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이 동시에 러브콜..'K-반도체' 운명 어떻게 되나
중국도 "한국과 함께하길 희망"..靑, 15일 대책회의
(서울=뉴스1) 주성호 기자,김동규 기자,정상훈 기자 = 한국 반도체 산업이 또다시 '미·중 힘겨루기'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형국이다.
이번에는 미국과 중국이 앞다퉈 국내 반도체 기업에 "자신들과 협력을 강화하자"면서 노골적으로 '양자택일'식의 연대를 종용하는 모습이다.
반도체가 인공지능(AI), 슈퍼컴퓨터, 자율주행차 등 21세기 미래먹거리와 직결돼있다는 점에서 'G2'인 미국과 중국도 자국 산업 보호 및 육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 입장에선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곳도 놓칠 수 없는 최대 시장인데, 한국 정부도 뒤늦게 청와대 주재로 대책회의를 소집하며 대응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국내 산업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되 인력 양성과 투자 활성화를 위한 반도체 산업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K-반도체'에 가장 먼저 협력의 손짓을 보낸 곳은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인텔, 마이크론 등 주요 반도체 업체 외에 GM, 포드 같은 자동차 업체까지 총 19개 기업을 불러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한국 기업 중에서 유일하게 삼성전자가 참석했다.
당초 예상과 달리 회의가 열리기 직전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19개 기업 CEO들에게 인사말을 전했는데, 그 내용은 다소 직설적이고 압박의 수위가 높았다.
결론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는 인프라"라면서 회의에 모인 19개 기업들이 반도체 공급 확대를 위해 힘을 써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입장을 나타냈고 "20세기에 그러했듯 21세기에도 미국이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고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에 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경쟁력은 여러분의 투자에 달려있다"고 회의에 나선 기업들에게 투자를 확대해 일자리를 늘려달라고 촉구했다.
해외 반도체 기업으로 초청받은 삼성전자 입장에선 대놓고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라는 투자 요구서를 받은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 4차 산업혁명에 반도체가 핵심이 될 것이기 때문에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차원에서 미국이 선제적으로 이슈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까지 부른 것을 지켜보는 중국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미중 무역분쟁의 대표적 피해업체인 화웨이의 칼 송 대외협력 사장은 지난 13일 '글로벌 애널리스트 서밋' 간담회를 통해 "한국, 일본, 유럽 등 반도체 선진국과 협력해 글로벌 공급사슬을 다시 형성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공개적으로 "반도체 공급부족의 원인은 미국에 있다"며 비난을 퍼부으면서 동시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에는 함께하자는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미국과 중국에서 모두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는 분석이다.
김태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전략팀장은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 산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적어도 자국 내에서 공급망을 확보하는 데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면서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처한 현재 상황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는 전문가 분석도 제기된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 기업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투자를 해달라고 독려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선 좋은 것"이라며 "긴장은 하되 중심을 잘 잡으면서 계획대로 투자해 나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국가 혹은 기업과 협력하지 말란 의미의 '제재'라기보단 협력을 강화하자는 '유인책'이기 때문에 국내 기업 입장에선 최악의 상태는 아니라는 얘기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도 "미국, 유럽 등이 왜 반도체 투자를 유치하려는지를 살펴보면 반도체 산업 육성이 아니라 자국 산업 보호의 측면이 있다"면서 "미국과 중국도 그러한 이유로 자국에서 제조시설을 유치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업계 안팎에서 대응책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우리 정부도 오는 15일 청와대에서 대책회의를 소집한 상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를 포함한 주요 기업 CEO들과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예측하긴 힘들지만 전문가들은 메모리, 파운드리 등 종합적인 반도체 생태계 전체를 육성하기 위한 맞춤형 대책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강성철 연구위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공장, 인력 등 인프라"라며 "여기에 연구개발도 지금보다 강화하기 위해 세제혜택 등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도 "국내 기업이 해외가 아니라 한국에 더 투자할 수 있도록 전력 및 용수 공급이나 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더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윤 전경련 산업전략팀장은 "연구개발이 중요한 산업 특성상 주 52시간 근로제를 완화하는 등의 환경 개선도 중요하다"며 "양질의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과정 개편과 관련 학과 신설 등의 유연성도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sho21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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