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유학생 숨지게 한 음주운전자에 구형보다 무거운 '징역 8년'

청와대 누리집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을 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20대 대만 유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가 1심에서 검찰 구형보다 높은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민수연 판사는 14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험운전 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이 구형한 징역 6년보다 무거운 형량이다. ‘윤창호법’으로 알려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위험운전 치사죄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형이지만, 양형위원회가 권고한 양형기준은 징역 4년 이상∼8년 이하로, ㄱ씨는 권고형량의 최고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ㄱ씨는 지난해 11월6일 밤 11시40분께 술에 취해 서울 강남구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대만 유학생 ㄴ씨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ㄴ씨는 과다 출혈 등으로 사고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당시 ㄱ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79%로, 운전면허 정지 수준이었다. 앞서 ㄱ씨는 음주운전으로 2012년 3월과 2017년 4월에도 각각 벌금 300만원,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바 있다.

민 판사는 “만 28살의 피해자가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사망했고, 국외에서 소식을 접한 피해자 가족의 충격과 슬픔을 헤아리기 어렵다. 지인들도 강력한 처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어 “왼쪽 눈의 시력 교정용 렌즈가 순간적으로 돌아갔는데 오른쪽 눈도 각막 이식 상태여서 렌즈를 끼지 못해 뿌예진 상태에서 피해자를 보지 못했다”는 ㄱ씨 쪽 주장에 대해서도 “눈 상태가 좋지 않으면 운전을 더 조심해야 하는데도 음주운전을 한 것은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숨진 ㄴ씨의 친구들은 선고 뒤 기자들을 만나 “검찰 구형량보단 무겁지만, 한국법상 무기징역이 가능한데도 징역 8년을 선고한 것은 미흡하다고 생각한다”며 “처벌도 처벌이지만, 음주운전으로 목숨을 잃는 이들이 많은 만큼 한국 사회는 어떻게 하면 이런 비극적인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울먹였다.

한편, 이 사건은 숨진 ㄴ씨의 친구라고 밝힌 한 청원인이 청와대 누리집 국민청원 게시판에 “28살의 젊고 유망한 청년이 횡단보도의 초록색 신호에 맞춰 길을 건너는 도중 음주운전자의 차량에 치여 그 자리에서 손써볼 겨를도 없이 사망했다”며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내용의 청원 글을 올리며 알려졌다. 해당 청원 글이 올라온 뒤 한 달도 안 돼 23만여명이 동참했다.

이에 송민헌 경찰청 차장은 “정부는 음주운전 근절을 위해 엄정 대응과 함께 처벌을 강화하고 있고, 피해자 부모님에게 음주운전 사고로 처벌이 경감되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를 구속하고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해 드렸다”며 “음주운전은 개인은 물론 가정, 나아가 사회까지 파괴하는 중대한 범죄임을 인식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음주운전은 안 된다는 인식을 가져줄 것을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답변한 바 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