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만 쉬려해도 갈 곳이 없네".. 배달의민족, 매출 1조 올리면서 배달원 쉼터는 안 만들어
갓길에 오토바이 정차, 주변 소음 등 피해·사고 위험성도
매출 1조 배달의민족, 직접 운영하는 배달원 쉼터 없어
"여기서 딱지를 떼가면 정말 갈 곳이 없다니까?"
지난 12일 정오쯤 서울 중구 고용노동청 앞에서 만난 배달원 정지준(72)씨는 배달 주문이 들어오는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숨부터 쉬었다. 고용노동청 정문 오른쪽에 위치한 넓은 부지는 대로변에 있고 인근 건물에 있는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서 오랫동안 배달원들의 휴식처 또는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최근 주차된 오토바이에 범칙금을 물리는 단속 사례가 잇따르면서 배달원들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정씨는 "거주지 근처에 오토바이를 대놨다가는 소음 때문에 바로 항의가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상품배송과 음식 배달 수요는 급증한 반면 배달원들을 위한 휴식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코로나에 따른 ‘집콕 특수’로 큰 수익을 올린 배달 관련 플랫폼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배달원들을 위한 휴식 공간 마련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9일 발표한 '2020년 온라인 및 오프라인 결합(O2O) 서비스 산업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퀵서비스⋅음식배달 등이 속한 운송 서비스 분야 거래액은 약 35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3.7% 증가했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음식 배달과 물품 배송 주문량이 늘면서 배달과 택배업 종사자들의 수와 업무량도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배달 근로자들이 업무를 위해 대기하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은 턱없이 부족해 이들을 위한 업무환경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오는 7월말 시행을 앞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36조에서는 "생활물류서비스사업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생활물류서비스 종사자들이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어 제37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생활물류 쉼터’에 관한 설치 및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현재 서울시가 운영 중인 ‘이동노동자 쉼터’는 서울 전역에 단 세 곳에 불과해 늘어난 이용 인원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정된 장소에 배달원이 몰려 지난 3월 기준 월 이용 인원은 합정쉼터 1600명, 서초쉼터 1500명, 북창쉼터 1200명에 달했다.
실제로 12일 찾은 이동노동자 북창쉼터는 승용차 9대가 겨우 들어가는 규모의 지하주차장 중 일부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주차장 한 기둥에는 "이륜차 주차는 녹색선 안쪽입니다"라는 문구와 "녹색선 안쪽에는 자동차 주차 안됩니다"라는 문구가 아래위로 붙어 있어 협소한 공간에서 배달 근로자들이 잠시 차량을 주차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배달원들은 이동노동자 쉼터와 관련해 한목소리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20년차 배달원 김현정(65)씨는 "일단 운영시간이 배달업과 안 맞는다"라며 "쉼터는 6시까지만 운영하는데 콜 배달 요청은 저녁에 들어오는 경우도 많고 무엇보다 우리는 주말에도 쉬지 않는다"고 했다.
선모(62)씨는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북창동 쉼터만 하더라도 주차공간이 너무 협소해 인근 거리에 오토바이를 대놓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4월 서울 등 일부 지자체에서 운영중인 이동노동자 쉼터를 지자체와 협의해 배달수요가 많은 상업·주거시설 인근으로 15곳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쉼터를 위탁 운영하고 있는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쉼터를 더 운영할 계획은 없다"면서 "예산의 제약으로 주말 연장 운영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배달 근로자를 위한 쉼터 확보를 위해 이들을 고용하거나 배달·택배 수요 증가로 큰 수익을 얻은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국내 배달앱 1위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경우 지난해 1조원을 넘는 매출을 올렸지만, 직접 운영하는 배달원 쉼터는 아직까지 없는 상황이다.
배달원 이모(28)씨는 "쉴때는 잠시 갓길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게 되는데 혹시 주변에 피해를 줄까봐 빨리 자리를 뜨게 된다"라며 "배달 관련 업체나 기업이 투자를 해 업무 종사자를 위한 휴식과 대기 공간을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부소장은 "배달원들은 하루 근로시간이 길기 때문에 호출이 떨어질 때까지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플랫폼 경제 구조가 정착하면서 불안정한 고용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이들이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업무 능률을 높일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 기업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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