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이 또 경찰총에 숨졌다, 1년만에 ‘미네소타의 악몽’
지난해 미 전역에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를 불렀던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발생한 미네소타주에서 비무장 흑인 청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는 일이 또 벌어져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경찰은 도주하던 용의자를 제압하기 위해 테이저건(권총형 전기충격기)을 쏘려다가 실수로 권총을 꺼내는 바람에 일어난 우발적 사고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경찰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이틀 연속 격렬한 시위를 벌여 ‘제2의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건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 1주기를 한 달 남짓 앞둔 시점에 발생했다.
흑인 청년 단테 라이트(20)는 지난 11일 오후 2시쯤(현지 시각) 미네소타주의 소도시 브루클린센터에서 흰색 뷰익 차량을 몰고 가다가 경찰의 정차 명령을 받았다. 경찰은 “차량 번호판의 유효기간이 지나 있었다”고 설명했다. 차량에 다가간 경찰이 신원을 조회한 결과 라이트의 앞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구체적 혐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범죄와 중범죄 사이의 ‘중경범죄(gross misdemeanor)’라고 한다. 경찰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차에서 내려 손을 뒤로 모으라고 지시했다.
12일 경찰 당국이 공개한 보디캠(몸에 다는 카메라) 녹화 영상을 보면 경찰이 수갑을 채우려는 순간 라이트는 손을 빼고 다시 운전석으로 몸을 던졌다. 수갑을 채우려던 경찰이 운전석에서 저항하는 그를 제압하려고 시도하는 동안, 또 다른 경찰이 다가와 “테이저! 테이저! 테이저!”라고 경고하는 소리가 들린다. 다음 장면에서 경찰이 “제길, 내가 방금 그를 쐈어”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라이트가 탔던 차는 몇 블록을 미끄러져 가서 다른 차를 들이받고 멈췄다. 라이트의 사인은 가슴에 박힌 한 발의 총상이었다. 테이저건 대신 총을 꺼내드는 실수를 한 킴 포터란 경찰관은 26년 경력의 베테랑으로 알려졌다.
무장하지 않은 흑인 청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은 지역 민심을 폭발시켰다. 사건이 발생한 브루클린센터는 작년 5월 25일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 데릭 쇼빈의 무릎에 9분 29초간 목이 짓눌려 숨진 미니애폴리스에서 불과 14㎞, 차로 15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최근 쇼빈에 대한 재판이 시작돼 경찰의 과도한 폭력에 대한 분노가 고조돼 있기도 하다. “단테 라이트를 위한 정의” “단테 라이트는 왜 죽었나” 같은 구호를 앞세운 수백명의 시위대가 11일 브루클린센터 거리로 몰려 나와 경찰과 충돌했다.
밤이 깊어지자 시위는 폭력과 약탈로 격화했다. 월마트, 나이키 등의 상점으로 몰려간 군중이 집기를 부수고 물건을 들어내기 시작했고 현지 언론 미네소타 스타 트리뷴의 한 기자는 “브루클린센터 월마트 주변의 몇몇 상점은 완전히 파괴됐다”고 트위터에 글을 썼다. 주방위군이 동원돼 섬광탄과 최루탄을 이용한 진압 작전을 벌이고서야 시위대는 해산했다.
12일 브루클린센터와 인근 도시 미니애폴리스, 세인트폴에는 통금이 선포됐다. 그러나 분노한 시위대가 오후부터 거리로 나왔고 이날 밤에도 경찰과 시위대 간의 충돌이 재연됐다. 오리건주 포틀랜드 등 미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인종평등과 사법정의를 외치는 시위가 열렸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단테 라이트와 그의 가족 그리고 미국의 흑인들이 매일 경험하는 고통, 분노, 트라우마에 대해 생각한다”며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신뢰를 재건하고 아무도 법 위에 있지 않도록 책임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고 트위터에 썼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사고였는지 의도적인 것이었는지 철저한 수사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며 “약탈과 폭력은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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