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중'이 아니라 '전시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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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가 어수선하다.
공사중인 것 같은 철골 잔재가 남아있고, 유리 벽에는 낙서처럼 페인트 칠이 낭자하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 같은 전시 기법에 대해 "이것이 어떤 대단한 미술 작품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저항'이라는 것을 먼저 보여주고자 했다"면서 "이를 통해 작품의 존재감은 물론 관람객의 존재감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검지와 중지가 X자를 그리는 손가락 본을 뜬 형태는 작가의 아이들이 어릴 적 본을 떠 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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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캇서울 국내 첫 개인전
난해한 설치작업이지만
'민주적 조각'으로 주목
전시장 입구가 어수선하다. 공사중인 것 같은 철골 잔재가 남아있고, 유리 벽에는 낙서처럼 페인트 칠이 낭자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른 키 만큼 큰 콘크리트 덩어리가 눈 앞을 가로 막고 선다.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바라캇 컨템포러리다.
엄연하게 ‘전시중’인 공간이니 발을 내딛는 게 조심스럽다. 바닥 전체에 널부러지듯 놓인 모든 것이 작품일 테니 말이다. 작가는 영국 태생의 마이클 딘(44). 지난 2016년 영국의 권위 있는 미술상인 터너 상 최종 후보로 선정됐고, 2017년에는 10년에 한 번 열리는 세계적 미술 행사인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다. 이번이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이다.
작품은 깎이고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와 녹슨 철근 골재, 찢긴 종이와 찌그러진 깡통들로 이뤄져 있다. 이들 사이를 넘나들며 관람해야 하는데, 미술 감상이라기 보다는 고고학 발굴 현장을 누비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동물의 뼛조각, 고대 문자 같은 파편들이 도처에 널린 전시의 제목은 ‘삭제의 정원’. 그러고 보니 창문을 뒤덮은 흰 페인트를 비롯해 곳곳에 엑스(X)자 표식이 눈에 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 같은 전시 기법에 대해 “이것이 어떤 대단한 미술 작품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저항’이라는 것을 먼저 보여주고자 했다”면서 “이를 통해 작품의 존재감은 물론 관람객의 존재감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X자는 “키스를, 죽음을 의미한다”면서 “동시에 존재를 의미하고,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검지와 중지가 X자를 그리는 손가락 본을 뜬 형태는 작가의 아이들이 어릴 적 본을 떠 둔 것들이다. 그는 “지금은 저 때보다 아이들이 훨씬 크다”며 “자연이 무언가를 키우고 성장시키는 것처럼 아이들의 손이 자라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자연의 생명력을 작품으로 끌어오고자 했다”고 말했다. 2층 계단으로 올라서니 어지럽게 늘어선 것만 같던 작품의 전체적인 ‘외침’이 더 잘 들리고, 보인다. 거대한 덩어리들이 해피(HAPPY·행복한), 브로크(BROKE·깨지다) 등의 단어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 뉴캐슬의 어폰타인이라는 빈민가 출신인 그는 황무지라 불리는 동네의 콘크리트 집에서 나고 자랐다. 조용한 성격의 그는 원래 도자기 작업을 좋아했지만, 값비싼 도자기는 그가 범접하기 어려운 고급 소재였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재료가 어릴 적부터 친숙했던 콘크리트다. 난해한 그의 조각이 ‘민주적 조각’으로 불리는 이유다.
전시 출품작 대부분은 과거에 작업했다가 자신의 집 정원에 방치했던, 말하자면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묻힌 작품들이다. 반면 서 있는 작품들은 신작이다. 누워있는 작품이 흙이라면 신작은 새싹처럼 새롭게 돋아난 것과 같다.
2층 전시장에는 작가가 코로나19로 격리 중에 착안해 만든 입술자국 작품이 전시됐다. “가족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종이나 벽에도 입 맞추고 싶었던” 마음으로 “얼른 시간이 가기를 바라는 모래시계” 형태로 제작했다. 전시는 5월30일까지.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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