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배송은 로켓인데, 왜 정산은 거북이일까요?
■ 팔리긴 팔리는데 돈을 벌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쿠팡 마켓플레이스에서 4년째 의류를 팔고 있는 김 모 씨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김 씨가 이런 선택을 한 데는 쿠팡의 '느림보 정산'이 한몫을 했습니다. 물건을 팔아도 실제 돈을 손에 쥐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50일. 돈을 받아야 재고를 새로 채워 상품을 추가로 판매할 수가 있는데 이 구조가 막혀버린 겁니다.
"그렇게 힘들면 쿠팡에서 물건을 팔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되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점유율이 높은 판매 채널 하나를 포기하는 건 판매자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쿠팡처럼 마케팅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소비자들의 충성도가 높은 플랫폼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쿠팡 판매자는 '주 정산'과 '월 정산' 중에 정산유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주 정산은 판매금액의 70%를 판매된 주 일요일에서 영업일 15일(휴일 제외)이 지난 후 먼저 정산받고, 나머지 30%는 다음다음 달 1일에 정산받습니다. 월 정산은 매달 마지막 날을 기준으로 영업일 15일 후에 판매대금을 정산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판매자 입장에선 조금이라도 빨리 받는 주 정산을 선택하게 되는데, 전체 금액 정산까지는 평균적으로 40~50일 정도가 걸리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업체들은 어떨까요?
■ 이마트는 20일, 네이버 11번가 G마켓은 10일
쿠팡과 운용 형태가 가장 유사하다고 평가받는 이마트의 경우는 '월 정산'만 채택하고 있습니다. 매달 마지막 날을 기준으로 10일 이내에 판매대금이 지급되는데, 평균적으로 정산까지 20일 안팎이 걸립니다.
11번가나 옥션 G마켓 등 오픈마켓은 구매자가 구매를 확정한 날 다음날 즉시 정산이 이뤄집니다. 일반적으로 결제한 뒤 9일~10일 정도면 구매확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평균 10일 안팎으로 정산이 완료되는 편입니다. 스마트스토어 등을 통해 최근 눈에 띄게 쇼핑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네이버파이낸셜 역시 정산에는 평균 열흘 정도가 걸립니다.
유통업체들 가운데 일부는 판매자들에게 '빠른 정산'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우수 판매업체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입니다. 11번가는 주문 당일 발송상품에 한해 2~3일 이내에 90%를 정산해주고, G마켓과 옥션은 빠른 배송상품인 스마일배송 판매자를 대상으로 상품출고일 다음날 100%를 정산해줍니다. 네이버파이낸셜 역시 월 100만 원 이상 판매자를 대상으로 4일 만에 판매대금을 정산해주고 있습니다.
■ 로켓 배송 쿠팡은 정산에 왜 느림보가 되었나?
그렇다면 왜 쿠팡은 판매자들에게 다른 업체에 비해 유리하지 않은 정산 조건을 내세우고 있는 걸까요 ? 전문가들은 쿠팡의 영업전략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쿠팡의 태생은 티몬, 위메프와 같은 소셜커머스였습니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사람이 모이면 할인율을 높게 제공하는 '딜' 중심 플랫폼이었죠. 구매확정과 반품 등 이슈에서 오픈마켓 등보다 제한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쿠팡 등은 이 과정에서 '늦은 정산' 시스템을 채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갈수록 박해지는 이익 속에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오픈마켓 등 이커머스 형태로 빠르게 전환됐고, 쿠팡 역시 2014년 비전펀드의 투자를 받으며 본격적인 사업구조 전환을 시작했습니다.
쿠팡은 실제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현금이 매우 부족한 기업이었습니다.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로부터 받은 막대한 투자금은 모두 '로켓배송'을 위한 물류센터 건설에 쏟아부었습니다. 기업의 현금조달 능력을 나타내는 유동비율(1년 내 갚아야 하는 빚을 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으로 나눈 비율)은 200% 수준을 건전하다고 보는데, 쿠팡의 경우 2015년 156%, 2016년 103%, 2017년 68%, 2018년 91%, 2019년 86% 등 갈수록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10원이라도 싼 가격에 움직이는 온라인 소비자의 특성을 감안하면 쿠팡은 이익을 크게 남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을 겁니다. 이마트, 네이버 등 기존 거대 유통 기업의 경우 현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오프라인매장과 검색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캐시카우'가 있었지만, 쿠팡은 온라인 마켓이 유일한 자금줄이었던 셈입니다.
쿠팡은 결국 한정된 '현금' 자원을 투입하는 데 있어, 판매자보다는 소비자에게 초점을 맞춰야 했다는 겁니다. '최저가'와 '로켓배송'이라는 혜택을 소비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쪽으로 힘을 쏟은 겁니다. 전략은 그대로 맞아떨어졌습니다. 2020년 쿠팡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13%, 네이버에 4% 차로 뒤졌지만, 거래액 성장률은 전년대비 85%로 네이버의 37%를 압도했습니다.
■ 대규모유통업법의 한계
쿠팡 등 온라인 유통플랫폼들은 판매대금을 최대 60일 내로 지급하도록 규정한 '대규모유통업법'의 규제를 받습니다. 즉 쿠팡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늦게 돈을 주는 '영리한 전략'을 선택하고 있는 겁니다. 공정위 역시 60일 내라면 문제없다는 지침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올해 초 이 기간을 30일 내로 단축하는 법안이 이른바 '쿠팡법'이라는 이름으로 발의되기도 했지만, 국회에 상정되지도 못했습니다. 관련 법안을 발의했던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실 관계자는 "대형유통사의 60일 내 정산규정을 담은 고용진 의원 안이 통과됐는데 이미 현재도 60일 이내에 정산이 이뤄지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로켓처럼 쏘아 올린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 대박
쿠팡은 지난달 뉴욕증시 상장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외국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아마존', '새벽에 물건을 받아보는 로켓배송', 'AI 기술과 쿠팡 플레이 구독을 활용한 확장성' 등을 홍보한 전략이 잘 먹혔다는 평가입니다. 확보한 자금만 최소 5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데, 쿠팡은 다시 '소비자' 집중을 선택했습니다. 지난 2일부터 '로켓배송' 배송비를 전면 무료화하면서 유통업체 간 경쟁에 불을 댕긴 겁니다.
쿠팡은 이번 판매대금 정산 취재과정에서 "대금의 정산방식은 예전 방식 그대로고, 앞으로도 바꿀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대규모유통업법과 공정위 가이드라인에도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쿠팡의 성장에 '로켓배송'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쿠팡 플랫폼에서 물건을 납품하고 판매한 중소상공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쿠팡 역시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기업 내 현금부족이 문제였다면 기업공개를 통해 많은 현금을 확보한 지금도 해당 정책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같은 정책을 유지해나갈 것이라는 쿠팡의 입장은 선뜻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물론 쿠팡도 기업이고,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을 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플랫폼을 구성하고 물건을 제공하는 '판매자'를 배제하고도, 기업의 근원적인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결국 시장이 결정해 줄 것으로 보입니다.
김범주 기자 (categ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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