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웨이퍼 치켜든 바이든..선택 강요 받는 삼성

심재현 기자 2021. 4. 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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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 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바이든의 압박과 인텔의 화답으로 삼성전자가 점점 더 막다른 길로 몰리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미국 현지시간·한국 기준 13일 새벽) 주재한 백악관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대책 회의를 지켜본 국내 반도체업계의 평가다.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공개되지 않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공개발언과 회의의 취지, 초청 기업 등을 종합할 때 삼성전자가 미국 내 차량용 반도체 생산기지 확보를 고민하는 바이든 정부를 위해 '취임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회의에서 미국 내 반도체 투자 확대를 요청한 직후 인텔이 차량용 반도체 제조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삼성전자의 선택지가 더 줄었다. 팻 겔싱어 인텔 CEO(최고경영자)는 백악관 회의 이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6~9개월 안에 생산한다는 목표로 차량용 반도체 설계업체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주로 PC(개인용 컴퓨터)용 CPU(중앙처리장치)와 서버용 반도체를 제조했던 생산라인을 일부 전환해서라도 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 타개를 추진하는 바이든 정부에 화답하겠다는 발표다. 인텔은 지난달 200억달러(약 22조6000억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투자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바이든 정부가 표방한 '반도체 내셔널리즘'의 강력한 파트너를 자임하고 나선 상태다.


삼성전자는 인텔의 선제적인 발표에도 표면적으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고민이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의 노골적인 투자 압박과 맞물려 글로벌 생산기지 운영 등 반도체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을 두고 예상치 못한 부담을 떠안은 상황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회의에서 "오늘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우리가 어떻게 미국 내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고 미국의 공급망을 보장할 것인지 말하기 위한 것", "우리의 경쟁력은 당신들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달렸다"며 투자 확대를 노골적으로 압박한 이상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공급부족 사태를 빚은 MCU(마이크로 컨트롤 유닛) 등 차량용 반도체는 삼성전자가 주력하는 10㎚(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 안팎의 첨단공정 생산라인이 아니라 30나노 수준의 구식 공정을 활용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신규 투자 대상에서 고려되지 않는 데다 수익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발을 딛기 꺼려지는 분야다.

반도체업계 한 인사는 "기존 생산라인을 차량용 반도체 라인으로 전환할 경우 라인 전환에 들어가는 최소 반년 이상과 생산 기간 동안 상당한 수준의 수익성 감소를 감내해야 한다"며 "1~2년 뒤 차량용 반도체 부족이 풀리면 다시 라인을 기존 제품 생산용으로 돌려야 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손실도 적잖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전략과 발맞춰 다시 기지개를 켠 인텔과의 새로운 경쟁체제도 상당한 부담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산업이 선두로 올라선 데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이 반도체 생산을 포기했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며 "바이든 정부와 인텔이 삼성전자와 TSMC(대만) 등 아시아로 넘어간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 패권을 되찾겠다는 구상으로 움직인다면 삼성전자도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가 일단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파운드리 생산라인 가동률을 높여 차량용 반도체를 포함한 전체 반도체 생산량을 늘리는 방안을 우선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스틴 공장을 포함해 애리조나, 뉴욕 등을 후보지로 검토 중인 미국 현지 파운드리 증·신설 계획을 앞당겨 일부 생산라인을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투자 규모가 기존에 알려진 170억달러(약 20조원) 수준을 넘어설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어느 쪽이든 삼성전자의 글로벌 반도체 포트폴리오 전략에서 시기상으로나 지역적으로 예상치 못한 부담이 커진 게 사실"이라며 "우리 정부도 외교 채널을 통해 국내 반도체업계의 부담을 낮추는 데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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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기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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