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끌려다니다 길 잃어.. 韓·美정상 만나도 돌파구 요원 [한반도 인사이트]
文 선거 패배로 구심력 급격하게 약화
美·中간 패권 경쟁 심화로 변수 많아져
北도 文정부 중재자 역할 기대 접은 듯
최근 미사일 도발하며 말폭탄 쏟아내
올림픽 불참으로 '도쿄구상'도 물거품
美, 北에 제재 풀어줄 명분 찾기 어려워
바이든 정책, 北 기대 못 미칠 가능성 커
韓·美간의 '北 비핵화' 시각차도 걸림돌
전문가들 "文, 트럼프때의 정책 또 꺼내
이벤트성보다 동맹 측면 조율 더 중요"
정상 간 ‘톱다운 방식’에 기대를 걸고 북·미 사이에서 중재 의지를 밝혀 온 문재인정부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는 형편이다. 지난 1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패권경쟁이 날로 심화하는 외교적 변수를 고려할 때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문재인정부에는 시간도 많지 않다. 임기는 1년 남짓 남았지만 올 하반기에는 정국이 내년 대선 국면으로 전환할 것이어서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몇개월에 불과하다.
◆미사일 발사에 도쿄올림픽 불참까지 선언한 북한
북한은 문재인정부의 중재자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접은 기류다. 최근 다시 미사일 도발에 나서고 문 대통령에게는 말폭탄을 쏟아냈다. 7월 개막하는 도쿄올림픽 불참을 선언하며 올림픽을 남북, 북·미 대화 재개의 전기로 삼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추진하려던 문 대통령의 ‘도쿄 구상’도 무산시켰다.
◆北 SLBM 도발 나서면 文정부 입지 더 축소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 간 시각차는 지난달 18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2+2)회의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공동성명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한 ‘북한의 비핵화’라는 표현이 담기지 않았다. 공동기자회견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유산인 ‘싱가포르 북·미 공동선언’ 계승 여부를 두고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했지만, 블링컨 장관은 언급을 피했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 정부가 언급을 꺼리는 북한 인권 문제도 강한 어조로 제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블링컨·오스틴 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실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혀 평화 프로세스에 방점을 찍었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길을 잃은 건 현실과 괴리된 데다 북한에 끌려다닌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전 러시아 주재 대사는 “문재인정부가 추구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방향을 변화하는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면서 “바이든 행정부에서 2018년(한반도 평화 모드)을 재현하는 건 트럼프 행정부 때보다 어려운 일인데도 정부는 당시와 똑같이 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정부가 대북정책 추진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북한에 끌려다니다 보니 북한의 요구 사항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면서 “대북제재 등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풀 수 없는 과제에 봉착하니까 북한이 남북관계를 저버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북·미관계 아래 두겠다’는 정책 방향을 정하면서 중재자 역할을 하려는 정부의 입지가 좁아졌다”면서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의 반중 전선 동참 요구에 응하지 않으니 북한 문제를 조율하는 데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불씨를 살릴 방법은 없는 걸까.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 조기 개최 등을 돌파구로 삼을 여지가 있지만 성과가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신 센터장은 “정부가 남북관계에서의 성과를 부각하기 위해 정상회담이나 고위급회담을 추진하려고 하겠지만 그렇다고 외교안보 환경이 바뀌는 게 아니어서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 “5월에 한·미 정상회담을 한다고 해도 공허한 회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위 전 대사도 “보수와 진보를 떠나 큰 이벤트를 만들어 상황에 대처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 게 한국 외교의 고질병 가운데 하나”라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한다고 해도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교수는 “동맹 측면에서 미국과의 대북정책 조율이 필요하며 더 중요한 건 대중정책에 대한 정부 입장을 정하는 것”이라면서 “전략적 모호성으로는 미국과의 조율에 한계가 있다”고 조언했다.
원재연 선임기자 march2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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