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n스토리] 전쟁 같던 역학조사..3년 복무 마친 장한아람씨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이 정도면 군번줄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군 복무를 대신해 공중보건의사로 3년간 근무하는데 '제대' 말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역학조사관이라니.
인천에 배치된 공중보건의 19명 중 동기 18명은 3년 전 모두 섬으로 갔다.
생각도 못 했던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감염 확산 저지를 위한 최일선에서 전쟁 같던 조사 업무를 치르느라 눈코 뜰 새 없었지만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고 돌아 복무 만료의 순간이 왔다.
인천시 역학조사관 장한아람(34)씨 이야기다.
2018년 4월 배치된 장씨는 오는 15일 3년간의 복무를 마치고 현장을 떠난다.
한의학을 전공한 장씨는 한의사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경희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다시 공부한 뒤 군 복무를 마치기 위해 공중보건의 길을 택했다.
역학조사관을 맡게 된 건 동기들과 제비뽑기한 결과였지만 그는 원래부터 역학조사관 업무에 관심이 많았다.
"질병 발생 원인을 규명하고 감염 경로를 차단하는 역학조사관의 일이 보람 있을 거 같았어요. 섬에서 환자 돌보는 것도 좋겠지만 앞으로도 환자는 엄청나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공중보건의 기간에라도 역학조사 업무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렇다 할 큰 현안 없이 복무 기간의 절반을 보냈을 때 작년 1월 코로나19 사태가 촉발됐다.
서로의 만남이 통제되고 하늘길까지 막히는 전대미문의 사태 속에 장 조사관의 일상도 그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초기에는 방역 지침이 체계적으로 잡히지 않아 인천 10개 군·구 보건소로부터 밀려오는 문의 전화에 응대하기도 쉽지 않았다.
남들이 다 피하는 집단 감염 장소에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 환경 검체를 꼼꼼하게 채취해 보건환경연구원으로 분석을 의뢰해야 했다. 방호복을 입고 있어도 "나도 언제든지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확진자들과 접촉하는 일도 감정 소모가 큰 작업이었다. 전화 통화로 동선을 물어보면 "왜 남의 개인정보를 알려 하느냐"며 그냥 끊어버리는 탓에 다시 방호복을 챙겨 입고 병실로 직접 찾아가 이동 경로를 알아내야 했다.
이마저도 거짓 진술하는 경우가 많아 집 주변 폐쇄회로(CCTV) 기록, 신용카드 이용 내역, 병·의원 진료 기록 등을 발품 팔아 챙기고 분석하느라 밤을 꼬박 새우는 일도 다반사였다.
집단 감염 장소를 수시로 방문하고 확진자와 자주 접촉하는 업무를 맡다 보니 혹시나 본인도 모르게 바이러스를 다른 이에게 감염시킬까 봐 외부 접촉은 최소화했다.
식당 방문 대신 거의 매일 짜장면만 사무실로 주문해 먹고, 휴일에도 사람 많은 곳에는 가지 않았다.
그전엔 괜찮았던 혈압이 높아지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면증까지 생겼지만, 병원 갈 시간도 없어서 "복무 마치면 저절로 낫겠지"라는 생각으로 애써 위안 삼았다.
그래도 코로나19 발생 초기에는 인천시의 유일한 역학조사관이었지만 이후 인력이 충원돼 현재는 8명이 역학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장 조사관을 비롯한 역학조사관들의 헌신적인 노력 등으로 인천시의 코로나19 발생률은 서울·경기 등 같은 생활권인 수도권 다른 시·도보다 현저하게 낮은 편이다.
14일 현재 10만명당 코로나19 발생률은 서울 355명, 경기 233명, 인천 182명이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그의 공로를 높게 평가해 이날 공로패를 전달했다.
장 조사관은 "인천은 검체 검사를 선제적이고 공격적으로 하고 관할 범위가 넓은 서울·경기와 달리 시와 군·구간 협조체계가 잘 돼 있어서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했다고 본다"며 "그러나 언제든지 확진자 수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방역 당국이나 시민 모두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장 조사관은 복무 만료 후에는 새로 근무할 병원을 찾으며 당분간 구직 활동에 전념할 예정이다.
"공중보건의 3년 차면 진로 결정에도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그걸 준비 못 한 게 좀 불안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제 시간을 많이 희생했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에 썼기 때문에 오히려 뿌듯한 마음도 있고요. 믿음을 줄 수 있는 의료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더 굳히는 계기도 됐습니다."
인터뷰 중에도 휴대전화와 문자 알림음은 계속 울려댔다. 평소 많게는 하루 수백통의 전화를 받는 습관 때문인지 표정은 무뚝뚝하고 질문에 대한 답도 빨랐다.
복무 만료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야 비로소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헬스장 가서 운동도 실컷 하고 그동안 미뤘던 캠핑도 가고 싶은데, 지금 상황 보면 다 안 될 일들이죠. 그래도 뭐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같이 그날을 기대해 보시죠."
iny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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