셈이다.

그래픽=김란희

이 때문에 상호금융권은 현 햇살론 방식에 적잖은 불만을 갖고 있다. 한 상호금융업계 관계자는 "농축협과 수협, 산림조합의 경우 조합원들이 자영업자 전용 햇살론도 이용하기 힘들고, 대개 농수산신용보증기금 자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출연금은 많이 내지만, 조합원에게 혜택을 주지도 못하고 비주력 고객을 대상으로 손실만 보는 구조"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문제는 정책금융사업의 혜택을 저축은행이 모두 받으면서, 상호금융권은 무거운 부담을 지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서민금융지원법이 통과돼 은행이 햇살론 출연금을 내게 될 경우, 상호금융과 비슷한 문제를 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햇살론17의 경우 연체율이 평균 8%에 이르는데, 이는 가계대출 평균 연체율인 0.2~0.3%보다 30~40배가량 높다. 대위 변제율(채무자가 빚을 못 갚아 정부가 대신 갚아준 비율)도 지난해 6월 1.3%에서 지난해 말 5.6%까지 4.3%포인트(P) 증가했다. 이는 저신용자가 못 갚는 대출금을 금융사들이 출연한 서민금융기금으로 메꾸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햇살론 도입 취지였던 저신용·저소득 금융 취약계층의 채무 경감 효과도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9년 말 발간한 보고서에서 햇살론으로 돈을 빌린 사람들의 행태를 분석한 결과 카드론 등 다른 대출이 줄지 않았다고 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지난 9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여신전문금융회사·저축은행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햇살론의 제도적 허점이 여기저기서 지적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전 금융권으로의 햇살론 공급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오는 7월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서민금융법 개정안에 따라, 상호금융·저축은행뿐 아니라 은행·보험사·여신전문회사 등 가계대출을 취급하는 모든 금융기관이 연간 총 2000억원의 출연금을 내야 한다.

그러면서 금융당국은 은행과 카드사에 각각 ‘햇살론 뱅크’와 ‘햇살론 카드’ 같은 서민금융상품을 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손실에 따른 리스크는 금융사가 떠안아야 할 판"이라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상품 출시를 준비 중"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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