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진보-보수는 없다, '어느 당'보다 '내 이슈'에 더 민감할뿐"

김미나 2021. 4. 1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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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가 말하는 표심-20대 '남자 셋 여자 셋' 카톡 방담
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단대부고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4·7 재보궐선거가 남긴 정치적 의미는 ‘엠제트(MZ·1980~2000년생)세대’의 발견이다. 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이 흘렀지만, ‘진보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청년 세대가 보수 정당을 지지한 이유는 무엇이며, 왜 성별에 따라 표심이 확연히 갈렸는지를 놓고 정치권은 해석을 내놓기에 분주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0대와 소통하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는 입장문을 내놨고, 국민의힘은 승리의 공을 ‘이남자(20대 남성)’에게 돌리며 이들의 표심을 잡아둘 방책 마련에 나섰다. 과연 엠제트 세대 당사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겨레>는 지난 10일 밤 이들 세대 남성 3명, 여성 3명과 만나 ‘단톡 방담’을 나눠봤다. 방담의 주제는 ‘4·7 재보궐선거 표심으로 보는 20대’였지만 혁신 없는 거대 양당의 한계를 꼬집는 뼈아픈 지적이 여럿 나왔다. 이들에겐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철학보다 ‘내 이슈’에 정당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 대화에 참가한 이들의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다.

“어느 정당이 ‘내 이슈’ 이득되나 고려”

―이번 선거 결과를 바라보며 느꼈던 생각이 궁금하다. 무엇이 선택에 가장 크게 작용했나.

권이연(이하 권)=투표를 통해서 더 나은 정치를 만들 수 있을까? 무력감이 큰 선거였다. 거대 양당 후보 1, 2번에게 기대를 걸기가 어려운 선거였다.

한성주(이하 한)=집권여당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당선이 유력하다는 후보에게도, 제3지대 후보 중에서도 딱히 표를 주고 싶은 사람이 없던 선거였다.

박종현(이하 박)=이번 선거 자체보단 차후 대선 정권교체를 가장 염두에 두고 투표했다.

―출구 조사 결과 20대 이하 남성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몰아줬다. 20대 이하 여성은 오 후보보다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에게 표를 더 많이 줬다. ‘제3후보’를 선택한 비율도 15%를 넘겼다. 이런 간극을 어떻게 해석했나.

홍수영(이하 홍)=20대 여성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대안으로 ‘국민의힘’ 이외의 다른 선택지를 고려했다. 누구보다 이번 보궐 선거의 발생 이유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불법 촬영, 엔(N)번방, 미투 운동 등의 영향으로 ‘페미니스트’를 자임하고 나온 군소후보들에게도 표를 준 것이다. 먼저 우리가 선거의 ‘변수’로 여겨지게 된 점 자체가 고무적이라는 생각이다. 여성의 표심이 정치적으로 많이 고려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소희(이하 송)=20대 여성들이 변화에 대한 열망이 크다고 느꼈다. 젠더 이슈에 더 민감하고 섬세하게 대응할 수 있는 후보자, 정치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여성의 입장에서 봤을 땐 젠더 관련 법안이나 제도가 현저히 적다. 있다고 해도 피부로 잘 와 닿지 않아 이런 부분을 잘 커버해줄 수 있는 후보가 계속해서 지지를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면 20대 남성들의 국민의힘 지지를 두고 ‘보수화됐다’는 평가도 잇달았는데.

이찬일(이하 이)=국민의힘 선거 캠페인이 남성들에게 유효했다거나 2030의 요구를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 ‘갈 곳이 없어서 그나마 큰집으로 갔다’는 생각으로 국민의힘이 반사이익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오 후보 대신) 박 후보를 뽑은 여성들은 이전 선거나 정치 활동에서 보인 국민의힘의 이미지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본다. 젠더 평등은 필요하고, 모두가 더 나은 환경에서 안전하고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반면, 매체 혹은 극단주의를 만나며 젠더 이슈가 변질되고 남녀 간극이 커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남성들은 젠더 갈등이 심화한 시기를 거치며 보수 정권보다 상대적으로 여성 친화적 정책을 많이 펼친 진보 정권에 반감을 가지게 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20대 여성들이 소수 정당에 표심을 표한 부분은 양당 구도에 대한 반발로 해석해도 될까.

=우리는 정당에 대한 관심보다 사회적 이슈에 더 민감하다. 이것이 정치적 무관심이나 성숙하지 못한 정치적 선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국민의힘 모두 청년 현실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 청년 정치를 소수 진보정당에 맡길 게 아니라 거대 양당이 우리 세대를 포섭할 수 있는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같은 맥락에서 ‘20대 남성은 보수, 20대 여성은 진보’라는 보도에 공감할 수 없다. 우리 세대가 진보, 보수 중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고집하기보단 사회적 이슈 등을 바탕으로 유동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워낙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정당과 정책에 대한 부분들이 적극적으로 시민들에게 이야기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생각이다. 정당들은 정책 다양성보다는 중도표를 갖고 오려는 경향 때문에 비슷비슷한 입장들을 내놓을 거 같다. 내가 미는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고려해 자신의 신념과 소신에 투표하는 것이 어렵고, 차선·차악에 투표하게 되는 현상은 안타깝다. 그러니 더욱 사회 이슈에 반응하게 하는 것 같다.

각자도생 시대, 권력 이용한 이득에 반발

―‘공정’ ‘실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앞으로의 선거에서도 이런 것들이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는가.

=노력을 해도 직업을 갖기 어렵고, 내 집을 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들, 금수저 등으로 대표되는 양극화가 심화했다. 이전 정부의 부도덕 등으로 인해 출범된 현 정부는 ‘공정’을 외쳤지만, 지난 정책들을 보면 그러한 공정성에 부합하는 정책이 많았는지 의문이다.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불안정한 청년들의 처지 때문이다. 안정적인 삶, 안전한 삶, 낙오되지 않는 삶이 보장되지 않은 사회에서 누군가가 권력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는 것, 능력도 안 되면서 무임승차하려는 모습은 청년들에게 반발심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다만 공정 담론이 능력주의로 빠져서는 문제 해결이 어려울 것 같다. 능력이 모든 지표가 되는 사회는 아니었으면 한다. 누가 불리한 환경에 처해있고, 부당한 차별을 겪고 있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지를 살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내 경우엔 정의와 도덕성은 사람마다 다 판단 기준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겐 정의지만 다른 사람에겐 불의가 될 수 있다. 그런 이유를 댄다는 것은 개인 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보자의 일관성, 전문성, 여타 능력을 보고선 투표한 이유다.

=나부터도 진보와 보수의 가치보다는 내 개인이 좋아하는 것들, 내 개인에게 득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이 무엇인지를 더 많이 고려하게 된다.

―정당이 어떤 가치를 대변해주길 원하는가.

=애초에 어떤 가치를 일관되게 대변하는 정당이 있는지부터 잘 모르겠다. 이를테면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에서 당 강령에 기본소득을 넣은 것처럼 말이다. 그런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으니 우리는 이슈마다 한계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일관된 정치적 입장 보다는 그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가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젠 ‘386’처럼 한 세대 전체를 묶어주는 일반적이고 공통된 입장을 찾기 어렵다. 다원화된 정치적 입장을 지금의 정당정치에서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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