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 새도시 민간개발 가면 재앙..'투기와 전쟁' 끝까지 벌여야"
LH 직원들 땅투기 고발 기자회견 이끌며 이슈 중심에
"공직자 부패와 광범위한 민간 투기 동시에 주목해야
LH 해체 주장 기막혀..공공주택 공급 기능 강화가 답"
"문재인 정부 주택정책 실패, 오만·소심에 '내로남불' 탓
정책 기조 바꾸면 집값 폭등..오 시장도 함부로 못할 것
저렴한 공공주택 공급 확신 줄 때 주거약자 신뢰 돌아와"
4·7 재보궐선거는 압도적인 ‘부동산 선거’로 끝났다. 선거 과정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 속도전’을 내세워 프레임을 선점했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재건축·재개발 민간 참여’ 공약으로 상대 후보의 하위 프레임을 자처했다. ‘공공 주도 2·4 부동산 공급 대책’에 대한 자기부정 성격도 없지 않았다. 개표 결과는 프레임의 위상차를 그대로 재현했다.
선거운동 시작 전에 ‘엘에이치(LH) 사태’가 먼저 있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일탈이 들춰진 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과 같았다. 그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부동산 정책에 관한 공적 신뢰의 마지노선을 무너뜨리며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특히 ‘주거 약자’들에게는 지난 4년 내내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미덥잖은 부동산 정책의 배후가 비로소 가시화되는 것을 의미했다.
선거는 끝났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는 선거 이후에도 가장 뜨거운 이슈다. 엘에이치 사태가 던진 화두는 무엇인가. 이 열뜬 현상은 우리 사회가 엘에이치 사태가 던진 화두를 진지하게 붙들고 씨름하는 모습으로 봐도 좋은가. 지난 3월2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기자회견을 이끌며 사태의 한가운데 섰던 김남근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위원·민변 개혁입법특위 위원장)와 12일 이 뜨거운 화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재보선 직전에 김 변호사가 국토교통부의 실세라며 제법 그럴싸하게 ‘기자회견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의혹이 언론에 보도됐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음모론이다. 음모나 의혹은 제기하는 사람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지, 의혹을 제기받았으니 해명해야 한다는 것은 억지다. 시민단체에 온 제보를 민변 변호사들과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확인하고 우리 사회가 알아야 할 공익적인 문제라 판단하여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국토부에서 맡은 일이 있었나?
“문재인 정부 들어 ‘관행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는데,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잘못된 부동산 제도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위원회였다. 냉탕온탕 정책을 왔다 갔다 하지 말고 부동산 안정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보편적 정책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공시가격 로드맵을 제시하고, 임대차보호법, 분양가 상한제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을 미리 도입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그 권유들을 그대로 따랐다. 실세가 맞는 거 아닌가?(웃음)
“관료들은 집값이 오르지도 않았는데 왜 규제 정책을 쓰느냐, 임대차법에 대해서도 전월세 가격이 안정돼 있는데 왜 도입하느냐는 입장이었다. 오르면 그때 해도 늦지 않다는 거였다. 위원회가 종료하고 2년 뒤인 2019년, 2020년 집값이 오르고 전세 가격이 오르자 급하게 집값 안정, 임대차 안정 정책을 도입했다. 한마디로 ‘뒷북 행정’이었다.”
―왜 미리 해야 하는 건가?
“오르고 나면 이미 늦은 거다. 과거 경험으로 보면, 박근혜 정부 때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의 집값 상승효과가 문재인 정부 2~3년차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돼 있었다. 미리 보편적인 제도들을 도입했어야 했다. 부동산 정책은 단기적으로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르고 있는 시점에 도입하려니까 부작용도 생길 수밖에 없는 거다.”
―관료의 벽을 넘지 못한 건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주도하는 핵심적 인물들이 오만했던 게 더 큰 이유다. 다른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대출규제나 보유세 강화 제도 등의 도입은 뒷전이었고, 자신들이 충분히 시장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자신하며 ‘핀셋 규제’에만 매달렸다. 값이 오르는 지역을 하나하나 동네별로 지정해 규제한다는 거였는데, 이미 늘어난 유동성에 전국적으로 부동산 거품이 일고 있었다.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정책이었다. 조정 대상 구역으로 지정하려면 1, 2년 집값이 물가상승률보다 높게 올라야 한다. 그걸 분석해 심의하는 데 또 시간이 걸린다. 결국 2년쯤 늦을 수밖에 없다. 이미 집값은 오를 대로 다 오른 뒤에 구역 지정하고 그 안에서만 세금 규제, 대출 규제 하는 것은 전형적인 뒷북행정이다.”
―안이했다고 볼 수 있겠다.
“한편으로는 오만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심했다. 지지자이면서 동시에 부동산 규제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너무 많이 봤다. 취지대로 집값 안정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하는데, 반대 주장의 눈치를 보느라 효과를 살릴 수 있는 수준의 제도를 도입하기보다 생색내기에 급급했다. ‘나도 집 사서 큰돈 벌고 싶다’는 30대 지지자들의 요구 앞에서 디에스아르 도입을 머뭇거렸다. 빚내서 집 사라고는 안 했어도, 그렇게 하는 걸 방조한 셈이다. 그러고는 우리는 규제할 것 다 했다고 하는데, 시기도 놓치고 신속히 효과를 발휘할 만큼의 강도도 아니었다. 지금 같은 수준의 제도라면 다음 정권 중반쯤 가야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다. 그마저 일관성 있게 지속할 때라야 기대할 수 있다.”
―엘에이치 사태의 본질은 공직자의 이해충돌 같은 일탈행위인가?
“적어도 공직자라면 부동산 투기가 이해충돌에 해당한다는 걸 인식하고 있을 텐데, 윤리의식이 집단적으로 바닥이었다. 계 모임 하듯이 돈을 모으고 거액을 대출받아 투기했다. 다만 내부 정보를 이용했을 수도 있고, 이미 투기 붐이 분 걸 알고 쫓아갔을 수도 있다고 본다. 수사를 통해 밝힐 부분이다. 문제는 투기 붐이 일어난 걸 알았다면 이를 차단하기 위해 상부에 보고하고 투기 대책이 나오도록 해야 했는데, 오히려 거꾸로 간 거다.”
―이미 투기 붐이 있었다면 엘에이치 직원들만의 문제로 국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공직자가 광명·시흥지구의 투기를 주도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공직자 투기는 전체 투기의 10% 정도 되지 않을까 추정한다. 그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농지에 대한 투기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에 훨씬 더 주목해야 한다. 이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나 행정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공직자 투기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지 않나. 민간 투기 얘기를 하는 정치인도 언론도 보지 못했다.
“공직자 부패만 너무 부각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국민 분노는 양쪽 모두를 향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부동산 투기가 만연해 있는데, 정부가 이 문제나 집값 안정 같은 민생 문제에는 무관심하고 검찰개혁 같은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진 게 선거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말해, 후보들도 유권자들도 부동산 규제 완화만 바라본 선거 아니었나?
“부동산 기득권층이야 집값 사수를 위한 투표를 했을 거고, 젊은 중산층을 비롯한 주거 약자들이 어떤 선택을 했느냐가 중요한데,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실망감과 ‘내로남불’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반발 투표를 했다고 본다. 문제는 이른바 이미 ‘영끌’을 한 30대들이다. 집값이 안정됐다면 40대쯤 집을 샀을 세대들이 지금 집 사지 않으면 못 산다는 절박함으로 큰 빚을 내서 집을 사고 있어 부동산 거래의 40%를 30대가 차지하고 있다. 채무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계속 집값이 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집값 안정을 국정 목표로 하는 정당을 지지하기 어렵게 된다. 2008년 총선 때도 그랬다.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에 실망해 뒤늦게 빚내서 집 산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 대부분은 뉴타운 광풍에 동조하며 집값을 크게 올리는 정책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기자회견 하고 나서도 상황이 전개되는 걸 보며 이래저래 고심이 많았을 거 같다. 오히려 토건족에게 유리한 지형이 형성된 거 아닌가?
“이렇게 큰 정치적 파문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부담이 분명히 있었다. 3기 새도시를 민간개발로 전환하면 건설사들이 경쟁적으로 비싸게 토지를 사서 성공한 투기를 만들고 결국 비싼 주택이 공급돼 3기 새도시에서 저렴한 분양주택, 저렴한 임대료의 공공임대를 기대하고 있는 젊은층과 서민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공공임대 공급이나 저렴한 주택 공급 같은 엘에이치 고유 목적 사업에 집중해야 하는데, 오히려 엘에이치를 해체하자는 것도 엘에이치와 신도시의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시민단체의 목표와는 역행하는 것이다.”
―지금 여당에서는 보유세 완화, 공시가격 조절 얘기도 나온다.
“나는 오히려 지금이 문재인 정부에서 마지막으로 부동산 투기 억제에 국정을 집중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 오세훈 시장도 재개발·재건축 속도전 표현 썼지만, 2억~3억 오르는 걸 보니까 신중론으로 돌아서잖나. 일방적으로 집값 부추기는 행동으로는 못 나갈 것이다. 30대 젊은층을 비롯한 주거 약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그들은 3기 새도시와 공공개발로 저렴한 공공주택을 마련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다시 돌아설 것이다. 정부·여당이 공공주도 개발 등을 통한 집값 안정의 주도권을 쥐고,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성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 반대로 가면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고, 집값 폭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보수적인 경제학자나 부동산학자들도 3기 새도시를 민간개발로 돌리면 재앙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한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은 임기 끝날 때까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라면?
“노태우 정부 때 1기 신도시 개발하면서 1만5000명 입건하고, 9700명 처벌하고, 구속자도 960명 정도 됐다. 구속자 가운데 139명은 공직자였다. 1년 정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공직사회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부동산 투기를 발본색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부동산 투기 억제를 국정 주요과제로 선정한 문재인 정부라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제대로 꼭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전국 엘에이치 사업 지구의 3~4년치 토지 거래를 모두 들여다보고 특이점이 있는 거래는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집값 안정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문제 아닌가?
“그렇지 않다. 이들이 투기해서 땅값을 올리니까 토지 보상금이 올라가게 된다. 엘에이치의 개발 비용에서 토지 가격이 80%를 차지한다. 개발 비용이 올라가면 분양하는 주택도 비싸질 수밖에 없다. 실입주자 입장에서는 저렴한 주택이 공급될 거라고 기대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기존 주택의 가격 안정도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질 것이고, 반대로 정책 실패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가뜩이나 심한 자산 양극화가 한층 심화될 것이다.”
―앞으로 엘에이치는 어떻게 개혁해야 할까?
“이참에 엘에이치도 고유 목적 사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재정이 없으니 땅 팔고 집 팔아서 남은 돈으로 공공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토지 수용을 통한 개발 규모는 두배가 되고, 공공주택 공급은 절반밖에 못한다. 또다시 새도시를 개발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주택도시기금 같은 데서 과감하게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
―재정이나 금융이 그렇게 중요한가.
“사실 부동산 문제는 금융 문제다. 다른 나라들처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같은 걸 금융의 기본원칙으로 정립해 개인이 돈을 빌려 투기를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가계부채가 미국은 23% 줄고, 독일과 영국도 각각 8%, 5% 줄었다. 한국만 유일하게 25% 늘었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가 가계부채 줄이는 거였는데, 박근혜 정부 때보다 더 늘었다. 코로나 위기가 어느 정도 극복되면 금리가 오를 텐데, 그때가 되면 ‘하우스 푸어’ 문제가 다시 등장할 위험이 크다. 주요 소비층이 빚에 매여 소비를 못하게 되고, 경제가 일본처럼 장기침체가 들어갈 수 있다.”
―다들 ‘집값 안정’을 얘기하는데, 방향이나 수준이 모호하다.
“나는 ‘집값 하향 안정’이라고 말한다. 지금 수준의 집값은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급속히 떨어지면 일본에서처럼 경제에 주는 부담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천천히 지속해서 떨어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렇게 10년만 가면 주택시장은 상당히 안정될 거라고 본다.”
―개혁 입법 활동을 해왔는데, 임기 1년이 남은 문재인 정부에 주문하고 싶은 게 있나?
“지금 부동산뿐 아니라 모든 민생 관련 개혁이 멈춰 서 있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며 문재인 정부에 바란 것은, 우리 사회의 심각해진 불평등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경제적·사회적 대개혁을 하는 거였다. 조금 하는 듯하다가 다 멈춰놓고, 지지층은 검찰개혁 통해 모으면 된다는 안이한 국정운영을 해온 결과가 이번 선거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원래 국민이 기대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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