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동 대학로 [골목 내시경]

2021. 4. 14.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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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골목 소극장들, 연극과 공연의 중심
[주간경향]

이름 속엔 장소가 가진 기억이 담겼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 일대 대학로는 과거 이곳에 대학교가 있었다는 표식이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과 법과대학이 관악산으로 이사한 후 학교는 사라졌고 이름은 남았다. 서쪽으로 아직 의과대학과 병원이 남아 있어 서울대학교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24년 경성제국대학으로 시작해 1972년 옮길 때까지 머리 좋다는 이들이 모여 배웠던 곳이다. 주인공이 바뀌어 지금 대학로와 주변 골목은 예술가들의 것이 됐다.

공연장도 복합극장이 추세를 이룬다.


옛 서울대학교 본관, 그러니까 경성제국대학 본관 건물이었던 곳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예술가의집’으로 쓰고 있다. 학교가 있던 곳 대부분은 공원과 야외공연장 등으로 바뀌었다. 학교의 옛 모습은 모형으로 남아 지박령이 됐다. 공원 이름은 마로니에공원, 학교 교정에 마로니에 세그루가 서 있었기 때문이란다. 마로니에는 서양 칠엽수라 하고 가로수로도 종종 심는다는데 공원에서 그 나무를 찾는 일은 번거롭기만 하다. 공원 주변에 처음 들어선 공연장은 붉은 벽돌로 지은 아르코극장이다. 여기를 시작으로 200개 가까운 공연장과 공연기관들이 이 일대의 골목골목에 들어섰다. 대학로 입구부터 깊은 골목 안까지 연극을 선전하는 간판과 포스터에 매표소까지 이곳이 연극과 공연의 중심지임을 보여준다.

공원에는 눈에 띄는 동상이 단단한 모습으로 서 있다. 독립운동가 의열단원 김상옥.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 군경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동상이 서 있는 자리 남쪽 효제동 어딘가에서 생의 가장 빛나는 마지막 순간을 맞았다고 한다. 이곳이 일제의 교육을 통한 조선통치의 심장부가 있던 자리이니 그의 동상이 여기를 지키고 있는 것은 한편 통쾌한 일이다.

골목 어디서나 공연 포스터를 볼 수 있다.


공원에는 의열단원 김상옥 동상

골목 안 작은 극장들도 시류를 따른다. 소극장 연극이 중심이지만 간간이 작은 음악회를 여는 라이브 공연장도 있다. 유행 따라 코미디 무대도 들어왔고 어느 사이 뮤지컬 공연이 줄을 이었다. 극장을 끼고 있는 골목 안 술집들은 벽마다 젊은 예술가의 비감한 낙서들이 빼곡하다. 한낮의 골목길에서 본 극장과 술집들은 대부분 폐문 유배 중이다. 예술은 힘겹고 먹고사는 일은 고단하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의 공연장은 문을 닫았다. 집합금지 조치의 파도가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갔다. 세상 마음도 얼어붙은 터에 예술만 비켜서서 온전할 리 없는 일이다. 얼마 전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가 열렸다고 하는데, 출품작은 예년보다 줄었고 반응도 시들했다고 한다. 예술 특히 공연예술은 혼자 잘해서 될 일도 아니고 무대에 올리는 데 큰 비용이 들고 사람들의 평과 반응에 성공과 실패가 달렸다. 넘어져도 혼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줄줄이 딸린 식구들이 많아 아픔과 좌절도 더 크다. 포스터를 뜯던 젊은 배우는 “예전에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더 힘들다. 늘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마음을 다졌는데 이젠 그런 희망도 없다”고 했다. 문 닫은 극장을 돌아보고 곧바로 아르바이트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대개 두세개의 아르바이트가 주업이 됐단다. 행인이 많은 길목엔 간혹 새 공연을 알리는 현수막도 보인다. 섹시 코미디를 내세워 여배우의 얼굴과 이름을 강조했으나 이런 세월에 공연을 연다는 것만으로도 장한 일이다.

불황기에 새로 시작하는 공연들이 대학로를 밝힌다.


대학로는 홍대와 더불어 젊은이들이 몰리는 중심지다. 공연장을 찾고 골목 안에 숨어 있는 맛집과 아기자기한 찻집들에 발길이 몰린다. 그런 만큼 대학로 골목 안은 화려하고 색다르고, 세련됐다. 액세서리 소품을 만드는 작은 공방들이 눈에 띄고, 유행을 펼쳐놓은 옷가게도 골목을 지키고 있다. 젊은 취향에 맞춘 분식집도 보이고 고깃집이며 선술집들도 강한 개성을 드러낸다. 건물을 둘러보던 건물주라는 이는 “작년과 올해는 망했다고 봐야 한다. 목 좋은 가게도 문 닫고 나간 곳이 많다. 몇푼이라도 받으려고 화장품 가게에 깔세로 한달 동안 매장을 내줬는데 오늘 철수하는 날이라 살펴보러 왔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건물 있는 사람도 힘들고 어렵다고 한다. 이자에 건물 고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인데 건물을 가져보지 못했으니 도대체 알 수 없는 이야기다.

대학로는 공연예술과 젊은이의 중심지다


낙산으로 향하는 뒷골목엔 벽화들

골목 안 카페 주인은 “보면 알겠지만, 봄날인데도 오가는 사람들이 없다. 예전 같으면 골목이 북적일 터인데 많으면 서넛이나 보일 뿐 사람들이 당최 오질 않는다. 낮에는 차 팔고 밤엔 술 팔던 카페들도 낮에 문 닫는 일이 잦더니 밤에도 재미가 없다. 이제까지 온 것도 큰일인데 앞으로는 길이 안 보인다”고 한숨을 쉰다. 불황의 늪이 대학로에 국한된 일은 아니겠지만 평소 젊은이들로 번잡하던 곳이라 상실의 골은 더 깊고 아프게 와닿았다. 이런 어려움이 누군가를 원망해서 풀릴 일이 아니기에 마음의 멍울은 더 커보였다. 그는 “여긴 공연이 살아나야 골목 전체가 살아나요”라고 했다.

대학로에서 낙산으로 향하는 뒷골목엔 축대를 화벽 삼아 그린 관광 안내지도와 벽화들이 눈길을 끈다. 마로니에공원 쪽이 세련된 건물들로 구역을 이룬다면 낙산 쪽은 조용한 주택가다. 대학로 골목의 한쪽 끝 낙산으로 더 들어가면 이화동이 나오고, 넓은 터를 잡고 이화장의 한옥이 위세를 뽐낸다. 이승만이 망명에서 돌아온 곳도 이곳이고 다시 망명을 떠난 곳도 이화장이다. 건물은 멀쩡하게 새 단장해 낙산 어귀를 지키고 섰다.

낙산 쪽으로 주택가와 동네 카페들이 숨어 있다.


이화장 주변 골목엔 오후가 되면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녔다. 태권도장은 운동뿐 아니라 육아도우미 역할도 해낸다. 낮일에 바쁜 부모 대신 아이를 돌봐주니 고마운 일이다. 문방구 앞에서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도 있고, 쭈그려 앉아 뽑기 기계와 실랑이를 벌이는 아이도 보인다. 문구점 벽에도 연극 포스터가 붙은 것이 역시 대학로 골목답다. 지나다니는 아이들이 많은 것은 인근에 2곳의 초등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로 초입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가 있고 길 건너 남쪽으로 효제초등학교가 있다. 학교는 가까이 있지만, 국립학교와 공립학교의 차이는 커보인다.

근처 골목은 전형적인 주택가의 모습인데 간혹 지나치는 초등학생을 빼고는 다른 인적을 보기 힘들었다. 소박하고 먹고살기에 바쁜 어른들의 사정이 엿보이는 정경이다. 오래된 세탁소도 문을 열고, 건축 자재상은 얼핏 예술가를 흉내 내 개발새발 간판을 그려놓았다. 남쪽과 이화장 주변일수록 고만고만한 서민의 삶이 엿보이고, 대학로 주변으로 다가올수록 골목 안은 저택이거나 묵직한 빌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한 구역의 골목 안 모습이 짧은 구간에도 확실하게 구별된다.

한옥들이 동숭동 명륜동 일대의 주택가를 지킨다.


대학로를 중심으로 이화동과 동숭동으로 이어지는 동쪽 구역과 길 건너 연건동과 명륜동으로 구별되는 서쪽 풍경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서울대학병원을 중심으로 펼쳐진 연건동 골목엔 대부분 상점이거나 식당들이 주가 됐다. 그중 오래도록 터를 지켜온 가게들이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 학림다방은 유명하다 못해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한다. 1956년에 문을 열어 학생과 시인이며 작가들이 드나들었고, 시국사건에 휩쓸린 적도 있었다. 이제는 길게 버텨온 역사가 상품이 된 듯 일부러 고풍을 찾아오는 유람객들의 단골명소가 됐다. 그 길 건너편 또 다른 명소였던 밀다원은 없어져 대형 커피점이 들어섰다. 학림과 밀다원의 옛일을 기억하는 이들은 이제 대부분 대학로를 드나들 일이 없어졌을 것이다. 세월은 가고 기억은 희미해진다.

과거의 모습 간직한 명륜동 골목

학림다방에서 꾸불꾸불한 뒷골목을 걸어가면 100년 넘게 짜장면을 팔았다는 진아춘이 있다. 짜장 좀 비벼봤다는 이들 사이에선 성지로 이름난 곳이다. 하긴 뭔들 100년을 하면 도를 이루지 않겠는가. 주변의 소극장과 곱창집, 맥줏집과 숯불 구이집을 압도할 만큼 짜장의 내공은 역력했다. 필경 비벼 먹는 것들은 곱빼기를 시켜야 하니 아주 우울한 날 그 집 짜장 곱빼기 한그릇이면 일생의 행복한 기억들은 다 소환할 수 있을 것이다.

술집 사이로 더 깊이 들어가면 사람 둘이 겨우 비켜 갈 좁은 골목이 나오고, 그 안에 오래된 주택가가 있다. 그 입구에 통일문제연구소가 있다. 얼마 전까지 백발을 흩날리던 영원한 청년으로 남과 북이 합칠 때까지 제자리를 지킬 것 같던 백기완 소장이 닻을 내리고 있던 곳이다. 그는 갔고 통일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대학로 동편 명륜동의 골목길은 길게 이어져 성곽까지 가닿았다. 대학로 주변의 소란과는 담을 쌓고 과거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조용하고 소리 내지 않고 살아가는 일에 이골이 난 모양이다. 한낮 인적 하나 찾기 힘들다. 골목 안엔 그 흔한 구멍가게 하나 없이 온전히 살림집들의 영역을 이룬다. 이렇게 조용한 주택가를 만나기란 오랜만의 일이다.

빛바랜 기와를 머리에 쓴 한옥들은 대부분 ㄷ자 집이거나 ㅁ자 모양이다. 작아도 집 마당을 품고 있고 담을 붙여 장독대를 갖춘 것이 살림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생각게 한다. 명륜동은 서울에서 한옥이 남아 있는 몇 되지 않는 동네이다. 이곳 골목은 1960년대 이후 세간의 일과는 무관한 듯 시간이 정지됐다. 시대가 회고와 향수조차 상품으로 삼고 있으나, 이 골목을 걸으면 추억을 되짚는 일은 무료이다.

돈 되는 일이 최고인 세상에 기를 쓰고 돈 안 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이들이 있다. 예술가들. 그들이 상상한 대로 역사는 굴레를 벗고 인간은 한계를 부수며 시대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 예술가들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이 대학로이다. 그럼에도 예술은 길고 삶은 고단하다. 이 골목에서 사치와 향락, 예술과 허영, 관습과 실험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분식집에서 김밥을 써는 젊은 배우도 있고,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는 뮤지컬 가수도 있다. 모두가 대가가 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예술을 사랑할 수는 있다. 대학로가 그 낱낱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골목을 걷는 이도 예술을 즐기며 짧은 순간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 골목골목 이어진 극장과 공연장에서 오늘도 남과 다른 몸짓으로 자신을 표현하려는 이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걷는 곳. 그래서 대학로는 재미있고 쓸쓸하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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