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걱정 없는 나라' 발표 하루만에.. 자궁경부암 백신값 인상에 뿔난 소비자들
최근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한 자궁경부암 백신의 가격이 이달부터 큰 폭으로 인상돼 소비자들이 비용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가 중요한 백신의 가격 인상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지난달 발표했던 ‘암 걱정 없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제약업체 한국MSD는 지난 1일부터 자궁경부암 백신인 ‘가다실9’ 가격을 15% 인상했다. 가다실9는 기존 ‘가다실’보다 바이러스 예방 효과가 높아 접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백신으로 1회 접종 가격은 11~31만원 선이다.
이 백신은 최초 접종 후 2개월, 6개월 뒤 2회 추가 접종이 이뤄져 총 3회를 맞아야 한다. 즉 3회 접종을 완료하려면 접종 비용이 최대 90만원을 웃돌게 되는 것이다. 자궁경부암 백신 접종은 비급여 항목에 해당해 접종자가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두자릿수의 인상률이 적용된 가격에 백신을 맞아야 하는 예비 접종자들은 비용 부담이 커졌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직장인 이혜진(27)씨는 "접종 기간이 6개월이나 되는 데다 가격이 비싸 접종을 계속 미루고 있다"면서 "가격이 저렴했다면 지금처럼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손모(26)씨도 "국가 지원이 늘거나 지금보다 가격이 저렴해진다면 접종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자궁경부암 주사 가다실9의 금액 인상 반대와 보험료 적용을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은 "가다실9는 자궁경부암, 질암, 항문암 등을 막을 수 있는 주사로,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도 맞아야 하는 주사"라며 "(그런데 접종하려면) 못해도 45만원에서 60만원정도의 큰 돈이 들어간다. 여기서 최대 15% 인상이면 50만원에서 70만원을 내야 한다는 소리"라고 적었다. 해당 청원은 이날 오전 10시 기준 1만5108명의 동의를 얻었다.
자궁경부암 백신 가격이 오르면서 접종자들은 접종 비용이 비교적 저렴한 병원으로 몰리고 있다. 3회 접종 가격이 45만원인 서울 중랑구의 한 병원은 4월 가격 인상을 앞두고 접종 인원이 몰리자 혼잡을 막기 위해 가격 인상을 일주일 연기하기도 했다.
서울시립동부병원, 서울시립서북병원 등 일부 공공의료기관은 자궁경부암 백신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공급해왔으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전담 병원으로 지정된 이후 현재까지 백신 접종이 중단한 상태다.
정부는 아직까지 암 관련 백신의 가격 조정 여부에 대해서는 별다른 검토를 하지 않은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31일 자궁경부암을 비롯한 ‘예방 가능 암’ 발생을 20% 이상 줄이겠다는 내용의 ‘제4차 암관리종합계획(2021~2025년)’을 발표했다. 복지부는 자궁경부암 백신 무료 접종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백신 가격 관리 방안은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자궁경부암 백신 가격 조정과 관련해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며 "무료 접종 대상을 점차 늘리고, 유료 접종 대상자들의 금액 부담을 낮추기 위한 방안을 앞으로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10~30대 젊은 연령층의 자궁경부암 환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보다 신속하게 무료 접종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자궁경부암의 경우 5대 주요암으로 최근 5년간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백신 접종을 통해 약 90% 예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수미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이성 교제 연령이 앞당겨지면서 자궁경부암 발생률도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만 12~20세까지 접종 연령을 확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가다실9를 국가예방접종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국가예방접종으로 인정된 백신인 가다실은 4가지 유형의 인유두종바이러스(HPV)를 막는데, 가다실9는 9가지 유형의 HPV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한진 대전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가다실9를 국가예방접종으로 인정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국가 노력으로 수요가 많이 창출되면 공급 가격이 내려가는 효과도 기대할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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