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전쟁 완패]① 美·英 일상회복 준비하는데..'접종률 2.3%' K방역의 민낯, 맞을 백신이 없다

김윤수 기자 2021. 4. 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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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경제 회복을 목표로 전 세계가 참전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전쟁’에서 한국은 완패했다. 현재까지 한국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2.3%로, 이스라엘(61.5%)·영국(47.3%)·미국(35.7%)·유럽연합(EU·15.3%) 등에 크게 못 미친다. 느린 접종 속도 만큼 경제 회복, 일상 복귀의 시점도 경쟁국들보다 늦어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백신 주권이 없는 한국은 마음대로 접종 속도를 높여 경쟁국을 따라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조선비즈는 백신 전쟁 전까지만 해도 선진적인 ‘K방역’을 자랑하던 한국이 뒤처지게 된 원인을 찾고 전문가 진단을 통해 지금부터라도 필요한 대책을 총 3편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 주]

지난 12일(현지시각) 밤 영국 런던의 주점 거리에 마스크를 벗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왼쪽)과 하루 전인 12일 유흥시설 영업 금지 조치가 시행돼 한산한 서울 강남역 인근의 거리.

지난 12일(현지시각) 늦은 밤, 영국 런던의 주점 거리는 마스크를 벗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야외 테이블마다 해방감에 찬 표정의 사람들이 술잔을 들고 건배를 하며 웃고 떠들었다. 주점 직원들은 자정이 넘도록 주문을 받고 술을 나르고 테이블을 치우느라 쉴 틈이 없었다. 자리가 없어 아직 술판을 벌이지 못한 사람들은 긴 대기줄을 만들었다. 같은 시각 맨체스터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AFP통신은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영국의 일상을 전했다. 백신 덕분에 가능해진 일상이다. 영국은 지난해 12월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해 현재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47.3%의 접종률을 달성했다. 지난 1월 6만명이 넘던 하루 확진자 수가 이제 1000명대로 줄었고, 접종자와 코로나19 완치자를 합쳐 국민의 73%가 항체(면역성분)를 얻었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다. 사람들이 당당히 마스크를 벗어던질 수 있는 이유다.

같은 시각 서울 강남역 주변 상권은 한산했다. 4차 대유행의 위험이 높아지자 수도권과 부산 지역 유흥시설 영업이 전날부터 금지됐기 때문이다. 하루 확진자 수는 500~600명대로, 영국과 비교해도 여전히 정부의 확산 억제 노력은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백신 접종률 2.3%로 몸속 항체가 거의 전무한 우리 국민들에겐 거리두기를 통한 접촉 차단이 최선의 방역이기 때문에 함부로 마스크를 벗고 외출할 수 없다.

지난 12일(현지시각) 밤 영국 맨체스터의 한 주점에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은 채 음주를 즐기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인구와 국토 규모가 비슷한 두 나라의 일상을 갈랐다. 한국의 접종률이 저조한 가장 큰 이유는 접종 물량을 조기에 확보하지 못한 정부의 실책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 정부는 먼저 접종을 시행한 영국의 뒤를 따라 11월 집단면역(인구 70% 면역)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 사이에 발생한 코로나19 백신 글로벌 공급 불안 등으로 수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목표 달성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 "의료역량으론 하루 100만명 접종 가능한데 물량이 없어"

14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 2월 26일부터 전날 0시까지 국민 119만5342명이 1차 접종을 받아 2.3%의 접종률을 기록했다. 전 세계 접종 통계 사이트 ‘아워 월드 인 데이터’에 집계된 이스라엘 61.5%, 영국 47.3%, 미국 35.7%, 유럽연합(EU) 15.3% 등의 두 자릿수 접종률과 대비된다. 브라질(9.7%), 인도(6.6%), 러시아(6.0%) 등 인구와 국토 규모가 커 접종 속도를 내는 데 불리한 신흥경제국들에도 뒤지고 있다. 전 세계 평균(5.6%), 아시아 국가 평균(3.1%)보다도 낮다.

그래픽=정다운

한국은 접종 시작 후 지난 12일까지 46일간 하루 평균 2만5000여명이 백신을 맞았다. 매년 10월이면 하루 30만명이 독감 백신을 맞고 있는 걸 고려하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도 이 정도 의료역량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접종률이 낮은 건 결국 충분한 백신을 조기에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재훈 가천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백신만 충분하다면 하루 최대 100만명까지도 접종할 수 있다"며 "현재 접종률이 낮은 건 의료역량이나 인프라가 아닌 순수하게 수급 물량 부족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접종 전 미리 물량을 비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신이 국내에 들어오는 족족 사용하고 있고, 2차 접종용으로 남겨둔 300만명분도 2분기 1차 접종에 끌어다 쓰기로 했다.

정 교수는 "11월 집단면역을 위해선 2분기 안에는 접종에 속도가 붙어야 하는데 제때 물량이 확보될지는 미지수다"라고 했다. 글로벌 공급 불안 등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올해 전 세계에 공급될 코로나19 백신 물량은 지난달 초 계약 물량 기준 80억~130억회분으로 추산된다. 대부분의 백신은 2회 접종이 필요하므로 79억명의 세계 인구를 모두 맞히기엔 부족할뿐더러, 선진국들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공급 차질에 대비해 일찍 제조사들과 인구를 초과하는 초기 물량의 선구매 계약을 맺었다.

◇ AZ 이어 노바백스도 공급 이슈…절반(1000만명분)만 제때 도입

한국 정부는 한발 늦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7900만명분의 선구매 계약을 맺고, 이 중 1200만명에 1차 접종할 수 있는 물량을 상반기에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이것으로 1~2분기 접종 대상자 약 1200만명(접종률 23%)에 1차 접종하고, 뒤이은 물량으로 하반기 접종을 시행해 11월까지 접종률 70%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벌써부터 제조사나 코백스 퍼실리티로부터 공급 부족을 이유로 도입 일정 연기, 물량 축소 등을 일방적으로 통보받고 있다.

지난달엔 ‘세계의 백신 공장’으로 불리는 인도가 자국에서 생산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수출을 일시 중단했고 EU도 비슷한 조치를 취하면서 한국도 영향을 받았다. 지난달 31일 코백스로부터 들여오기로 한 AZ 백신 34만5000만명분은 21만6000명분으로 줄었고, 다음 달까지 들여오기로 한 83만5500명분도 구체적인 일정 없이 ‘2분기 내’로 미뤄졌다.

정부의 상반기 코로나19 백신 도입 계획. 보라색은 이미 도입한 물량, 붉은색은 도입하기로 한 물량이다.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백신으로 1회 접종 기준 총 1200만명분을 확보해 남김없이 사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른 백신도 상황은 비슷하다. 노바백스 백신은 애초 제조사와 2000만명분 구매 계약을 맺었지만 최근 원자재 부족 등 문제로 1000만명분만 오는 6월부터 3분기 내 도입하기로 했다. 나머지 1000만명분은 4분기부터 순차적으로 들어올 예정이라서 11월 집단면역 형성에는 사실상 도움이 안 된다.

정부는 노바백스 백신 1000만명분에라도 기대를 걸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제조사와 기술이전 계약을 맺어, 다른 백신들보다 유연하게 자체 생산·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백신은 아직 글로벌 임상시험이 끝나지 않아 미국과 유럽에서도 아직 사용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산해도 당장 사용할 수 없는 변수가 있다. 이와 관련해 전날 질병청은 "현재 EU와 영국에서 노바백스 백신의 허가 절차가 논의되고 있는 걸로 안다"며 "우리나라도 식약처에서 EU, 영국과 비슷한 시기에 허가와 관련된 자료를 확보하고 허가 절차를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애초 2분기부터 각각 600만명분, 2000만명분을 순차적으로 들여오기로 한 얀센, 모더나 백신도 아직 제조사와 구체적인 도입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초기 물량 대부분을 AZ 백신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도 불안 요소로 작용한다. 이 백신은 1분기부터 고령층 대상 효과 미검증, 접종 후 혈전 발생 등의 논란을 빚으며 수차례 접종이 보류된 바 있지만 대체할 백신이 없어 접종 일정도 그대로 연기돼 왔다. 최근 혈전 발생 위험이 크다고 결론이 나 접종 취소된 30세 미만 대상자 64만명에게 맞힐 대안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AZ 백신의 접종 기피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혈전 발생 우려로 지난 8일 한차례 접종이 보류됐던 보건·특수학교 교사 7만여명은 현재 접종이 재개됐지만 동의율은 68.9%에 그쳤다. 1분기에 같은 백신을 맞았던 65세 미만 요양병원·시설 입소자·종사자의 93.7%가 동의했던 것과 비교하면 두 달도 안 돼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 것이다. 전날 질병청은 이와 관련해 대응책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최대한 접종에 참여하도록 백신의 필요성, 효과, 안전성을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설명할 계획이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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