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보다 '마스크 게이트'로 더 들끓는 독일
(시사저널=이수민 독일 통신원)
코로나19의 시작을 기억하는가. 지난해 초만 해도 코로나19는 '우한 폐렴'을 거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 의해 '중국 바이러스'로 불리며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했다. 특히 초기에는 마스크 착용이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했다. 위생 및 보건상 이유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습관화된 아시아인들과는 달리, 서구권에서 마스크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장치 혹은 강도나 범죄자처럼 뭔가 숨길 것이 있는 사람들이 착용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에서 마스크를 쓴 아시아인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침을 뱉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독일 정부 역시 마스크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의료진을 제외한 일반인이 마스크를 쓸 이유는 전혀 없다고 역설했다. 당시 마스크를 비롯한 보호장비가 모자랐기 때문에, 의료 현장의 붕괴를 우려해 마스크 실효성을 부정했던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해 초만 해도 오프라인에서 마스크를 전혀 구할 수 없었고, 온라인에서도 개당 10유로(약 1만3000원)를 주고 겨우 구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4월말에 마스크가 의무화되자 시민 대다수는 직접 제작한 천마스크를 착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자체에 정체 모를 업체 마스크 구입 권유
이후 상황은 빠르게 나아졌다. 적어도 비말은 막을 수 있는 마스크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최근 국민 건강을 위해 마스크를 지원해야 할 정치권에서, 오히려 이를 통해 금전적 이익을 본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대거 드러났다. 가장 먼저 적발된 건 두 명의 연방 국회의원이다. 3월12일 슈피겔지 보도에 따르면,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기사련) 게오르크 뉘스라인 의원과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 니콜라스 뢰벨 의원은 특정 마스크 제조사 및 유통사와 정부 기관을 연결해 준 대가로 각각 66만 유로(약 8억7000만원)와 25만 유로(약 3억3000만원)의 중개수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뉘스라인 의원과 관련해 알프레드 자우터 기사련 바이에른 주의원도 지목되고 있다. 그는 뉘스라인 의원의 마스크 스캔들에 연루돼 탈세 의혹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항원검사 특별허가를 받아내는 대가로 제조사 'GNA 바이오솔루션'으로부터 추가로 30만 유로(약 4억3000만원)를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독일 중부에서는 요주의 인물로 마르크 하우프트만 기민련 연방의원이 꼽힌다. 그는 여러 지방자치단체에 직접 연락해 베트남 한 의료장비 업체의 마스크를 살 것을 권유했다. 그 결과 몇몇 지자체에서 해당 마스크를 수억원어치 구입하기도 했다. 게다가 해당 베트남 업체의 실체에 대해서도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4월 출범한 이 회사는 가정집에 위치해 있으며, 임원은 물론 일반 직원과 어떠한 연락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우프트만 의원은 이들로부터 중개수수료를 따로 받지 않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그가 대표를 맡고 있던 기민련 지역연맹이 이 업체로부터 후원금 7000유로(약 930만원)를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시작으로 진행된 검찰 조사 결과, 하우프트만은 해당 업체와의 유착을 통해 750만 유로, 우리 돈으로 약 99억원에 이르는 이익을 본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다. 몇몇 국회의원뿐 아니라 장관급에서도 마스크를 통해 사적 이익을 챙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기민련 대표로 선출되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총리인 아르민 라셰트가 대표적이다. 명품 패션기업 '반라크(Van Laack)'와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문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가 반라크에 수백억원대 계약을 주선했을 뿐 아니라, SNS 인플루언서인 그의 아들 조 라셰트가 반라크와 오랜 협력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의혹은 증폭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계약 과정에서 반라크는 독일에서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공개입찰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정부에 보호장비를 납품해 지난해 4월 한 달에만 이미 4000만 유로(약 53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보호장비 주문이 최근까지 이뤄졌다고 하니, 그 수익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슈피겔 "정치인 부수입 규정 모호해 생긴 일"
코로나19 방역 최전방에 서 있는 연방 보건부 장관인 옌스 슈판 역시 끊임없이 구설에 오르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을 당시 제출한 접촉자 명단에 수백 명의 이름이 올라 있었던 것으로 인해 한 차례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국민을 향해서는, 상호 접촉을 주의하지 않으면 방역 조치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밝혀 "국민을 협박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인물이다. 여기에 지금의 '마스크 게이트' 정국에서 그의 동성 배우자가 로비스트로 재직하는 회사로부터 연방 보건부가 마스크를 공급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공식 절차인 공개입찰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개인적인 친분관계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많은 이가 비판했다. 그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적진 않다. 슈판의 주장대로, 자신의 배우자가 회사 사장이 아니어서 계약에 대해 전혀 몰랐을 수 있을 거란 이유에서다. 이러한 옹호 여론을 발판 삼아 슈판은 마스크 유통과 관련한 국회의원 명단을 만들어 공개하자는 구호에 앞장서고 있다.
주간지 슈피겔은 이러한 문제가 현재 국회의원들의 부수입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고, 이들이 경제와의 유착을 엄격히 끊어내려는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특히 기민련-기사련 연정에서 이 문제가 커졌다고도 지적한다. 2017년 말부터 지난해 여름까지 연방 국회의원들이 부수입을 통해 얻은 평균 소득을 비교해 보면, 사민당은 1인당 약 1만5500유로(약 2000만원), 녹색당은 약 1800유로(약 240만원)인 데 반해, 기민련과 기사련 소속 의원들은 최소 5만8000유로(약 7700만원)다. 기민련과 기사련 소속 의원들의 수입이 훨씬 많은 셈이다. 이에 따라 국정을 이끌어가는 주 세력들이 논란에 가장 깊이 관여돼 있기 때문에, 문제가 시정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단 국회의원들의 비리만 밝혀져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장관 등 정부 인사들이 절차대로 투명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서 사태가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마스크를 중심에 둔 의 정경유착 민낯에 국민적 실망과 분노는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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