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완장' 하나로 농촌 마을 뒤집어 놓은 기자
[현장] 한 지역 기자가 깨뜨린 마을 평화, 70대 노인에 "이 XX" 폭언부터 드론 띄워 주민 감시…"야구방망이 대신 '기자 완장'으로 사람 팬다"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
70~80대 노인에게도 '야' '임마' '새끼'라고 욕했다. “어린 놈이 싸가지 없이” “눈을 뽑아버린다” “너 같은 손자가 있어” 등의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예의냐'고 따지면 “니가 똑바로 했어봐. 내가 이러나”고 대꾸했다. 마을에 무례와 폭언이 난무한 지 2년째, 한 70대 주민은 괴롭힘에 몸무게가 10kg나 빠져 건강을 다쳤다. 2019년 가을 최명진(51·가명) 기자가 마을로 이주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충북 제천 청풍면의 학현마을(학현리). 50여 가구, 100여명 주민이 모여 사는 작은 공동체의 평화는 2년 전부터 깨졌다. 마을 회계 부정 문제로 갈등이 싹트긴 했으나 기자가 마을에 개입하면서 갈등은 전쟁 수준으로 커졌다. 마을에 온 직후 '청년회장'을 맡은 기자는 마을 사업에 관여하며 영향력을 키웠는데, 기자 지위를 활용했다. 그는 취재에 활용하던 각종 민원·신고를 주민을 향해 남용했다. 촬영 카메라를 대동해 마을총회를 방해하는가 하면 드론을 띄워 마을 감시도 했다.
최 기자는 제천·단양 주재 기자다. 2017년 A매체에서 경북 지역 기사를 주로 쓰다 2018년 B매체로 옮겨 충북취재본부장을 지냈고, 2020년 말 C매체 본부장으로 옮겼다. 기자가 되기 전 그는 정치인이었다. 2010~2014년 경기도 오산시의원을 지냈고 2016년까지 국민의당 오산지역위원장으로 있었다. 2017년께 기자가 돼 지금까지 충북에서 활동 중이다.
“야 임마, 내가 신고했는데 왜 안 고쳐”
기자 이력은 마을에서 그의 '권위'가 됐다. 주민 ㄱ씨는 “주민 대부분 60대 이상 노인들이고 50가구 사는 작은 동넨데, 시의원을 지냈고 지금은 기자까지 하는 사람이 오니 처음엔 특별한 사람처럼 보는 게 있었다. 발언권도 더 주어졌다”며 “외지인이 이렇게 쉽게 시골 마을에 정착하는 경우는 없다. 오자마자 청년회장이 되는 경우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주민들의 호의는 금세 사라졌다. 최 기자의 '갑질' 행태 때문이다. 주민을 가장 괴롭힌 건 민원이다. 시골엔 논·밭에 가설 창고나 둑부터 자택 보일러실, 차양 등까지 건축법 지정 범위를 벗어난 형태로 짓는 경우가 적지 않다. 크게 범법 소지나 이웃 간 불편이 없다면 이런 건축법 위반은 서로 용인해주는 암묵적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학현 주민에겐 옛말이다. 주민 ㄴ씨는 '노이로제에 걸릴 만큼' 법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게 간판, 가설 창고, 축대, 보일러실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민원이 제기됐다. 최 기자가 마을에 온 직후다. 도로 근처에 세워진 간판은 대부분 철거당했고 주민들은 뒤뜰에 지은 간이 창고도 모두 헐었다. 과태료만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달했다. 1년 새 5건 넘게 민원을 받은 가구도 적지 않았다. 억울한 사례도 있었다. 원래 마을 소유였던 땅을 사 가게를 짓고 장사를 해왔는데 이제 와서 보니 하천부지여서 법에 저촉된 식이다. 지적도, 건축물대장 등을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 위반 사항이 일일이 시청에 민원으로 들어갔다. 한 가게는 집요한 민원에 건물을 2번이나 헐어 수천만원 비용이 깨졌다.
“야 임마, 내가 신고했는데 너 왜 안 고쳐.” 최 기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주민이 한둘이 아니다. 민원은 면사무소 직원이 주민을 붙잡고 '업무가 마비되니 자제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많았다. 한 직원은 제천시청 노조를 찾아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담까지 했다. 국민신문고 접수 민원만 봐도 2018년 3건에 불과한 민원은 2019년 하반기 10건으로 늘더니 2020년 27건으로 늘었다. 대부분 '불법광고물', '불법건축물', '생활불편' 민원이었다.
“내가 너 알아본다”는 기자의 말도 주민들에겐 위협이었다. '반말하지 말라'며 항의하다 싸움이 붙은 한 주민에게 최 기자는 “내가 너 알아본다” “불법적인거 다 파헤치고 다 본다”라고 소리쳤다. 이후 이 주민 가게에 법 위반을 주장한 민원이 접수됐다. 실제 최 기자는 주민들 건축법 위반 문제 취재를 병행하며 마을 관련 기사를 꾸준히 썼다. 촬영 카메라, 드론 등도 마을 감시에 활용됐다. 최 기자가 드론을 띄워 찍은 사진은 시청 등에 건축법 위반 증거로 제출됐고 보도에도 쓰였다.
마을 수익 사업·이장 선거에 기자가 개입
연고 없는 기자가 어떻게 마을을 '군림'하게 됐을까. 이야기는 마을에 갈등이 촉발된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을 회계 부정 의혹으로 '이장을 바꾸자'는 여론이 형성된 때다. 당시 횡령 의혹을 받던 이장 A씨는 15년 넘게 이장을 지낸 이였다. 그런데 그동안 '마을 공동 수익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회계 자료가 주민들에 공개된 적이 없었다. 마을총회는 열렸으나 월별 지출과 수입이 어떤지, 증빙자료는 있는지, 주민들에게 얼마씩 돌아가야 하는지 등이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채 결산은 매해 이장의 짧은 설명으로 통과됐다.
마을 사업은 크게 자연송이 채취와 펜션 운영이었다. 모두 정부·지자체가 농가 소득 보전 등을 위해 보호하고 지원하는 사업이다. 송이 채취는 주민들이 한해 적게는 400만원, 많게는 1000만원까지 벌 수 있는 사업으로 규모가 컸다. 마을은 '작목반'을 구성해 9~10월 채취 기간 동안 송이를 따서 팔고 이익을 공동 분배했다. 그런데 어떤 주민도 매일 채취한 등급별 kg 수치와 정확한 판매·지출 내역을 20년 넘게 확인한 적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펜션 운영 장부도 주민에게 공개된 적이 없고 이윤 분배도 턱없이 적었고 분배 기준도 모호했다.
2017년 말 마을 역사상 처음으로 '비밀투표'가 열려 새 이장 ㄷ씨가 당선됐다. 갈등의 시작이다. 전 이장 A씨는 투표 직후 ㄷ씨에게 '돈줄을 끊어놓겠다'고 엄포를 놨다. ㄷ씨는 마을 지적도, 일부 결산서류 3~4장, 통장 몇 개를 제외하곤 인수인계를 받은 자료가 없었다. A씨가 이장 업무를 선제적으로 도맡으면서 ㄷ씨 업무 수행도 막았다. 관행적으로 이장이 겸직했던 영농회장, 마을펜션 관련 협의회장도 A씨가 계속 맡았다. 급기야 A씨와 그의 아들이 마을 회의에서 ㄷ씨에게 침을 뱉고 폭언을 가해 A씨가 고소당했고, A씨는 5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이후 서로 고발이 이어지는 등 갈등이 이어졌다.
최 기자는 이 와중에 등장했다. 갑자기 '마을 청년회장'이 신설되며 최 기자가 자리를 맡았다. 이때부터 A씨에 비판적인 주민을 겨냥한 각종 민원전이 시작됐다. 최 기자의 각종 모욕·폭언도 이들에게 집중됐고, 특히 새 이장이었던 ㄷ씨 부부에게 심했다. “장유유서 물구나무섰다. 이놈XX야, 동네 말아먹고, 동네 다 망쳐놓고 창피한 줄 알아. 이 XX야” 최 기자가 다른 주민들 앞에서 ㄷ씨를 모욕한 말이다.
최 기자는 전 이장인 A씨의 일을 도왔다. 그리고 다른 귀농인이 누리지 못한 특혜를 누렸다. 한 예로 작목반은 통상 3년 일해야 이윤을 분배받을 수 있고, 5년이 돼야 일한 만큼의 100%를 받았다. 최 기자는 마을 전입 직후 송이 채취에 참여해 수입을 벌었다. 2020년 결국 A씨가 이장으로 복귀하면서 최근엔 마을 펜션 사무장이 돼 펜션 운영까지 맡고 있다. 최 기자와 대립한 주민들은 현재 펜션 운영도, 송이 채취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마을 일각에선 최 기자를 두고 '마을 이권 사업 개입이 전입 목적이 아니냐'는 비판이 팽배하다.
'언론 깡패' '펜으로 사람 때려' 비판 봇물
최 기자는 학현에 오기 1년 전 '사이비 기자' 논란으로 단양군청 노조와 다툰 전력이 있다. 최 기자가 공무원들을 반말로 하대하고 취재 중에 고소·고발을 언급하거나 “내가 공무원 여럿 옷 벗겼다”고 막말을 한 사례가 노조에 계속 접수됐다. 그는 단양군에서도 공무원을 상대로 각종 민원을 제기했다. 2018년 한해 그가 단양군에 낸 국민신문고 민원은 15건, 그와 붙어 다니던 동료 기자는 12건이었다. 당시 단양군 노조는 “알 권리란 합법을 빌려 권리 남용 수준의 정보공개청구 등 과도한 민원으로 일상 공무를 어렵게 한다”고 비판했다.
단양군 노조는 성명 발표를 시작으로 비판 현수막을 게시했고 최 기자의 브리핑룸 출입도 막았다. 그런데 노조가 성명과 현수막에서 매체명을 드러내며 '사이비 언론'이라고 규정해 명예훼손 혐의가 성립했다. 최 기자의 매체가 노조 관계자를 검찰에 고발해 벌금형 처분이 나왔으나 정식 재판에서 사정이 참작돼 선고가 유예됐다. 이후 최 기자는 매체를 옮겼고 단양을 떠나 제천 학현에 자리 잡았다.
마을의 사유화를 막으려던 시도는 주민들에게 깊은 상처만 남긴 채 끝났다. 지금은 불투명한 회계를 바로 잡아보려 했던 이들만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학현의 비극은 제천 지역 언론계에도 널리 알려졌다. 한 제천 지역 기자는 “주민들이 '언론 깡패'라고 한다. 야구방망이 대신 펜으로 사람을 팬다고도 한다. 그 작은 마을 내 건축법 위반의 범법 수준이 거대하면 얼마나 거대하겠고, 주민들에 언론이 보도할 병폐가 얼마나 숨겨져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고립된 소왕국에서 기자가 힘을 휘두르면 어디까지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도 지적했다.
주민 ㄴ씨는 “주민들이 숨죽이고 살고 있다. 자기 주장을 하면 민원, 취재, 또 다른 괴롭힘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데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못한다”며 “최 기자는 한 주민의 친척에게까지 전화해 가게 건축법 위반 문제를 취재했더라. 기자가 주민들을 이렇게 두렵게 하고 마을 수익 사업, 이장 선거까지 개입하는 게 옳은 것이냐”고 물었다.
이와 관련 최 기자는 12일 “공익적 합법 행위가 불법인가”라 되물으며 “단양군은 공무원들이 사이비 기자라고 현수을 게시해 그들이 선고 유예를 받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학현마을 내에서 제기된 비판에 대해서는 지난 12~13일 전화, 문자 등으로 입장을 물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마을에 드론을 띄운 것에 대해 최 기자는 지난해 9월 B매체 기사에서 “학현 주민들이 불법 송이 채취를 막기 위해 드론 등 최첨단 장비를 활용해 순찰을 강화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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