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구두 뜯고, 오븐에 크레용 굽고..요즘 기업들의 유튜브 생존법

박수지 2021. 4. 1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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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 먹은 골든리트리버가 '검고 긴 물체'를 입에 물더니 놓지를 않는다.

재밌고 자극적인 영상이 넘치는 유튜브 세상에서 기업들은 자리잡기 어렵다.

이에 주요 소비재 기업들이 '자사 제품'을 유튜브 문법에 맞게 경계 없이 갖고 노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제품의 장점을 '은근히' 홍보하는 방식이 주된 전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튜브 인기 아이템인 '먹방'으로 조회수를 확보하는 동시에 지역 소상공인을 돕는다는 명분까지 챙긴 기업의 예능형 홍보영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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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 예능형 홍보영상
기업들, MZ세대와 소통중
골든리트리버가 롱부츠를 입에 물고 터그놀이를 하는 모습. 엘칸토 유튜브 갈무리

세살 먹은 골든리트리버가 ‘검고 긴 물체’를 입에 물더니 놓지를 않는다. 반려견이 입에 물고 있는 장난감을 좌우로 당겨주며 놀아주는 이 ‘터그놀이’ 대상의 정체는 14만2800원짜리 ‘롱부츠’. 힘 좋은 개가 아무리 물고 늘어져도 부츠는 ‘쭈욱’ 잘 늘어난다. 제화 브랜드 엘칸토는 가위로 과감하게 롱부츠를 잘라 해체하는 과정부터 신축성 좋은 스웨이드 원단 부분을 개가 즐겁게 갖고 노는 모습까지 57초 영상에 모두 담았다.

재밌고 자극적인 영상이 넘치는 유튜브 세상에서 기업들은 자리잡기 어렵다. ‘훈화 말씀’같은 홍보 영상은 선택받지 못하기 십상이다. 기업이 개인 유튜버처럼 조회수만을 노린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기도 어렵다. 이에 주요 소비재 기업들이 ‘자사 제품’을 유튜브 문법에 맞게 경계 없이 갖고 노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제품의 장점을 ‘은근히’ 홍보하는 방식이 주된 전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엘칸토가 올해부터 “매월 자신 있게 해체합니다”라는 콘셉트로 선보인 ‘92(구두) 해체쇼’ 시리즈가 그런 사례다. 엘칸토 유튜브에서 단순하게 제품을 소개하는 영상의 조회수는 100회를 넘긴 경우가 많지 않았다. 반면 ‘강아지 터그놀이’ 영상은 약 두달 만에 9만명 가까이 봤다. 엘칸토 관계자는 1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해체쇼는 60년 장인 정신을 이어온 품질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며 “개가 터그놀이로 갖고 놀아도 충분할 만큼 제품의 내구성과 신축성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굽네치킨 유튜브의 ‘굽네실험실’ 시리즈에서 크레용을 오븐에 굽는 모습. 굽네치킨 유튜브 갈무리

식품 기업은 ‘실험’에 보다 적극적이다. 지난 2월부터 ‘굽네치킨’은 유튜브에서 “무엇이든 구워드립니다”는 콘셉트로 1분 남짓한 길이의 ‘굽네실험실’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가상의 수석 실험 연구원 ‘굽보이’가 영상에 등장해 젤리·사과 등을 굽다가, 최근엔 급기야 크레용까지 오븐에 구웠다. 굽네치킨 관계자는 “굽네실험실은 ‘뭐든지 잘 굽는 굽네’의 이미지를 재밌게 전달하기 위해 기획한 콘텐츠”라며 “특히 10~30대를 아우르는 MZ(밀레니얼+Z)세대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간 치킨과 관련 없던 것만 굽던 ‘굽네실험실’은 지난 9일 ‘마늘치킨’을 굽는 과정을 보여주며 신메뉴 출시를 예고하기도 했다.

초대형 꼬북칩을 만드는 모습. 오리온 유튜브 갈무리

오리온은 지난해 9월 출시한 뒤 단기간에 ‘품절 대란’까지 빚은 ‘꼬북칩 초코츄러스맛’을 올해 초 유튜브에서 직접 만들면서 호응을 얻었다. 오리온 연구소 직원이 직접 출연해 ‘기존 제품보다 100배 더 큰’ 사이즈로 말이다. 영상에선 자연스레 ‘4겹에서 느껴지는 크런치(아사삭)한 식감’을 꼬북칩의 특성이 강조되면서 ‘수제 과자’를 만드는 과정의 재미가 함께 드러났다. 13만명이 본 이 영상의 댓글엔 “포카칩을 만들어서 초콜릿에 담갔다 빼는 실험을 보고 싶다”는 등의 ‘실험 요청’도 들어왔다. 오리온 관계자는 “기업의 일방적인 홍보 영상은 재미도 없고 반응도 없다”며 “어떤 영상을 제작하든 ‘고객과 소통하는 쿨한 친구’라는 콘셉트로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씨제이(CJ)대한통운은 본업인 택배에 ‘먹방’(먹는 방송)을 가미한 ‘택슐랭(택배+미슐랭)가이드’로 인기를 얻고 있다. 개그우먼 홍윤화가 엠씨(MC)로 전국 곳곳의 택배기사들의 맛집을 추천받아 게스트와 함께 먹방을 펼친다. 유튜브 인기 아이템인 ‘먹방’으로 조회수를 확보하는 동시에 지역 소상공인을 돕는다는 명분까지 챙긴 기업의 예능형 홍보영상인 셈이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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