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엔 '잠깐' 비극..기아 K8 타보니, 4000만원대 '벤츠 킬러'

최기성 2021. 4. 14.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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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계약서 그랜저 잡아. 크기 성능 사양 우세
진짜 공격대상은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그랜저=성공, 벤츠=품격과 달리 '이미지' 부족
기아 K8은 K7과 결이 다른 완전 신차다. [사진 제공 = 기아]
기아 K8은 '완전 신차'다. 기존 K7의 후속이 아니다. K7과 결이 다르다. 사명과 엠블럼을 바꾼 기아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첫차이기도 하다.

당연히 기아가 목숨을 걸었다. K8에 좋다는 건 다 넣었다.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현대차그룹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효과다. 국가대표 준대형세단을 넘어 국내 판매 1위로 '국민차' 반열에 오른 그랜저보다 편의·안전 사양을 향상했다.

이는 실적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23일 사전 계약 첫날 기아 세단 역대 최다 실적을 기록한 것은 물론 더뉴 그랜저보다 많이 계약됐다.

첫날 계약대수는 1만8015대. 지난 2019년 11월 출시한 3세대 K5 모델이 보유하고 있던 기아 세단 역대 최다 첫날 사전 계약 대수 7003대를 1만1012대 초과 달성했다. 아울러 지난해 K7 국내 판매대수 4만1048대의 절반 정도를 하루 만에 달성했다.

현재 판매되는 6세대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더뉴 그랜저가 지난 2월25일 아이오닉5 출시 전까지 보유했던 역대 사전 계약 첫날 최다 기록도 깼다.

더뉴 그랜저는 지난 2019년 11월4일 1만7294대가 사전 계약되면서 종전 6세대 그랜저 기록을 갈아치웠다. K8은 그랜저보다 721대 더 많이 계약되는 돌풍을 일으켰다.

K8 돌풍 비결은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한 디자인, 대형세단 뺨치는 크기와 공간, 그랜저에는 없는 첨단 사양 덕분이다.

도로를 항해하는 요트 닮아…그릴 호불호는 심해
기아 K8 주행 [사진 제공 = 기아]
전장x전폭x전고는 5015x1875x1455mm다. K7은 4995x1870x1470mm, 그랜저는 4990x1875x1470mm다. 제네시스 G80은 4995x1925x1465mm다.

K8은 그랜저는 물론 G80보다 길다. 그랜저와 전폭은 같고 높이는 낮아졌다. 더 날렵해졌다는 뜻이다.

실내공간을 결정하는 휠베이스는 K8(2895mm)이 G80(3010mm)보다 짧지만 그랜저(2885mm)보다 10mm 길다. 그랜저보다 좀 더 넉넉해졌다는 의미다.

차체는 길어진 전장을 활용해 G80처럼 역동적이고 늘씬하게 디자인됐다. 재규어 스포츠세단처럼 고급 요트가 물 위를 달리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유선형의 캐릭터 라인을 적용했다.

긴 후드와 짧은 전방 오버행, 트렁크 끝까지 시원하게 이어지는 2열 뒤 쪽의 루프라인 등을 통해 쿠페와 같은 역동적 비율을 갖췄다. C필러에는 다이아몬드 패턴을 넣은 삼각형 장식물이 배치됐다.

기아 K8 정측면 [사진 제공 = 기아]
전면부에는 브랜드 최초로 알루미늄 소재 신규 엠블럼을 적용했다. 기아의 새로운 세대를 여는 첫 번째 모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더뉴 그랜저에 이어 적용한 테두리 없는(frameless) 범퍼 일체형 라디에이터 그릴은 '호불호'가 갈리는 디자인이다. 다이아몬드에서 영감을 받았다. 보석같은 패턴을 따라 빛이 움직이는 모습을 구현했다.

라디에이터그릴 양 옆에 위치해 주간주행등과 방향지시등의 기능을 하는 스타 클라우드 라이팅(Star cloud Lighting)도 그릴과 동일한 다이아몬드 패턴을 채택했다. 그랜저는 화살표 모양의 히든라이팅 램프가 그릴 상단 양쪽 끝에 숨어 있다.

칼날처럼 날렵하고 날카롭게 디자인한 헤드램프는 공격적이면서도 강렬하다.

후면부는 안정감에 초점을 맞췄다. 부메랑을 닮은 좌우 리어램프와 이를 연결해주는 가로 바 형태의 그래픽으로 구성된 '리어램프 클러스터'는 입체감을 주는 기하학적 조형으로 꾸며졌다. 차체를 더 넓어보이게 만든다.

차체 밖으로 돌출된 리어스포일러, 리어램프 클러스터, 가로 선을 넣어 음양을 강조한 트렁크 및 범퍼 디자인은 역동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멋을 더해준다.

전반적으로 전면은 가로 세로 직선 및 사선을 통해 강렬함을, 후면부는 가로 직선으로 볼륨감과 안정감을, 측면은 선 사용을 자제해 심플함과 우아함을 강조했다.

넉넉한 공간과 품격 갖춘 실내, 쇼퍼드리븐카로 충분
요트 조종석을 닮은 기아 K8 내부 [사진 제공 = 기아]
실내도 요트를 연상시킨다. 좌우로 운전자와 동승자를 감싸주는 라운드 형태의 디자인은 품격 높은 요트 조종석을 연상시킨다.

12.3인치 계기반과 12.3인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이은 파노라믹 커브드 디스플레이는 대시보드처럼 완만한 곡선으로 구성돼 운전자를 감싸준다.

터치와 다이얼 방식을 적절히 결합한 인포테인먼트 및 공조 전환 조작계는 운전자가 한 눈에 확인한 뒤 바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직관적이다.

그랜저에 없는 에르고 모션 시트도 '기아 최초'로 장착했다. 현대차그룹 프리미엄 모델인 제네시스 GV80과 G80에 장착된 시트다.

운전석 장착된 에르고 모션 시트는 7개 공기 주머니를 활용해 운전 환경에 맞게 최적의 착좌감을 제공하고 운전자의 피로감을 줄여준다.

운전자 다리 길이에 맞게 시트 쿠션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전동 익스텐션 기능과 편안한 자세로 휴식할 수 있는 릴렉션 컴포트 시트 기능도 안락함을 더해준다.

기아 K8 실내 [사진 제공 = 기아]
2열은 항공기 1등석을 콘셉트로 삼았다. 넓어진 공간을 활용해 쇼퍼드리븐카(운전기사가 따로 있는 차)로도 쓸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전고후저 쿠페 스타일이라 2열 헤드룸 공간이 좁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답답하지 않을 수준이다. 2열 레그룸은 긴 휠베이스를 활용해 넉넉해졌다.

1열과 마찬가지로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통풍/열선 시트와 운전석 및 동승석과 독립적으로 2열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3존 공조(뒷좌석 온도 제어)' 기능을 채택했다.

조수석 시트 옆에는 시트 등받이를 접고 앞으로 밀 수 있는 버튼이 있다. 버튼만 누르면 바로 뒷좌석 공간을 VIP 탑승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트렁크 공간도 넉넉하다. 골프백 4개가 들어간다.

코로나19 시대에 주목받는 웰빙 기능도 강화했다. 실내 공기질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미세먼지 수준을 4단계로 표시하고 농도에 따라 공기 청정 모드를 작동시키는 '능동형 공기청정 시스템', 에어컨 내 남은 응축수를 말려 냄새발생을 억제하는 '애프터 블로우 시스템'을 채택했다.

K8은 '달리는 콘서트홀'로도 변신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하이엔드(Hi-end) 오디오 시스템 브랜드인 메리디안의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을 기아 최초로 탑재해서다.

메리디안 프리미엄 사운드는 세계 최초로 천연 원목 재질의 진동판을 사용한 14개의 나텍 스피커를 장착해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구현한다.

묵직하면서도 매끄러운 주행 성능 발휘
기아 K8 [사진 제공 = 기아]
시승차는 3.5 가솔린 2WD 풀 옵션 모델이다. 가격은 4990만원(개별소비세 인하 미적용)이다. 3.5ℓ 가솔린 엔진과 국내 최초로 투 챔버 토크 컨버터를 적용한 8단 변속기를 장착했다.

엔진과 변속기를 연결해주는 토크 컨버터는 엔진에서 발생한 힘(토크)을 변속기로 부드럽게 전달하고, 토크 컨버터 내에 있는 댐퍼 클러치를 통해 엔진과 변속기를 직접 결합하는 역할을 한다.

최고출력은 300마력, 최대토크는 36.6kg.m, 복합연비는 10.6km/ℓ다. 힘은 그랜저 3.3 가솔린(290마력, 35kg.m)보다 한 수 위다.

운전석 시야는 뛰어나다. 대시보드는 20mm 높이가 낮아진 효과다. 운전석 왼쪽도 공간에 여유가 있어 답답하지 않다. 홈이 파진 스티어링휠은 그립감이 우수하다.

전자식 변속 다이얼은 버튼 방식을 채택한 그랜저보다 작동하기 편리하다. 드라이브 모드는 에코, 컴포트, 스포츠로 구성됐다.

스티어링휠은 무게감이 느껴진다. 중후하면서도 힘도 센 성능을 갖췄다는 사실을 손끝으로 전달해준다.

컴포트 모드를 선택한 뒤 가속페달을 살짝 밟자 5m가 넘는 덩치가 가볍게 움직인다. 좁은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는 길어진 전장이 부담스럽게 여겨진다.

전자식 변속 다이얼 [사진 제공 = 기아]
저·중속에서는 부드럽고 조용하게 움직인다. 변속도 매끄럽다. 코너링 구간에서도 바깥으로 벗어나려는 움직임 없이 안정적으로 차체가 움직인다.

컴포트 모드에서 속도를 높이자 웬만한 스포츠 모드 버금가는 질주 솜씨를 발휘한다. 고속에서는 시트 볼스터가 허리를 잡아준다.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저중속에서도 시트 볼시트가 몸을 조여준다. 스티어링휠이 좀 더 무거워진다. 페달도 발 움직임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페달을 밟으면 중저음의 엔진음이 발산하면서 묵직하면서도 빠르게 치고 나간다. 고속 안정성도 우수하다.

실내로 파고 들어오는 진동과 소음도 적다. 도어 접합부 3중 씰링을 새로 추구하고 실내 흡차음재 밀도를 높인 효과다. 서스펜션은 다소 단단하게 세팅됐지만 포장 상태가 고르지 못한 도로나 과속방지턱에서 충격을 잘 흡수한다.

자율주행 기능은 압권이다. 스티어링휠 안쪽 왼편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간편하게 자율주행을 즐길 수 있다.

앞 차를 따라 가다 서다를 부드럽게 수행한다. 중간에 다른 차가 끼어들어도 당황하지 않는다. 방향지시기를 작동하면 옆 차선으로 알아서 움직인다. 고속도로 주행보조2 기능이다. 단, 차선 변경을 할 수 없는 실선이거나 추돌 위험이 있을 때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랜저 발판삼아 E세그먼트 틈새 공략
기아 K8 주행 [사진 제공 = 기아]
K8는 그랜저와 경쟁한다. 또 그랜저와 제네시스 G80 틈새도 공략한다. 그룹 형제 모델 간 카니발라이제이션(제품간 시장잠식)을 피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볼보 S90 등 E세그먼트(Executive cars, 프리미엄 중형·준대형차급)를 장악한 프리미엄 수입 세단도 경쟁상대에 포함된다. 그랜저와 힘을 합쳐 국산차 시장을 방어하면서 수입차 시장을 공략한다.

가격(개별소비세 3.5% 기준)은 2.5 가솔린이 3279만~3868만원, 3.5 가솔린이 3618만~4526만원, 3.5 LPI가 3220만~3659만원이다. 그랜저 2.5 가솔린은 3294만~4108만원이다.

3.5 가솔린 모델의 경우 그랜저에 없는 4륜 구동 기준으로 풀 옵션 가격이 5051만원이다. 그랜저 가치를 맛보려면 3000만원 후반대면 충분하지만 K8 가치를 누리려면 4500만원 이상 줘야 한다.

그랜저보다 비싸지만 이 가격대는 틈새 시장에 해당한다. 4000만원 중반에서 5000만원 중반은 중형 이상 프리미엄 세단이 없는 '무주공산' 가격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K8은 그랜저는 물론 경쟁상대로 여겨지는 수입차보다 한 수 위의 사양으로 무장했다. 그랜저엔 '비극'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이미지'다. 단순히 차가 좋다고 잘 팔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나 성능만으로는 단번에 해결할 수 없는 게 이미지다.

'벤츠=품격' '볼보=안전' '렉서스=정숙성'처럼 대표 이미지를 구축해야 판매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판매 초반 반짝 흥행을 넘어 베스트셀링카가 될 수 있고 스테디셀링카 될 수 있다.

기아 K8 [사진 제공 = 기아]
그랜저와 제네시스 G80·G90은 국내에서 '성공'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성공하면 타는 차라는 이미지다. K7에서 이름을 바꾼 것을 넘어 완전히 다른 차로 진화한 K8은 아직 뚜렷한 이미지가 없다. 이제부터 만들어야 할 단계다.

이미지를 구축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그랜저가 빠르면 내년에 풀체인지(완전변경)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K8이 그랬던 것처럼 신형 그랜저는 K8의 장단점을 분석해 한 단계 더 진화할 수 있다. 그랜저 입장에서 비극은 희극이 될 수 있다.

대신 K8만의 이미지를 구축한다면 현대차그룹의 최대 장점인 형제 차종간 경쟁과 협력을 통해 그랜저-K8-제네시스 G80·G90으로 이어지는 촘촘한 라인업과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국산차 시장을 장악한 무기 '쌍끌이'로 수입차 시장까지 공략할 수 있다.

그랜저는 아쉽고, 제네시스 G80은 부담스러워 고민하다 할인을 많이 해주는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로 넘어가는 소비자들을 잡을 수 있다. '4000만원대 수입차 킬러'가 될 수 있다.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gistar@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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