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사업장 이해를 넘어, 정치적 구호 외치다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 (6)]
2021. 4. 14. 06:30
[주간경향]
1980년 5월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 정권은 광주항쟁을 야만적으로 진압했다. 이후 ‘노동계 정화 조치’라는 명목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했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주도했던 청계피복 노조, 원풍모방 노조 등이 강제해산 당했다. 민주노조 간부들이 해고되거나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이 같은 탄압에도 노동자들은 감시를 피해 모임을 계속 이어가며 공부와 교류를 멈추지 않았다. 1980년대 초 구로지역은 서울의 공단지역이라는 특성 때문에 노동운동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학생운동 출신들이 대거 이 지역 공장에 취업했다. 학생 신분을 감추고 야학과 소모임에서 활동을 펼쳤다. 정권은 이들을 ‘위장취업자’, ‘불순세력’이라며 몰아내려 했다.
1980년 5월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 정권은 광주항쟁을 야만적으로 진압했다. 이후 ‘노동계 정화 조치’라는 명목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했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주도했던 청계피복 노조, 원풍모방 노조 등이 강제해산 당했다. 민주노조 간부들이 해고되거나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이 같은 탄압에도 노동자들은 감시를 피해 모임을 계속 이어가며 공부와 교류를 멈추지 않았다. 1980년대 초 구로지역은 서울의 공단지역이라는 특성 때문에 노동운동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학생운동 출신들이 대거 이 지역 공장에 취업했다. 학생 신분을 감추고 야학과 소모임에서 활동을 펼쳤다. 정권은 이들을 ‘위장취업자’, ‘불순세력’이라며 몰아내려 했다.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를 키워가다
신군부의 부분적 자유화 조치로 유화 국면이 조성된 1984년 6~7월 대우어패럴, 효성물산, 선일섬유, 가리봉전자에 노조가 결성되면서 구로지역 노조는 33개가 됐다. 1985년, 새롭게 결성된 노조들은 동시 임금투쟁과 교섭을 기획했다. 공동요구안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공단 내 다른 사업장들이 한날한시 교섭을 시작하자는 시도는 처음이었다. 정부의 임금가이드라인 5.2%를 훨씬 넘어선 높은 인상률을 얻어내자 노조에 대한 조합원의 신뢰는 점점 두터워졌다. 조합원들은 정부의 임금동결 정책이 결국 기업주를 비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은 공단이라는 공간적 특성과 여성 노동자가 주축으로 이뤄진 봉제·전자산업 등 경공업이라는 업종 유사성은 이들 사업장 노조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는 요건이 됐다.
1985년 6월 22일 금요일, 노조 간부 3명의 구속 소식을 들은 대우어패럴 조합원들은 사측에 고발 취소를 요구했으나 무시당하자, 이튿날 출근 후 파업을 결행하기로 한다. 6월 23일에는 대우어패럴, 청계피복, 효성물산, 선일섬유, 가리봉전자 등의 노조 간부들이 청계피복 노조사무실에 모였다. 다음날 오후 2시에 대우어패럴 조합원들과 동맹파업을 벌이기로 하고 연대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각 사업장에서는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키로 했다. 가리봉전자 관리자들은 자기 회사 노조 간부들에게 “이건 우리 회사 일도 아닌데 왜 파업하느냐”고 하면서도 별 대응을 하지는 않았다. 노동자들은 대우어패럴 노조에 대한 탄압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대처하기로 했다.
“우리가 70년대엔 너무 개별 사업장에 갇혀서 각자 처절하게 깨져도 누구 한 사람 동요하는 사람이 없었잖아요? 그래서 연대가 안 되었던 걸 많이 반성을 하고, 연대해서 동맹파업을 한 거잖아요? 너무 신났어요. 그때 정말 감동했어요. 동시에 막 파업하고 하니까.”(〈나, 여성노동자 1〉·조분순 구술·369p)
1985년 6월 24일, 오전 8시쯤 대우어패럴 조합원 285명이 “노조 간부 석방하라, 민주노조 탄압 중단하라, 노동 악법 개정하라, 집시법·언기법(언론기본법) 폐지하라, 노동부 장관 물러나라”는 요구를 내걸고 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오후 2시쯤에는 효성물산 400명, 가리봉전자 500명, 선일섬유 70명 등 세 사업장 조합원들이 ‘임시총회’를 거쳐 동맹파업에 들어갔다. 첫날 동맹파업에 참여한 4개 노조 조합원 규모는 1300여명에 이른다. 이날 오후 각 농성장의 전화가 끊기는 등 고립되면서 연대투쟁위원회가 동맹파업을 지도하기 어려워지자, 노조가 알아서 대응해야 했다. 6월 26일에는 효성물산 노조, 27일에는 가리봉전자, 선일섬유 노조가 해산됐다. 동맹파업 직전에 참여 권유를 받았던 부흥사 조합원도 동맹파업 상황을 지켜보다가, 6월 28일 ‘구속자 석방, 노조 탄압 중지,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동맹파업을 시작했지만, 반노조 폭력단의 폭력으로 6시간 만에 해산됐다.
다시 만나고 싶은 연결과 연대의 순간
남성전자, 세진전자, 롬코리아는 파업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6월 25~26일 양일간 작업시간 이후 지지 농성 투쟁을 벌였다. 구로공단 밖 삼성제약 조합원들도 6월 27~28일 농성과 점심식사 거부로 지지 행동에 나섰다. 동맹파업은 6월 29일, 물과 전기가 끊어진 공장 안에 고립돼 싸운 대우어패럴 노동자 80여명이 강제 해산됨으로써 끝났다. 5개 사업체 6개 공장에서 약 1400명의 노동자가 동맹파업을, 5개 사업장에서 지지연대투쟁을 벌였다. 총 2500여명의 노동자가 투쟁에 참여했다. 청계피복노조 등 구로지역 외 노동운동 단체와 농민회, 학생, 민주 통일 민중운동연합(민통련), 종교 단체 등 민중운동 세력의 지지연대투쟁으로 동맹파업은 확대됐지만 구속 43명, 불구속 38명, 구류 47명을 비롯해 해고 15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구로지역 노동조합 운동이 받은 충격은 작지 않았다.
구로동맹파업의 계기가 됐던 대우어패럴 자리에 대형 패션아울렛이 들어선 지 오래다. 대우어패럴 앞 사거리는 ‘구로동맹파업 사거리’라고 불리기도 했다. 1985년 동맹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개별 회사와의 교섭에서 이기는 것으로는 노동자의 존엄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서 서로 연결될 수 있는지 찾았던 노동자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회사와 정권에 대항했다.
구로동맹파업 당시 대우어패럴 교육부장이었던 김준희씨는 한화생명 설계사 노조 지회장이 됐다고 알려졌다. 구로동맹파업에 열심히 참여한 강성조합원이라는 낙인 때문에 일곱 번 해고를 당한 그는 더 이상 제조업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던 2011년. “이 회사는 노동운동했던 사람도 다닐 수 있다”는 과장 얘기에 보험설계사를 시작했다. 한화생명의 일방적인 보험설계사 수수료 삭감에 동의할 수 없는 조합원들이 모였다. 입사 11년 만에 김준희씨는 다시 노동조합 지회장이 됐다. 천생 노동운동가라고 말하기도, 여성운동의 유산을 이어가는 자랑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조심스럽다. 그의 결심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서다. 연결과 동맹의 힘이기도 하고 아쉬움과 상처이기도 했을 기억이, 김준희씨를 비롯해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각자에게 각인돼 있을 것이다. 구로동맹파업은 분명 37년이 지난 과거의 역사인데, 다시 그 장면을 만나야 할 것 같은, 마주하기를 고대하게 하는 시절이다. 우리 이제 다시 연결하고 동맹할 수 있을까?
참고문헌_‘1985년 구로동맹파업의 전개 과정과 현재적 의미- 구로동맹파업 20주년,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유경순, 진보평론 제24호(2005) 〈나, 여성노동자 1〉 그린비
<림보 <회사가 사라졌다>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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