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백신 아닌 기저질환 때문"..이 말이 신뢰를 받으려면

박수진 기자 2021. 4. 14. 11: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AZ 백신 접종 후 뇌출혈 환자 사례로 본 '인과성 조사' 통보의 문제점


※ 기사에 언급된 사례자의 개인정보(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 내용, 의료기관 진단서 등)는 보호자의 동의하에 공개하는 내용입니다 ※

어머니 김 씨를 처음 만난 건 천안의 한 대학병원이었습니다. 신경외과 진료실 앞에서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던 김 씨. 10분 남짓한 의사 면담을 마치고 다시 만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사가) 절대 아니래요. 백신 때문은 아니래요. 백신 이야기는 자기한테 물어보지 말고 정부에 물어보라고…"

김 씨의 40대 아들은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을 맞았습니다. 이후 뇌출혈 증세로 긴급 수술을 받았고 현재는 의식 없이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백신을 맞은 후 아들의 건강이 악화됐다는 게 어머니 김 씨의 주장입니다. 지금부터 취재로 확인된 '사실'만 정리해보겠습니다.

[사실1] 10년간 뇌출혈 후유증 앓아온 요양병원 환자

아들은 10년 전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이후 10년간 요양병원 생활을 해왔습니다. 뇌출혈 후유증으로 5살 아이 정도의 지적 수준을 보여왔습니다. 짧은 단어로 말은 가능하지만 긴 문장은 어려웠습니다. 인지 능력은 있었고, 음식 섭취 등엔 문제가 없었습니다. 10년 동안 이외 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사실2] AZ 백신 접종 '1일 11시간' 이후 사지마비 등 이상반응

아들은 지난달 2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았습니다. 어머니는 접종에 동의했습니다. 질병관리청 기록을 기준으로 1일 11시간 이후 이상반응이 나타났습니다. 당시 요양병원 의료진 소견서에 따르면 ▲왼팔 근력 저하 ▲발열▲삼킴 장애 ▲거미막하 출혈 ▲상세불명 사지마비입니다.
 

[사실3] 뇌출혈 진단 후 긴급 수술…의식불명

아들은 지난달 12일 천안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상태가 점차 악화돼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요양병원 의료진 판단이었습니다. 보호자 주장에 따르면 요양병원은 이때 지역 보건소에 '접종 후 이상반응 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대학병원 신경외과에서는 ▲상세불명 두개 내 출혈 ▲자발성 뇌실 내 출혈, 즉 뇌출혈 진단을 내렸습니다. 보호자의 동의하에 다음 날 수술이 진행됐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최근 일반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여전히 의식은 없는 상태입니다.

[사실4] 질병청 피해조사반 '백신 인과성' 조사

김 씨 아들의 사례는 보건소, 지자체를 거쳐 질병관리청에 보고됐습니다. 질병관리청 피해조사반은 이 사례를 조사했습니다. 아들의 뇌출혈 발생이 백신 때문인지 아닌지에 대한 조사입니다. 지난 3월 22일 질병관리청 보도자료에 아들의 피해 조사 결과가 담겼습니다. '중증 사례 평가 결과' 목록에 가장 마지막, 10번째 사례였습니다. 결과는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움'입니다. 뇌출혈과 백신 접종은 무관하다는 결론입니다.
 

[사실5] A4 한 장 안내문 "기저질환 때문"…이유는?

질병관리청 발표가 있던 당일, 김 씨에게도 결과 안내문이 발송됩니다. 발송 주체는 '아산시'입니다. 질병관리청은 피해 조사 결과를 지자체를 통해 당사자와 가족에게 통보하고 있습니다. 결과 안내문은 A4용지 한 장입니다. 안내문은 환자 당사자와 보호자에 대한 위로로 시작합니다. 피해조사반이 2차례 검토 회의를 했다는 절차도 담겼습니다. 인과성 조사의 내용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백신 접종에 의한 것보다는 다른 이유로 인한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
"현재까지 연구 결과 및 환자의 기저질환 임상 경과를 고려해보니 기저질환에 의한 발생 가능성"


안내문의 말미엔 피해 조사 결과와 무관하게 피해 보상 신청이 가능하다로 마무리됩니다. 단, 이런 전제가 있습니다. "보상을 위한 심의 또한 다른 정보가 추가되지 않으면 동일한 기준으로 접근."
 

[사실6] 질병청 '결과 통보 매뉴얼' 현장에선 무용지물

이 안내문에선 '인과성이 없다'는 말은 있지만 '왜 인과성이 없는지' 구체적 내용은 없습니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 및 환자의 기저질환 임상 경과를 고려해보니>로 갈음된, 구체적 판단 근거가 나와있지 않습니다. 고령인 김 씨는 이 안내문만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건소, 지자체, 질병관리청 등 "어디도 전화 한 통 해주는 곳이 없다"는 게 김 씨의 주장입니다.

질병관리청은 지자체를 통해 조사 결과를 당사자나 가족에게 통보하고, 세부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지자체를 통해 대응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피해조사반 회의를 할 때 해당 지자체가 참석을 하는 만큼 논의 내용을 듣고 있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당사자나 보호자에게 관련 설명이 가능하다는 게 질병청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김 씨의 사례로 보면, 이 절차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결과 안내문에는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어디로 연락하라는 안내 문구 한 줄 없습니다.

[사실7] 보건소 "우린 답변 능력이 안 된다"

김 씨는 스스로 보건소와 질병관리청 1339 콜센터에 전화했습니다. 보건소 관계자는 "어르신이 어떤 걸 원하는지 아는데 보건소는 그런 내용을 답변할 능력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질병관리청에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일반 국민이 질병관리청에 문의를 할 때 접근이 가능한 곳은 1339콜센터입니다. 콜센터 직원은 이런 중증 이상반응 신고 사례 관련해 어떻게 대응을 해야하는지 숙지가 안 된 상태였습니다. "백신 주사와의 인과성 조사는 보건소 측에서 하는 것이니 보건소로 물어봐라"는 답변을 했습니다. 피해조사는 질병청 피해조사반에서 하는 것인데, 대민 상담을 하는 콜센터 직원은 이런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답변입니다.
(이와는 별도로, 김 씨는 피해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 답답한 마음에 직접 충북 오송에 있는 질병관리청에 직접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때도 '보건소로 가셔야 한다'는 답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점1] 당사자와 보호자도 알 수 없는 '인과성 없다' 이유

여기부터는 앞에 언급한 사실들과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제기하는 문제점입니다. 질병관리청 피해조사반은 매주 월요일 조사 결과와 심의 현황을 보도자료와 브리핑을 통해 공개합니다. 아나필락시스, 중증 의심, 사망 신고 이렇게 3개 분야로 나눠서 몇 건을 조사, 심의했고 각 사례의 결과가 어떤지 발표합니다. 환자의 연령대와 요양병원 입원 유무, 기저질환 여부 유무, 개괄적인 이상반응의 종류, 그리고 피해 조사 결과 백신과의 인과성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환자의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기자를 포함한 대중에겐 상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당사자와 가족은 다르겠죠. 백신 접종 후 예상치 못한 이상반응이나 건강 상태 악화가 발생했다면 당사자와 가족들은 '백신 접종'과의 연관성을 의심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 김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 기저질환 없는 사람도 있나요? 우리 아들이 요양병원에서 10년 있었지만, 나름 건강했어요. 뇌출혈 후유증 말고는 다른 질환도 없었고요.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됐다면 그 이유와 근거가 있을 거 아니에요? 백신 때문이 아니면 그게 뭔지를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냥 무조건 '아니다'라고 하니까 더 의심이 생기잖아요"
 

[문제점2] 국민 눈높이 고려 안 한 공급자 중심의 '설명'

국내외에서 접종 후 부작용 사례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만큼 정보가 차단된 일반 국민들은 불안감이 커질 수 있습니다. 당사자와 가족들이 피해 조사 결과를 납득 할 수 있는 충분한 설명과 소통이 필수적입니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백신 접종이 완전히 100% 개인의 선택이라면 모르지만 현실은 집단면역이라는 목표를 두고 국민의 접종을 독려하는 상황"이라며 "서로의 접종을 도모해야 한다면 객관적 정보 전달을 넘어선 적극적 소통을 통한 신뢰 확보가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질병관리청의 피해 조사 결과 안내문에 대해선 "설명의 요건은 갖추고 있는 편이나 '설명'에만 그치고 있다. 정보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 어떤 것이 필요할지 먼저 살펴야 한다"며 "국민의 미충족 수요를 최소화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의료 소통에 있어서 핵심은 환자 중심의 소통이 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중앙(부처)에서 개별 사례를 대응하기는 어렵다. 시도 방역당국과 보건소를 통해 안내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김 씨 사례에서 보듯 질병관리청이 '국민 소통' 역할을 위임한 지자체와 보건소는 충분한 정보를 알고 있지 못해 대응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질병청 콜센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2일 기준 질병관리청 피해조사반이 결론을 내린 이상반응 신고 사례는 49건입니다. 이중 백신 접종과의 인과성이 인정된 경우는 2건. 백신과 연관이 없이 발생한 증상이라고 결론난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백신 접종자가 늘어날수록 조사 대상이 되는 중증 의심 사례도 늘어날 겁니다. 정부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집단면역을 위한 백신 접종을 적극 독려하기 위해서라도 환자와 보호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적극적 소통이 필요합니다.
 

🎧 아래 주소로 접속하시면 음성으로 기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https://news.sbs.co.kr/d/?id=N1006279385 ]

박수진 기자start@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