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도 안 알려주면서, 공시가 근거 공개?
전국 평균 19.1% 급등한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놓고 지자체와 주택 소유주들의 반발이 확산하는 가운데, 국토교통부가 오는 29일 공시가격 산정 근거를 공개한다. 국토부는 “공시가격을 결정·공시하면서 해당 주택의 특성과 가격 참고 자료를 함께 제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해마다 ‘깜깜이 산정’ 논란이 반복되자 구체적인 산정 근거를 밝혀 주택 소유주의 의구심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공시가격 산정 근거의 핵심인 ‘적정 시세’, 다시 말해 ‘정부가 내 집을 얼마짜리로 판단해 공시가격을 매겼는지’에 대한 정보는 밝히지 않을 예정이다.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선 “반쪽자리 자료 공개라 공시가격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내 집 ‘적정 시세’는 알 수 없어
국토부는 지난해 세종시에서 공시가격 산정 자료를 공개하는 시범 사업을 벌였다. ‘부동산 공시가격 알리미’ 사이트에 공개된 2장짜리 문서에는 2년치(2019·2020년) 공시가격과 주변 편의 시설, 준공연도, 층수, 세대 수, 주차 대수 등의 정보가 있었다. 가격 관련 자료는 해당 아파트나 인근 단지의 전년도 말 실거래가와 한국부동산원이 운영하는 부동산테크가 정한 시세 정보(상한가·하한가)를 담았다.
예를 들어, 세종시 보람동 A아파트 502동 20층(전용면적 84㎡)의 작년 공시가격은 3억79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4.5% 올랐다. 정부가 공시가격 산정에 참고했다고 밝힌 가격은 2019년 12월에 있었던 실거래 두 건이다. 7층 매물이 5억5000만원, 8층은 6억2000만원에 팔렸다. 부동산테크 시세는 상한가 5억4000만원, 하한가 3억5000만원을 기재했다.
그러나 20층에 있는 집을 정부가 얼마짜리로 정했고, 시세의 몇 %를 적용해 3억7900만원이라는 공시가격을 매겼는지는 알 수 없다. 보통 아파트는 저층과 고층 아파트는 수천만 원, 많게는 억 단위로 가격이 달라진다. 지하철역이나 단지 입구가 가까운 동(棟)인지, 조망은 어떤지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진다. 7층짜리가 5억5000만원에 팔렸다고, 20층이 같은 가격일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국토부는 층과 동별로 얼마의 가중치를 뒀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층·위치·향(向)별 효용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했다”는 의견만 달았다.
최근 서초구가 공시가격 오류 사례로 제시한 서초구 B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이 아파트 작년 실거래가는 12억6000만원이었지만, 올해 공시가격은 15억3800만원으로 산정됐다. 국토부는 “유사한 인근 단지의 거래 가격이 18억~22억원 정도로 형성돼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했지만, B아파트의 적정 시세가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적정 시세를 밝히면 현실화율(시세 반영률)이 공개되는데 ‘왜 우리 집과 옆집의 현실화율이 다르냐’는 불필요한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공동주택마다 들쭉날쭉한 현실화율을 2030년까지 9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빌라는 공개 자료 더 부족
대단지 아파트보다 거래가 드문 나 홀로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은 국토부가 공개하는 정보가 더 빈약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세종시 금남면 C빌라는 직전년도 실거래가 없다. 이 때문에 국토부는 500m쯤 떨어진 더 작은 면적의 빌라 정보를 가격 참고 자료로 제시했다. 부동산테크 시세 정보는 아예 공란이었다.
국토부가 개별 가구의 적정 시세를 공개하지 않는 한 공시가격 산정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국민은 (국토부가 산정한) 집 시세가 궁금한데 정부는 ‘간접 가격’만 알려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서초구 관계자는 “국토부는 정확한 시세 정보를 밝히지 않으면서 ‘공시가 산정이 잘못됐다’는 지자체의 문제 제기에 ‘우리가 본 시세와는 다르다’라고만 한다”고 말했다.
정수연 한국감정평가학회장(제주대 교수)은 “미국에선 전문 감정평가사가 모든 주택을 평가하고 담당자 이름을 명시해 우편으로도 보낸다”며 “집주인이 담당자에게 전화해 산정 근거를 물을 수 있고, 필요하면 집주인에게 15쪽에 달하는 설명서를 보내주기도 한다”고 했다. 국내에선 한국부동산원 직원 520여명이 전국 1420만여 가구의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산정하는데 이 중 감정평가사는 200여명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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