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IT 아닌 車 산업 목줄 쥐었다..해외 의존도 98%
공급난 올해 넘길 듯
한국경제 타격 불가피
이미 생산·내수·수출 잇따라 감소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가 최소 올해 3분기, 또는 이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잇단 감산 사태를 맞고 있는 자동차 업계 위기가 한국 경계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4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는 최소 3분기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반도체 공급난이 전자나 정보기술(IT) 산업보다도 자동차 산업을 더욱 강하게 압박하는 모습이 연출되는 자체가 내연기관 위주에서 전장, 전기차 등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자동차 산업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통상 주문하면 생산까지 3개월 정도 걸리는데 현재는 공장이 꽉 차 있다 보니 주문하고 생산 시작까지 또 3개월이 걸린다. 즉, 주문해서 물건이 나오기까지 총 6개월이 걸리는 셈"이라며 "지난 3월부터 공급난이 본격화됐으니 그때 주문 들어간 게 최소 9월은 돼야 나온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상황이 좋아야 가능한 일. 아직 세계 최대 위탁생산 업체 TSMC의 생산 결정이 확정되지 않았다. 이번 반도체 대란이 연내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제품 주기가 5~10년으로 1~2년 수준인 스마트폰, PC 등 IT 반도체보다 훨씬 길어 수익성은 낮고 품질·재고관리가 어렵다. 업체들 입장에서 생산설비를 늘리는 데 현실적 한계가 있다.
당장 대체제도 없는 만큼 자동차 업체들로서는 생산을 줄이거나 공장 문을 닫는 것 외에는 뾰족한 타개책이 없다. GM은 이미 추가로 3개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거나 생산을 일부 줄이기로 했다. 포드, 도요타도 생산 차질을 겪고 있다. 국내는 한국GM을 시작으로 쌍용차가 일시 셧다운(가동 일시중단) 사태를 맞았다. 현대차는 울산1공장에 이어 주력 세단 그랜저를 생산하는 아산공장의 생산을 중단했다.
현대차 등 국내 기업 일부는 당초 재고를 넉넉하게 확보하고 있던 덕에 국외 업체들보다는 품귀 사태를 뒤늦게 맞았지만 상황은 안 좋게 돌아가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해외 의존도가 무려 98%에 이르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자동차 강국과의 경쟁에서 반도체 물량을 확보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車업계 위기, 경제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도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 경제 전반으로까지 자동차 업계 위기가 번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다. 자동차 산업은 반도체와 더불어 국내 산업 톱2를 이루는 기간 산업이다. 고용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한 만큼 생산 차질이 계속되면 경제성장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미 반도체 대란에 따른 위기는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달 국내 자동차산업 생산·내수·수출은 일제히 감소 국면으로 돌아섰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더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생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을 받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9.5% 감소했고 내수, 수출 모두 각각 0.9% , 1.4% 줄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사태가 장기화하면 한국 경제에 미칠 타격이 클 것"이라며 "자동차 산업이 우리나라 GNP(국민총생산)의 18%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전후방 부품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 주요산업의 3배나 돼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대란, 수요 예측 실패 결과
이번 반도체 공급난은 자동차 수요 예측 실패에서 촉발된 결과다. 전례 없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자동차 업계 위기가 예견되자 반도체 업체들이 발빠르게 차량용 반도체 대신 PC, 스마트폰 등 IT 반도체 비중에 집중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자동차 시장이 빠르게 회복하면서 공급난이 불거졌다.
불어나는 수요에 대응할 여력이 없는 데다 미국 텍사스 한파, 일본 르네사스 화재, 대만 TSMC 공장가동 차질 등의 악재까지 겹쳐 피해는 더 커졌다. 국내외 자동차 업체들은 줄줄이 일시 휴업에 나서거나 감산에 돌입하고 있다.
수익성이 낮은 탓에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에 힘을 쏟지 않는 반도체 업계 구조도 이번 사태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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