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기무사 '입대 예정자' 사찰 문건 최초 확인
박근혜 정부 시절 옛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민간인 신분인 입대 예정자를 사찰해 정보를 수집한 사실이 문건으로 처음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14일 박근혜 정부 시절 기무사가 입대 예정자를 사찰한 '첩보 입수 보고' 문건을 확보했다.
2014년 1월 7일 국군 제316기무부대가 작성한 '첩보 입수 보고(육군 논산훈련소 훈련병 OOO / 사이버)'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군복무를 한 김성철(가명) 씨에 대한 인적사항 등이 적혀 있다. 이 문건에서 기무사는 김 씨를 "OO 성향 인터넷 사이트인 OOO 운영 관리자로 활동하며 좌파단체와 연대하여 국보법 폐지 및 미군철수 주장,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등 반정부 활동에 적극 참여타 육군 병사로 입대한 용의자"라고 표현했다.
이밖에 당시 김 씨의 소속이었던 육군 논산훈련소, 계급, 주민등록번호, 최종 학력, 페이스북과 트위터 아이디 등 인적사항이 적혀 있었다. 나머지 2쪽 분량은 백지 상태로 공개하지 않았다. 비공개처리한 부분에는 김 씨가 당시 어떤 혐의를 받아 용의선상에 올라 있는 것인지, 문제를 삼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내용은 무엇인지 등이 기록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주목할 부분은 이런 정보를 입수한 날짜다. 이 문건에 따르면 김 씨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시기는 2013년 12월 3일. 그런데 김 씨가 입대한 날짜는 2013년 12월 16일이다. 기무사가 군에 입대하기 전 민간인이었던 김 씨에 대해 사찰하고 이를 첩보 입수라는 명목으로 윗선에 보고를 한 것이다. 기무사는 원래 군대 내의 방첩활동과 군사 기밀을 보호하는 활동을 하는 기관이다. 아직 민간인 신분이었던 김 씨를 용의자로 지칭하면서 사찰한 것은 기관의 설립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 위법의 소지가 있다.
김 씨는 지난 2월 군사 안보지원사에 본인에 대해 옛 기무사가 수집한 첩보 및 일반자료 일체를 공개해달라는 내용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해 이런 내용의 문건을 일부 공개받았다. 그런데 김 씨가 옛 기무사가 본인을 사찰한 문건을 공개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씨는 지난 2019년에도 국방부에 옛 기무사가 수집한 본인의 개인정보가 있는지 정보공개 청구를 했었다. 당시는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이명박 정부 국정원으로부터 불법 사찰을 당했다며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고 소송을 내 1심에서 승소했던 시기였다. 안보지원사는 당시에도 두 쪽 짜리 문건을 공개했다.
2019년에 공개받은 문건은 2014년 1월 국군 제502기무부대가 작성한 '첩보 입수 보고(진보신당 학생위원회 활동 장병 발굴)'라는 문건이다. 이 문건에서 기무사는 김 씨에 대해 "진보신당 학생위원회 등에 가입‧활동타 입대"했다며 '용의자'라는 표현을 썼다. 김 씨는 당시 육군훈련소 훈련병이었다. 기무사는 김 씨가 진보신당 학생위원회, 강정마을 사람들, 희망텐트촌,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연합 등과 관련된 싸이월드 클럽과 페이스북 그룹에 가입해 활동했다고 적었다. 이런 정보를 입수한 시기는 2014년 1월 2일로 김 씨가 입대한 지 17일 뒤였다. 정보 입수 장소는 강원도 양구 소재 한 PC방이었다.
이 두 개의 문건을 종합해보면 기무사는 군에 입대하기 전부터 김 씨에 대한 사찰을 시작해 입대 뒤 훈련병 시절까지 사찰을 계속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김 씨는 훈련병 시절 중대장에게 호출을 당해 "혹시 활동했던 게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김 씨가 정보공개 청구로 옛 기무사의 사찰 문건을 공개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 쌔미(활동명) 씨도 지난 3월 국방부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안보지원사에는 쌔미 씨와 관련된 사찰 문건도 남아 있었다. 쌔미 씨가 부분 공개받은 문건의 제목 역시 '첩보 입수 보고'. 이 문건은 2014년 1월 8일 국군 제317기무부대가 작성했다. 기무사가 김성철 씨의 경우 어떤 '혐의'를 받는 용의자인지 밝히지 않은 반면, 쌔미 씨의 문건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용의자라고 명시돼 있었다. 정보 입수 일시와 장소는 비공개 처리돼 있고 '용의자 인적사항'란에는 소속, 계급, 성명, 생년월일, 학력 등이 적혀 있다. 특이한 점은 쌔미 씨의 인적사항에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이 아닌 실제 생년월일이 기록돼 있다는 점이다. 쌔미 씨는 "부모님이 한달 늦게 출생신고를 하셔서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이 바뀌었는데 정말 개인적인 것까지 알아낸 것을 보면 보통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허술한 내용도 있었다. 쌔미 씨의 소속 부대 이름이 잘못 기록돼 있고, 입대 당시 대학교를 졸업한 상태였지만 '4년재'라고 적은 점이다.
쌔미 씨도 김성철 씨와 마찬가지로 사찰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15년 초 상병 시절 주임 원사가 쌔미 씨에게 뜬금없이 'SNS를 하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당시 쌔미 씨는 장병들이 사용하도록 비치된 PC에서 종종 세월호와 관련된 트윗을 리트윗했다고 한다. 지인의 사촌동생이 세월호 참사로 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쌔미 씨에 대한 사찰 문건이 작성된 시기는 2014년 1월이고 주임 원사로부터 'SNS를 하냐'는 질문을 받은 시점은 2015년 초. 쌔미 씨는 이 때문에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본인도 모르게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김성철 씨와 쌔미 씨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2012년 당시 북한의 노동당 대남선전기구가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 트윗을 리트윗했던 박정근 씨의 트윗을 리트윗했다는 점이었다. 박정근 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첫 사례였으나 이후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2년은 두 사람 모두 군 복무 시기가 아니었으므로 기무사가 군 입대 전 트윗을 문제삼아 용의선상에 올린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안보지원사 측은 "두 사람이 왜 당시 용의선상에 올랐는 지는 수사정보와 관련된 사항이어서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면서도 "박정근 씨 트윗을 리트윗했기 때문에 용의선상에 올랐던 것은 아니라는 점은 확인해 줄 수 있다"고 밝혔다.
김성철 씨는 안보지원사를 상대로 부분 공개에 대해 이의제기를 했지만 안보지원사는 "수사기법, 정보수집 경로 등의 내용이 포함돼 범죄예방 및 수사 업무 수행에 제한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에 대해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민간인 정보 수집 자체가 불법인데 그 경로가 노출될까봐 공개가 안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정보수집 경로를 오픈하지 않고 앞으로도 이렇게 하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에서 활동하는 김남주 변호사는 "군 입대 전 군과 대립되는 의견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용의선상에 올려놨다는 건 국민의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기무사는 과거 정권에서의 민간인 사찰 문제가 논란이 돼 해체되고 안보지원사로 개편됐다. 안보지원사로 개편되면서 법령에 특별히 추가된 내용 중 하나는 바로 민간인에 대한 정보 수집, 즉 사찰을 금지한다는 원칙이다.
안보지원사는 "(박근혜 정부) 당시 기무사 일부 예하부대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가능성이 있는 군 입대 예정자에 대해 첩보 보고한 사례가 있었다"며 사찰 사실을 시인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법과 규정에 부합한 임무가 아니라며 사령부 차원에서 하지 말라는 조치를 내렸다"며 "현재는 입대 예정자에 대한 정보수집을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김성철 씨는 안보지원사가 비공개한 문건을 모두 공개받기 위해 행정심판을 제기할 예정이다. 김 씨는 "안보지원사가 민간인 사찰을 한 과거를 완전히 씻겠다고 하면서도 비공개하는 자료가 있다는 것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쌔미 씨는 "정부 차원에서 사찰 피해자 사례를 모으고 다음부터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을 지겠다는 얘기를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뉴스타파 조현미 ssal@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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