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식장서 구조된 '와와'..다시 내쫓기면?
유기견 '와와'는 조용했습니다.
녹색 철제 울타리를 열고 들어가는 순간, 목청껏 짖으며 안기는 다른 강아지들과 달랐습니다. 사막여우 같은 귀를 쫑긋 세우고, 커다란 눈으로 취재진을 이리저리 살피기만 했습니다. 어쩌다 가까이 다가가면 뒷걸음질 치며 좀처럼 곁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와와는 지난 2016년 번식장에서 구조됐습니다. 보호소에 온 지 5년째이지만,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꼬불거리는 갈색 털을 지닌 '토토'는 이번 달 11일 안락사 위기에서 구조됐습니다.
토토는 힘이 셉니다. 안아달라고 올라타길래 잠시 품에 안았는데, 놓아주려고 할 때 두 앞발로 취재진의 팔을 힘껏 끌어안았습니다. 깡 마른 체구인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그만큼 사람을 좋아하고 잘 따르는 친구입니다.
와와가 엄마처럼 믿고 따르는 10살 예지, 까만 털을 지닌 9살 동건이, 구석을 좋아하는 3살 맑음이까지…. 개농장과 번식장 등에서 구조된 유기견들 200여 마리가 모여있는 곳이 있습니다.
전남 나주 봉황면에 위치한 '나주 천사의 집'입니다. '나주 천사의 집'(이하 나천사)은 사설 유기동물보호소인데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오직 시민 후원금과 봉사만으로 운영됩니다.
그런데 최근 나천사가 쫓겨날 위기에 놓였습니다. 지자체로부터 '철거 명령'을 통보받은 건데요. 무슨 사연일까요?
■ '건축법 위반' 사실 적발…. 3개월 이내에 '원상 복구'해야
최근 나주시에 민원이 제기됐습니다. 나천사가 건축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시가 현장에 나가 점검한 결과 실제 건축법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농촌 마을에 위치한 나천사 부지는 500평 규모입니다. 절반은 나천사 설립자가 무상으로 내준 '농지'이고, 나머지 절반은 '대지'입니다. 농지는 농사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농지에 있는 건축물은 모두 철거해야 합니다.
대지에서도 건축법을 위반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동물들이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처마'를 설치했는데 허가받지 않았습니다. 늘어나는 유기동물을 수용하고, 좀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설치한 시설들이 모두 법을 위반한 겁니다.
문제는 시민 후원으로만 운영돼 철거도, 이전도 쉽지 않다는 겁니다. 철거에 드는 비용만 수억 원입니다. 동물들을 보호할 대체 시설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주시는 법을 위반한 이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나천사 임용관 소장은 "지금도 하루에 수십 건씩 구조요청이 들어오는데,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철거하라고 하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이 아이들을 구조해서 더 위험한 상황으로 내모는 건 아닌지 자괴감이 든다"고 밝혔습니다.
■ 보호소 증축하려다 법 위반…. 전국 곳곳에서 갈등 되풀이
지난해 나주시의 유기동물은 670마리입니다. 1년 사이 200마리 가까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나주시가 운영하는 유기동물보호소는 단 한 곳에 불과합니다. 이마저도 80마리만 수용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나머지 유기동물들은 나천사와 같은 사설 보호소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해마다 늘어나는 유기동물을 구조하고 돌보기 위해 시설을 증축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법을 위반하게 된 겁니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대전 '시온쉼터'나 김포 '아지네 마을' 등도 같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유기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제한구역에 보호소를 짓거나, 건축법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돼 지자체로부터 철거 명령을 통보받은 겁니다.
두 곳 모두 수백 마리의 유기동물들을 돌봐온 사설 보호소였습니다. 기간 내에 철거하지도, 이전하지도 못해 수천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내야 했습니다.
■ 심각해지는 유기동물 문제… 지자체가 함께 고민해야!
불법을 저지른 건 명백한 잘못입니다. 하지만 사설 보호소들이 지자체가 수용할 수 없는 유기동물들을 보호하고 있었던 만큼 지자체가 더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불법 건축물 단속과 별개로 동물 복지 차원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겁니다.
김성호 한국성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유기견을 보호할 책임은 지자체에 있다"면서 "지자체 재량권을 발휘해 사설 보호소는 물론 시민사회단체와 동물복지 단체 등이 한데 모여 유기동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기동물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이를 보호하고 관리할 지자체 직영 보호소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실제 경기도 시흥시는 올해 1월 동물보호센터 건립에 착공했습니다. 폐기된 군부대 부지에 들어서는데요.
동물보호 동에는 유기견과 버려진 고양이 100마리를 수용할 수 있고, 입소동물의 진료가 가능한 동물병원도 조성돼 연간 1,000마리 이상의 유기동물들이 관리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시는 자치구 별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동구와 노원구는 자치구 직영으로 유기동물 입양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유기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와 무분별한 번식을 막기 위한 중성화 사업도 진행한다고 합니다.
곳곳에서 철거명령을 통보받는 사설 보호소들. 유기동물들이 사람에게 버림받고도 또 외면당하지 않게, 유기동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 절실한 때입니다.
김애린 기자 (thirst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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