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단체와 사사건건 맞붙은 패션 산업의 '욕망'..나아갈 방향은?

강민선 2021. 4. 1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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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가을·겨울(FW) 패션쇼를 위해 그랑팔레 안을 숲속처럼 연출한 샤넬. 이 쇼를 꾸미기 위해 100년 된 참나무를 벴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지난 2018년 프랑스 패션 브랜드 샤넬이 패션쇼의 무대 연출을 위해 100년 된 나무를 베었다가 곤욕을 치렀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파리 미술관 그랑팔레에서 ‘자연’이라는 주제로 패션쇼를 열었다.

해당 패션쇼는 숲속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이끼로 뒤덮인 높이 10m의 참나무 12그루를 심고, 바닥엔 수 톤에 달하는 낙엽을 채웠다. 또 손님이 앉는 벤치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연’이라는 주제의 패션쇼를 치장하기 위해 실제로 ‘자연’을 훼손해 환경단체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패션 비평가들은 샤넬 패션쇼에 대해 “살아있는 듯한 자연을 느끼게 했다”고 호평했지만 프랑스 환경단체 ‘프랑스자연환경(FNE)’은 해당 패션쇼를 이단(heresy)이라 표현하며 “럭셔리 브랜드 샤넬이 자연보호를 외면한 채 초록의 이미지를 더 부각하려 했다. 샤넬이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관계없이 이 패션쇼는 실패했다”며 맹비난했다.

또한 샤넬은 지난 2017년 플라스틱 공해 문제가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를 때 폴리염화비닐(PVC)을 주제로 한 패션쇼를 연출해 비난을 산 바 있다.

이처럼 인간의 욕망을 먹고 크는 패션업계가 환경단체와 마찰을 빚은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패스트 패션’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개척함과 동시에 패션산업은 석유산업에 버금가는 막대한 공해를 만들어냈다.

사진=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윈투어(Anna Wintour)
 
이에 패션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미국 보그 편집장이자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주인공 안나 윈투어(Anna Wintour)는 최근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옷을 오래입고 소중히 간직해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한다. 값싸게 사서 쓰고 버리는 소비문화를 줄여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또 “요즘 밀레니얼 세대와 젊은 패셔니스타들은 패션의 공예적인 미학이나 창조성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한 번 입고 버리는 옷에 대한 관심이 줄어 들었다. 오히려 럭셔리 제품을 리세일 마켓에서 사고 파는 순환 경제에 더 관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신의 옷을 잘 보관하고 여러번 반복해서 입고 소중히 간직해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순환경제를 실천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의 의견처럼 단순히 ‘소중히 간직해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물론 당장의 무분별한 소비를 줄이며 패스트 패션을 지양하는 것이 새로운 패션 제품의 출시를 위한 석유산업의 공해를 줄이는 일일 순 있겠다. 그렇지만 그의 영향력에 버금가는 좀 더 장기적인 종합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았을까. 

사진=게티 이미지
 
여태까지의 패션 산업은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맞춰 젊은 세대를 만족시키며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여기까지 봤을 땐 오히려 ‘전혀 문제가 없고, 당연한 이치’이다. 하지만 옷들이 만들어지고 버려지기까지 환경을 파괴하는 사이클은 여지없이 굴러간다. 패션산업의 생산과 판매, 구매와 관리, 폐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석유산업에 버금가는 공해로 손꼽힌다.
사진=유엔유럽경제위원회
 
우선 옷이 만들어지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물이 쓰인다. 유엔유럽경제위원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산업용 물의 20%가 의류를 만드는 데 사용되며 목화를 생산하기 위해 이용되는 살충제는 전 세계 농약 사용량의 20%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린피스는 청바지 한 벌을 생산할 때 물 7000리터가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양이 32.5kg이나 된다고 분석 했다. 이처럼 만드는 과정에서만 이미 어마어마한 환경 파괴가 발생한다.

아울러 이렇게 제조된 패션 제품의 화학섬유는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데 수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폐기된 옷이 썩거나 소각될 때는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 메탄가스가 무분별하게 배출되기도 한다. 

패션위크를 기후 변화의 원흉으로 지목하며 런던패션위크에서 시위를 벌였던 운동 단체 '멸종 반란'
 
이에 대해 이미 국제적인 단체들은 문제 제기를 비롯한 시위를 자처하며 누구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운동단체 ‘멸종 반란(Extinction Rebellion-XR)’은 의류 산업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항공과 해운 산업을 합친 것보다 더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매년 85%의 의류가 쓰레기 매립지로 모인다는 유엔 수치를 언급하며 과잉 생산 중단과 생태계 위기 타계를 위한 변화를 촉구 했다.

사진=게티 이미지
 
하지만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와 함께 패스트 패션이 하향세를 보이며 소비자들의 인식 또한 변하고 있다. 모 컨설팅 회사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환경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됐다는 응답자가 48%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020년 진행된 미국의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가운데 66%가 제품 구매 시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패션은 재활용된 플라스틱이나 자투리 옷감 등으로 원단을 만드는 리사이클 패션, 동물성 소재를 배제하고 유기농 재료들을 사용하는 비건 패션, 천연 재료로 염색을 하거나 물 사용을 줄이는 등 옷을 만드는 공정이 친환경적인 윤리적 패션 등이다. 

2011년 11월25일 파타고니아가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광고. 파타고니아는 "이 광고는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방안을 실행한다는 우리의 사명을 실천하는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글로벌 아웃도어 스포츠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는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고 광고하는 마케팅과는 별개로 ‘우리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캠페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보통의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더 빨리 제품을 소비하길 바란다. 새제품을 구매하도록 생산 과정부터 ‘의도적으로’ 질을 떨어트리기도 한다. 모순적이게도 한 번 쓰고 빨리 버려지도록 제품을 생산하는 셈이다.

친환경 기업 파타고니아는 이런 소비 문화를 바꾸기 위해 기업적인 측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례로 원웨어(Worn Wear) 프로젝트는 원단 찢김, 올 트임, 단추와 지퍼 같은 부자재 교환, 사이즈 수선 등을 파타고니아에서 맡아 1인당 두 벌까지 무료로 수선해주는 서비스다. 파타고니아 회원으로 가입하면 누구나 수선을 맡길 수 있으며 파타고니아 옷이 아니어도 무료로 수선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쉽게 구매하고 쉽게 버리는 소비습관을 꼬집는 차별화된 그린 마케팅 일환으로 설명된다.

이밖에도 트럭 방수포 등을 재활용해 가방을 만든 스위스 브랜드 프라이탁 등 재생 소재 제품을 일찌감치 사용하면서 지속 가능성을 검증받은 글로벌 패션업체들과 달리 국내 패션업계는 친환경적인 소재의 활용이나 마케팅 측면에서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지속적인 환경 이슈의 부각에 따라 소비자들의 인식이 변하면서 국내 패션기업들도 지속 가능한 패션을 기업의 주요한 화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2020년을 친환경 행보를 펼치는 원년으로 삼아 여태까지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특히 제18회를 맞은 ‘2021 한국패션브랜드대상’은 지속가능(Sustainable) 경영에 앞장서는 기업에 주목했다. 생산부터 소비단계까지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지속가능에 초점을 맞춘 기업과 비대면 비즈니스를 강화한 기업 위주로 18개 부문을 선정했다고 전했다.

한국유통학회 명예회장인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짧은 주기로 대량 생산·유통되는 의류들은 제조와 폐기, 소각까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뿐 아니라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 환경 친화적인 소재를 선택하고, 소재와 자원을 절약하는 방향으로 기업의 전략 수정이 필요한 시대”라며 “정부도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 등을 주고, 친환경 제품 인증 마크 등을 만들어 ‘착한 소비자’의 선택을 유발할 수 있도록 정책적 리딩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자라를 소유하고 있는 인디텍스 등 업계와 운동단체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3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기후행동을 위한 패션산업 헌장’을 만들었다. 해당 헌장은 원료의 전환, 재사용·재활용 시스템에 대한 투자와 함께 ‘일회용 패스트 패션 문화’를 단절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앞으로의 패션 산업의 귀추가 주목된다.

강민선 온라인 뉴스 기자 mingtu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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