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조사 앞둔 KBS수신료 정말 인상 가능할까
[해설] '공정성' 논란 되풀이에 명확한 로드맵 보여줘야
'수신료의 가치' 비정규직 등 고용차별 해소로 증명할 때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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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수신료'를 검색해봤다. 청와대가 KBS '수신료 전기요금 분리징수' 청원에 답변한 영상과 언론사 콘텐츠를 비롯해, 소위 수신료 안 내는 '꿀팁'을 공유하는 콘텐츠를 흔히 볼 수 있다. 1981년부터 40년째 월 2500원으로 동결된 수신료도 이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반증한다. 공영방송의 주된 재원이어야 할 수신료 비중은 KBS의 경우 절반(45%)에 미치지 못한다. 2004년, 2007년, 2010년, 2013년 KBS의 수신료 인상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이런 가운데 KBS가 8년 만에 수신료 인상에 나섰다. 1월 KBS 이사회에 월 수신료를 3840원으로 올리는 안이 상정된 가운데, 5월 국민 200명 대상 숙의조사를 거쳐 최종 조정안을 낼 계획이다. 숙의조사를 진행할 공론화위원회는 '방송 3학회'(한국언론학회·한국방송학회·한국언론정보학회) 추천의 대학 교수 5명으로 꾸려졌다.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양정혜 계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주정민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조항제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등은 지난 5일 첫 회의를 가졌다.
하지만 숙의조사를 앞둔 KBS 안팎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수신료 인상에 우호적 여론이 조성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제반 요건들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집권 여당의 적극 지지로 수신료 인상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2011년에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부터 해야 한다'는 당시 야당(현 더불어민주당) 반대를 넘지 못했다. 지금은 KBS 부사장 출신의 정필모 민주당 의원조차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인해)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밝힌 상황이다.
특히 국민의힘은 올해 KBS 수신료 인상안이 나오자마자 수신료와 전기료를 분리해서 징수하는 법안을 내놨다. 법안을 발의한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KBS의 수신료 병합 징수가 시청자의 평가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재원 구조'라고 발의 배경을 밝혔다. 2017년 4월엔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하느냐에 대해 국민이 쉽게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며 전기료·수신료 분리 징수 법안을 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는 많다. 집권 여당에 따라 공수 역할을 바꿔온 셈이다.
“공정성 높이라”는 요구, KBS가 답을 내놔야 한다
수신료 논의가 있을 때마다 공정성은 KBS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명확한 기준을 세울 수 없는 공정성이 수신료 인상 여부를 가르는 잣대가 되어선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KBS에 공정성 요구가 지속된다는 점은 쉽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난해 11월 'KBS NEWS(뉴스)' 유튜브 채널이 'KBS 뉴스의 가장 아쉬운 점'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중 79%가 '공정성'을 꼽았다. 정확성(12%), 다양성(4%), 심층성(3%), 친숙성(2%) 등의 다른 선택지에 비해 압도적 비율이다.
공정성 강화는 KBS가 수신료 인상을 추진할 때마다 내놓았던 대표적 약속이다. 2007년엔 '공정성 지수' 개발, 2010년엔 '공정하고 신뢰받는 KBS'가 공적책무 강화 방안에 포함됐다. 이후 KBS가 논란의 중심에 설 때마다 공정한 방송이 되겠다는 약속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정작 '공정성'이 뭔지, 어떻게 해야 공정성을 지킬 수 있는지 KBS 스스로의 원칙이나 기준을 내놓지 못한 채 반성과 다짐을 반복해왔다.
애초 공정성 확보는 KBS의 다짐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집권 세력에 따라 KBS 이사진의 소수·다수 세력이 바뀌고, 상대적으로 정권 친화적인 세력이 사장에 오르는 관행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물론 일차적 책임은 나눠먹기 지배구조를 방치하는 정치권에 있다. 그럼에도 공정성을 높이란 요구에 공허한 약속을 되풀이하거나, 무기력한 반성에 그치는 공영방송이 시민들에게 수신료 인상을 설득하는 일은 앞뒤가 뒤바뀐 행태다. 지금의 체제에서 수신료 인상만으로 공정성 시비를 걷어낼 수 없단 사실은 시민들도, KBS도 알고 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수신료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정치권으로부터 지배구조 개선을 얻어내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가능할까. 한 개라도 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뭘 잡아야 할까”라고 물으며 “지금이라도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적절한 방식을 합리적으로 만드는 게 맞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억대연봉'이 문제? 공영방송 비정규직·장애인차별 주목해야
최근 떠오른 KBS 수신료 인상안의 걸림돌 요소로는 '억대 연봉' 프레임이 꼽힌다. 지난 1월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KBS 직원 60%가 연봉 1억원”이라 주장하자, KBS가 “실제 1억원 이상 연봉자는 46.4%”라고 반박하면서 떠오른 논란이다. 설상가상으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본인을 KBS 직원이라 밝힌 이가 “직원들 욕하지 마시고 능력되고 기회되면 우리 사우님 되세요”라고 비아냥 섞인 글을 올리면서 KBS가 재차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KBS 구성원에 대한 고액 연봉 지적에는 사측도 지속적으로 대책을 밝혀왔다. 양승동 사장은 지난해 7월 경영혁신안을 발표하면서 2023년까지 인건비 비중을 35%에서 30% 이하로 낮추고, 향후 4년간 1000명 규모의 감원을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이후에는 임금 인상 최소화 및 임원 임금 동결 기조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4월엔 직무재설계 및 조직개편으로 본사의 국·부·팀 60여개를 통폐합해 본사 전체 보직자의 12%가 감축됐다.
'고액 연봉자들이 놀고 먹는 KBS'란 지적은 수신료 인상 반대 여론에 불이 붙기 좋은 지점이다. 주류 미디어로서의 지상파 방송사 위상이 추락한 시점에선 KBS 구성원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경영진도 여러 대책을 밝혀왔다. 그러나 비전이 선명하지 않은 감축 위주 대응이 '공영방송답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안일하거나 전략이 없었던 회사의 책임이 구성원들에게 전가하거나 불합리한 근로조건 후퇴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우려가 남는다.
수신료 가치는 오히려 '억대 연봉' 공방이 한가롭게 들리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해 공개한 보고서(방송사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실태)에 따르면, 공공부문 방송사에서 일하는 노동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프리랜서 등 불안정 노동자다. 방송업계 특성상 여러 방송사를 전전하는 경우가 많은 비정규직·프리랜서 사이에선 종종 “KBS가 이럴 줄은 몰랐다”는 당혹감이 전해진다.
최근 KBS 시청자위원회에서도 “KBS 또한 복잡한 원·하청 구조나 외주제작사와의 관계에서 노동법상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진선미 위원(공인노무사, 휴먼플러스 대표)은 3월 회의에서 KBS의 근로환경 및 외주제작사 대상의 불공정 관행 해소를 촉구하며 “그것이 현재 KBS가 추진하는 수신료 인상을 통해 공영방송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책임있는 태도”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장애인을 상대로 한 고용 차별도 시정되지 않고 있다. 장애인고용촉진법상 공공기관 및 정부 출연기관의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2016년 2.7%, 2019년부터 3.4%다. 그러나 KBS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 2% 초반, 2019년 상반기 1.9%에 그쳤다.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사가 장애인의무고용률을 어기고 부담금을 내온 것이다. KBS가 국내 방송사 유일이라고 홍보해온 '장애인앵커' 제도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장애인·비장애인 진입을 나누고, 장애인을 비정규직으로 '선발'해 뉴스 진행 기회를 주는 시혜적 대상으로 간주한 한계 때문이다.
던져진 주사위, 수신료 '효용성' 높여야
KBS가 수신료 인상을 추진한 4번의 시도 중 국회에 제출됐던 3건의 인상안은 모두 당시 국회의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발의만 되고 제대로 된 심의 없이 폐기되는 수 많은 법안들과 같은 운명이었다.
KBS 구성원들의 우려 중 하나는 “이번에도 떠들썩하게 공론화만 하고 수신료 인상이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KBS가 최초로 숙의조사를 시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KBS가 여론전에 돈 쏟는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이런 우려가 더해졌다. '방만 경영' 비판과 함께 묶여 논란이 되기 쉬운 지점이다. 법과 제도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여론에 기대는 방식이 적절하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수신료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전직 KBS 고위 관계자는 “양승동 사장 취임 초기에 수신료 인상을 추진할 만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못한 적이 많다”며 “엄경철 전 통합뉴스룸국장이 취임 초기 공언했던 '출입처 폐지' 공약 같은 것들을 밀어붙이면서 (수신료 인상을) 추진했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전규찬 교수는 “수신료 인상을 위해 내세우는 조건·약속이 정치권, 시민들, 시민사회 활동가들에게도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수신료 인상이라는 당위와 필요성을 말하면서 동원되는 방식이 아닌, 현재 KBS 서비스 수준의 가치가 어떤지를 냉정하게 분석해서 이후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되짚어볼 수 있을 진정한 공론화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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