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의 지지율, 결국 이들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플랫]

플랫팀 기자 twitter.com/flatflat38 2021. 4. 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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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4·7 재·보궐 선거를 계기로 ‘이남자’가 다시 정체를 드러냈다. 이남자는 20대 남자의 줄임말.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를 70% 이상의 비율로 압도적으로 지지한 층이다. 집권당이 외면한 ‘공정’을 요구한 집단이자 젊은 세대 보수화의 신호이기도 하다. 급부상한 페미니즘에 피해의식을 갖는 계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진보 기득권 세력이 된 586세대, 나도 속한 그 세대의 아들이다. 친구나 또래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세대가 아들과 딸을 키운 태도에는 어떤 특징이 있다. 초창기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은 우리는 딸에게 분홍 옷을 입히지 않고 거침없이 키우고자 노력했다. 적어도 다음 세대에서는 보다 양성평등이 이뤄지길 바랐다. 그래서 아들에게는 설거지를 시키면서 전통적인 마초 대신 좀 더 부드러운 남성으로 커주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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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노력이 의도된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둘 다 상처를 입은 면이 있다. 딸은 부모 그늘에서 구김살 없이 자랐으나 사회에 나가면서 차별과 불평등을 경험한다. 의식과 제도 간의 지체현상인데 그 불편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기에 훨씬 고통스럽다. 아들의 경우는 또 다르다. 이 세대 전체에게 아주 작은 파이가 주어졌는데, 여전히 부유하는 퇴행적 남성성을 습득한 이들은 제도가 주는 압력과 스트레스의 화살을 여성에게 돌린다. 세대 간 격차, 계급 간 불평등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별 간 불공정으로 도치된다.

몇 년 전 ‘시사인’ 천관율 기자의 ‘20대 남자론’을 눈여겨보았다. 아들의 의식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수정치를 지지하는 이남자의 핵심은 ‘남성 마이너리티의 탄생’이다. 페미니즘의 부상과 양성평등정책은 그 위 세대 남성들에게도 불만의 대상이지만, 그들의 사고는 여전히 남성중심사회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이 세대가 되면 역차별 정도가 아니라 여성중심사회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에 반대해서 <90년생 김지훈>을 쓰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오고, 많은 청년들이 통쾌함을 느낀다.

📌 [플랫]청년 남성 절반은 “남자가 차별받는다”고 생각한다

이제 김지훈들은 대학생이나 취준생, 비정규직, 인턴이 되었다. 이들이 보수정치를 지지하는 게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빼앗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사회집단 간 차별을 지키려는 보수를 지지한다는 것은 검증된 사실이다. 이들에게는 많은 권력과 자원을 가졌으면서도 입으로만 바른말을 하는 진보의 위선이야말로 가장 큰 적이다. 페미니즘이 남녀 간 대결이라는 저급한 담론으로 유통되는 가운데 알파걸처럼 보이는, 더구나 편의점 AI 발언으로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박영선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질 리 만무하다.

그러면 20대 여성은 어떤가.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여성 유권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양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40%대로 비슷한 가운데 소수정당이나 무소속의 ‘기타 후보’에게 15%의 지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기타 후보’에게 10%가 넘는 지지를 보낸 성별과 세대는 20대 이하 여성이 유일했다. 양당 후보에게 가렸던 후보들은 신지혜(기본소득당), 오태양(미래당), 김진아(여성의당), 송명숙(진보당), 신지예(무소속·팀서울) 등 양성평등이나 차별금지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 [플랫]20대 여성의 15%는 무소속과 소수정당을 지지했다

젊은 여성들 역시 전통적인 진보에 큰 기대를 걸 리 없다. 진보 여성정치인들은 성폭력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불렀고, 진보 남성정치인들은 가해자를 계속 옹호했다. 대안이 필요한데, 미약하나마 기타 후보에게서 그 실마리를 찾은 셈이다. 페미니즘은 남녀 간 대결이라는 유아적 단계를 벗어나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비건 페미니스트들이다. 남성이나 사회제도를 상대로 싸우는 것을 넘어 소수자와 비인간존재로 눈을 돌리고, 동물에 대한 연민을 채식과 생태환경, 기후 문제까지 확장시킨다. 굳이 국가가 원하는 대로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더라도 생명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다. 선거결과가 어떻든 세상을 바꿔가는 이들이다.

젊은 여성들이 보이는 변화의 조짐은 조만간 젊은 남성들에게로 전파될 것이다. 페미니즘의 적은 다양성과 공존을 막는 사회제도이지 남성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을 나누고 대립시키는 담론은 오로지 구조화된 차별을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 정치세력에만 유리하다. 성별 간 공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대 간, 계급 간 공정이다. 일견 너무 다른 정치적 성향을 보이는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차이를 줄이는 건 우리 시대의 과제이다. 이들은 서로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적 의미와 삶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플랫팀 기자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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