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 차량 진입금지 단지 앞 배송 시작..입주자대표회의 "갑질 프레임 유감"

[경향신문]

아파트 진입로에 배송물품들 전국택배노동조합 소속 택배기사들이 14일 택배 차량의 단지 내 진입을 금지한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 물품들을 쌓아놓았다. 김영민 기자

14일 정오 서울 지하철 5호선 상일동역 1번 출구 앞 공터. 강동구 대단지 A아파트 진입로인 이곳 길가에 차량 3대가 자리를 잡았다. 1대는 우체국택배, 2대는 롯데택배 차량이다. 운전석에서 내린 택배노동자들이 물품을 꺼냈다. 총 800여개의 물품 상자 운송장 배송지란에는 아파트 주소가 적혔지만 물품들은 단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가 A아파트 ‘단지 앞 배송’을 시작한 날 풍경이다.

택배노조는 이날 A아파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오늘부터 물품을 아파트 단지 앞까지만 배송하고 찾아오시는 입주민 고객께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일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택배차량의 단지 내 진입과 지상도로 이용을 금지한 데 따른 조치다.

택배노조는 “택배차량 출입 제한은 노동자에게 힘든 노동을 강요하고 많은 비용이 들게 한다”고 밝혔다. 저상차량을 이용하면 지하로 출입할 수 있지만, 화물칸 높이가 130㎝ 남짓으로 기존 이용하던 소위 ‘하이톱 차량’보다 낮다. 몸을 숙인 채 작업을 하게 되므로 허리·무릎 등에 부담을 주고 부상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또 배송시간이 길어지고 기사들이 저상차량 전환 비용을 부담할 가능성이 높다.

택배노조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출입 제한까지 1년 유예기간을 둔다고 하지만, 애초에 제한 결정을 당사자인 택배노동자 없이 내린 것이 문제”라며 “지금 갈등은 택배노동자들과 협의 없이 제한을 일방적으로 결정·통보했기에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택배회사와 정부의 책임도 말했다. 택배노조는 “택배사는 갑질을 당하는 택배노동자를 외면하면서 사실상 해당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 동조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해당 아파트에 대해 택배접수를 중단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정부에 대해서는 “중재를 위해 즉각 노력해달라”고 했다.

아파트 주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했다. 회견을 본 입주민들은 “바깥에 물건 놔둬서 파손되면 책임져야 한다” “다른 아파트에선 저상차량 잘만 이용하던데 왜 여기서만 못한다고 하느냐”고 한마디씩 하며 택배기사들의 앞을 지나갔다. 입주민 장명석씨(53)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온 차량이 어린아이들을 다치게 할까봐 우려해서 내린 결정이었다”며 “ 주민을 볼모로 삼지 말고 대화에 나서달라”고 말했다.

반면 물품을 찾으러 단지 앞에 나왔다는 심희영씨(47)는 “입주자대표회의가 무대응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기적인 행동 같다”고 말했다. 이날 노조가 받은 입주자대표회의 공문은 “아파트와 입주민을 갑질 프레임으로 매도한 노조의 행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