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부른 바이든, '반도체 주도권' 찾으면 3가지 잡는다

권다희 기자 2021. 4. 14.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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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에서 주도권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들과 미국 대표 완성차·IT 기업들을 초청해 연 화상회의를 통해서도 이 기조를 재확인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반도체 주도권 탈환 의지’ 강조는 수년간 달라진 미국의 국내외 정치적 환경을 드러내는 단면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관련 회의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웨이퍼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영상 갈무리
① 시장논리대로 가다 '을'이 된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의 '반도체 자립'을 외치게 된 직접적 촉매는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이다. 팬데믹 이후 기업들이 수요 위축을 예상하고 반도체 주문을 줄였지만, 예상보다 훨씬 빨리 수요가 회복되며 전세계·전업계에 반도체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생산을 줄여야 했다.

이런 사태는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미국이 취약한 부분을 부각한 계기가 됐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2000년대 이후 칩 설계에 주력하고 생산을 외부 업체에 위탁하는 모델을 정착시켰다. 이른바 팹리스(Fabless)다. 첨단 기술 연구에 자원을 집중해 경쟁력을 키우려 했던 시장의 선택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반도체 설계에서는 세계 최강국이 됐다.

매출액 기준 세계 최대 팹리스 업체인 퀄컴을 비롯해 브로드컴, AMD, 엔비디아 등 세계적 팹리스가 모두 미국 기업이다. 반도체 생산에 핵심인 반도체 장비 시장도 미국, 네덜란드 ASML, 일본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생산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졌다. TSMC로 대표되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이 팹리스 업체로부터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만드는 모델이 일반화된 데 따른 필연적 결과다.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다 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은 미국 내에서 인텔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하다.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2001년 30개 기업이 반도체 생산을 담당했지만, 지금은 삼성전자, TSMC, 인텔 이 3개 기업이 대부분을 담당한다.

그러다 팬데믹이란 위기가 발생하자 반도체를 생산하는 능력 역시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졌다. 미국 IT, 완성차 기업들이 반도체를 우선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공급망이 미국 영토 안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다는 의미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기 위해선 TSMC에게 반도체를 조달받아야 하는데 TSMC에 주문이 쏠리자 애플은 TSMC에게 ‘을’이 됐고, 제너럴모터스(GM)·포드자동차 등 미 대표 자동차 업체들도 반도체가 없어서 감산에 돌입한 상황이다.

일단은 미 정부가 이런 방향을 드러내자 시장도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다. 바이든 정부에 호응하듯 인텔이 지난달 미국 내 공장을 짓고 파운드리 사업에 재진출하겠다고 공표한 게 대표적이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는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의 반도체 화상회의 후 CNBC 방송과 인터뷰에서 현재 전세계에서 12%인 미국의 반도체 생산량을 3분의 1까지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내놨다.

사진=AFP
②2016년 트럼프에 진 민주당, ‘일자리’ 키운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를 추진하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방점을 두는 또 다른 축은 ‘미국 내 일자리 증대’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월 100일간 반도체·배터리 등 4대 산업 공급망을 검토하도록 지시하자 미 언론들은 이 검토의 목표 중 하나로 미국 내 일자리 확대를 꼽았다. 공급망 재편이란 미국 내 제조업 생산 기반 확충을 뜻하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다.

이 부분은 바이든 행정부의 국내 정치적 필요와 맞물려 있다. 민주당이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한 건 트럼프가 미국 내 일자리와 제조업 강화를 내세운 데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당시 실패를 거울 삼아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기간 가장 앞세웠던 공약은 미국 내 일자리 확충과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가까운 ‘바이 아메리칸(미국산 제품 구매)’이다.

지난달 31일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한 2조25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계획안 이름을 '미국 일자리 계획'으로 명명한 것 역시 이런 의도의 연장선에 있다. 바이든이 이 투자계획을 발표한 장소가 러스트벨트(쇠락 공업지대) 내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란 점 역시 상징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전세계 주요 반도체·IT 기업을 초대해 인프라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한 데엔 공화당 반대를 뚫고 이 안의 의회 통과 동력을 얻으려는 계산도 깔려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프라 투자안 통과는 정치적으로도 바이든에게 중요하다. 2024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이 필요한 바이든 행정부로선 공화당으로의 이탈표를 막아야 하고, 이를 위해 일자리 창출과 미 산업 경쟁력 강화는 핵심 과제라는 점에서다.

동시에 이는 바이든 정부의 딜레마를 드러내는 단면이기도 하다. 바이든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 회복을 강조하지만 산업·통상 부문에선 보호주의를 버리기 어렵다. 중국이 포함된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탄생했지만, 미국이 RCEP의 대항마격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재가입(트럼프 정부가 탈퇴한 후 포괄적·점진적 TPP: CPTPP로 명칭 변경)하기 어려울 거란 전망도 그래서 나온다.

사진=AFP
③중국의 추격 최대한 늦춰라
반도체 주도권 탈환의 핵심 목표 중 하나는 중국 견제다.

지난해 5월 트럼프 정부가 미 의회에 제출한 ‘미국의 대중국 전략’ 보고서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를 명시적으로 드러낸 기점으로 꼽힌다. 이 보고서에서 미 정부는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 실패했다고 결론 내렸다. 2001년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키는 등 중국의 경제적·정치적 개방을 꾀하면 중국이 더 자유로운 사회가 될 거라 믿었지만 이런 전략이 틀렸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앞으로 대중정책을 미국인의 삶의 방식을 보호하고, 미국의 번영을 증진하며, 미국의 영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펼치겠다고 천명했다.

이런 기조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유지되거나 오히려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2월 미 국방부 내 중국 태스크포스(TF)를 신설했는데, 이 TF에 합류한 엘라이 래트너 신미국안보센터 연구원은 앞서 일본·네덜란드와 반도체 생산 및 공급망 다각화를 위해 컨소시엄을 만들자는 주장을 한 인물이다.

이미 반도체 등 첨단기술 공급망을 동맹국들과 구축하자는 구상은 수면 위에 올라왔다. 오는 16일 미일 정상회담 의제 중 하나로 공급망 협력이 오를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이 앞서 보도했다. 단기간 내 미국 내 생산을 끌어 올리는 게 불가능한 미국 입장으로선 고려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이기도 하다. 파운드리 시장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대만이 미중관계에서 지정학적으로 예민한 국가라는 점은 미국에게 지역적으로 공급망을 다각화해야 할 필요를 높인다.

중국 IT 기업들에 대한 제재도 같은 맥락 안에 있다. 미 정부는 중국 파운드리 업체인 중신궈지(SMIC)를 포함해 중국 IT 기업들이 미국 기업과 거래하지 못하게 제재했다. 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에선 중국이 아무리 독자적 성장을 추구해도 아직 미국 기업들의 장비나 소프트웨어 기술이 없이는 질적인 성장이 어렵다. SMIC만 해도 기술력은 삼성전자나 TSMC 같은 파운드리 기업들에 비해 수년 정도 뒤진 걸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도 트럼프 정부가 중국 IT 기업들에게 단행한 제재를 유지하거나 '국가안보 위험' 등의 명분으로 제재를 추가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빠르면 2028년 GDP(국내총생산)에서 미국을 앞설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중국 당국이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집중투자를 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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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다희 기자 dawn27@mt.co.kr, 박가영 기자 park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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