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부른 '방사능 오염수 방류'..한국 패싱하고 망언 쏟아낸 日
국제사회 관심 끌어내야 하는 韓, 난관 예상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로 발생한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은 이 과정에서 최인접국인 한국 정부를 사실상 '패싱'한 뒤 미국 설득에 막대한 공을 들였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일본의 결정을 공식 지지하고 나서면서 국제사회 공조로 대응하려 했던 한국의 전략은 차질을 빚게 됐다. 한국 정부는 '강경 대응' 기조 아래 오염수 방류를 예고한 2023년까지 해당 문제를 국제사회에 적극 피력하고, 국제해양재판소 제소를 검토할 방침이다.
일본에 힘 실어준 미국과 IAEA
일본이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염수를 해양 방출하기로 하자 한국과 중국, 러시아 정부는 일제히 규탄 성명을 내며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미 국무부는 12일(현지 시각)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일본은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투명한 태도를 취했다. 국제적으로 수용되는 핵 안전 기준에도 부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SNS에 "방류 결정을 위한 노력의 투명성에 감사한다"는 글을 적었다.
일본이 이번 결정을 앞두고 미국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점은 미 정부가 발표한 성명 곳곳에서 확인된다. 미국은 원전 오염수를 '처리수'로 지칭했다. 처리수는 일본 정부가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거쳐 마치 문제가 없는 상태인 것처럼 강조하기 위해 쓰는 용어다. 한국과 중국은 각각 오염수나 핵폐수 등으로 지칭하고 있지만, 미국은 일본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미국에 이어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일본의 결정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13일(현지 시각) 성명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에 저장돼 있던 처리수의 처리 방안을 결정했다는 일본의 발표를 환영한다"며 "일본 정부의 결정은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또 "일본이 선택한 물 처리 방법은 기술적으로도 실현 가능하고 국제적 관행에 따른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로시 사무총장 역시 성명에서 오염수 대신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처리수' 또는 '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일본 측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일본은 원전 오염수 방류를 위해 IAEA 여론 조성에도 많은 공을 들여왔다. 특히 일본은 IAEA 예산 분담률이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IAEA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지난해 예산 분담률은 8.2%로, 미국(25.0%)과 중국(11.6%)의 뒤를 이었다. 한국은 2.2%로 11번째다. 주요 외신은 일본의 자금력이 IAEA의 일본 옹호 판단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지지 업고 '망언' 쏟아내는 일본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과 IAEA의 측면 지원을 의식한 듯 연일 분노를 부르는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망언 제조기'로도 불리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13일 삼중수소(트리튬)가 포함된 오염수에 대해 "그 물을 마시더라도 별일 없다"며 "중국이나 한국(의 원전)이 바다에 방출하고 있는 것 이하"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의 해양 방류 결정이 과학적 근거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거듭 강조하며 "'더 빨리 결정했더라면…'하는 생각을 한다"고도 했다.
망언 릴레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4일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은 일본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가 주변국들에 대한 설득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 "중국이나 한국 따위에게 (오염수 방류 관련 견해를) 듣고 싶지 않다"는 반응을 내놨다고 전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도 전날 각료회의에서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에 있어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며 "정부가 전면에 나서 안전성을 확실히 확보하는 동시에 '후효'(風評, 풍평) 불식을 위해 모든 정책을 펴겠다"고 언급했다. 풍평은 풍문이나 소문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일본 사회의 반발과 국제사회의 반응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염수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불과하며, 한국 등이 제기한 문제도 모두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난관 부딪힌 韓…국제사회 관심 최대한 이끌어내야
미국과 IAEA가 다소 편향적인 입장을 드러내면서 향후 한국 정부의 대응에도 난관이 예상된다. 일단 한국은 일본 정부가 내놓은 오염수 정화 관련 각종 수치와 분석을 신뢰할 수 없다며 국제사회 차원의 재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관철해 나갈 방침이다. 또 일본의 오염수 해양 방류는 가장 '값싼 결정'이라며 핵물질 노출 위험성을 더 줄일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구윤철 국무조정실장은 14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에게 전 세계의 피해를 줄일 방안을 찾아달라고 했는데 가장 손쉽고 비용도 안 들어가는, 쉬운 방법(오염수 해양 방류)을 선택했다"며 "성의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일본의 결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에 대해 "'잘했다, 그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일본이 국제기준에 따라서 그렇게 한다고 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 일본 정부와 IAEA가 모두 모니터링 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정부가 해양방출을 국제기준에 따라서 하겠다고 미국 정부와 IAEA에 이야기했을지 모르지만, 전 세계적인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지 점검하겠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구 실장은 "모니터링이라는 건 점검이 안 되면 못 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까지 들어있지 않겠나"라며 향후 2년 간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압박과 감시에 따라 상황이 변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번 사안을 국제해양재판소에 제소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계획이다. 국제해양재판소를 통해 '가처분'에 해당하는 조치를 끌어낸 후 국제사회 검증과 모니터링을 거쳐 일본 정부의 계획을 보류·수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결정에 반발하는 국가와 일본 시민사회, 국제 환경단체 등과 연대를 모색하는 등 보폭을 넓힌 대응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에서도 현재 "오염수가 안전하다면 각료들이 모두 마셔라" "도쿄올림픽과 선거를 앞두고 내린 치졸한 결정" "어민은 물론 국민 모두를 몰살하려는 것인가"라는 부정적 여론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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