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부동산 내전을 끝낼 용기

송기호 변호사 2021. 4. 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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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소득주도성장의 요리가 집에 배달되기 전에 주거안정 대들보가 먼저 무너져 내렸다. 집값과 월세가 폭등하면서 근로자 가구의 일상은 갈아 뭉개졌다. 2018년에 최저임금을 16.4% 올려 집중적으로 지원하려 했던 바로 그 계층이다.

송기호 변호사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서울 근교에서 자기들 힘으로 열심히 알뜰하게 사는 맞벌이 조카 부부가 있다. 볼 때마다 고맙고 예쁘다. 그런데 여섯 살 아이를 둔 결혼 7년차 부부는 올 초에 참으로 힘든 결정을 했다. 아이와 그 동네에서 계속 살기 위해 자신들과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 모아 집을 사야만 했다. 그들이 59㎡(23평형) 아파트를 매입한 가격을 들었을 때 가슴이 턱 막혔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30대 후반의 근로자 부부가 단지 자신의 자녀에게 익숙한 동네, 아이의 친구가 있는 동네를 떠나지 않기 위해 그렇게 무거운 짐을 져야 하다니! 조카 내외가 땀 흘려 저축한 돈, 그리고 집 안팎에서 손끝이 닳도록 당기고 끌어 모은 돈은 누구의 불로소득이 되었을까 생각하니 화가 났다.

근로자 70%가 월급 300만원 이하로 사는 경제에서 지금의 집값과 월세는 구조적 착취이다. 특히 월세로 보통 50만원이 넘는 돈을 내는 청년세대에게는 더 그렇다. 청년을 위한 집을 지을 땅이 부족하다고 하여 땅을 수입할 수는 없다. 착취는 뿌리 깊다. 체계적이다. 부동산 값이 올라야 돌아가는 경제가 ‘정상’이 된 지 70년째이다. ‘판자촌’이 상징하듯이 1960년대 경제개발시대 때부터 주거안정을 위한 공공서비스가 없었다. 민간 회사가 주택 공급을 주도하려면 주택 가격이 쉬지 않고 올라야 했다.

아파트 건설이 ‘공익사업’이라면서 농민에게 농지를 ‘빼앗아’ 놓곤 막상 땅은 건설회사에 팔아버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모순이 일상이 되었다. 이 경우, 국가는 도로나 댐과 같은 공적 사회기반시설이 아니라 건설회사의 사적 돈벌이에 농지를 던져주는 폭력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1가구 1주택 양도세 면제 제도가 부동산 불로소득을 지켜주면서 부동산 불패 신화가 완성되었다.

집값이 올라야 이로운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의 눈치를 보게 되면 결국 집값은 폭등하고 주거안정은 깨진다. 그러면 정권을 유지하기 어렵다. 역설적으로, 집값이 오르면 오를수록 오히려 집을 가진 소유자들은 똘똘 뭉쳐 세금 증가 반대 투표에 나선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투표를 하지 않거나 항의하는 투표를 할 것이다. 부동산이 정치를 삼켜버린다. 부동산 내전이다.

부동산 전쟁을 끝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부동산 불로소득의 오랜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강단이 필요하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모든 국민이 토지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대규모 택지를 민간 건설사에 팔지 말고 공공이 택지를 보유하는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 거주자에게 일정 지분을 제공하는 다양한 방식의 공공택지주택을 더 많이 보급해야 한다.

여기에 가장 잘 맞는 정책이 부동산보유세, 특히 토지보유세다. 부동산 가격은 결국 땅값이다. 전국의 모든 토지를 인별 합산하고, 공시지가를 과세표준으로 해서 모든 토지에 비과세 감면 없이 과세한다. 이 돈을 재원으로 하여, 공공이 택지를 보유하는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보유세 강화 정책을 최초로 궤도에 올린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의 보유세 강화 정책을 무산시켰다. 만일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보유세 강화가 자리 잡았다면 부동산 문제를 더 일찍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2018년 7월 재정개혁특별위원회와 기획재정부가 내어놓은 보유세 개편 방안은 주거안정을 원하는 국민적 여망에 미흡했다. 겨우 약 7400억원의 종부세 증가에 지나지 않았다. 같은 해 ‘9·13 대책’도 주거안정을 위한 본질적 접근이 되지 않았다. 종부세 세수 증가 효과는 약 1조원에 불과하였다. 여기에 1가구 1주택 양도세 면세가 맞물려 ‘똘똘한 한 채’로 표현되는 집값 폭등이 시작하였다. 그해 시작했던 소득주도성장의 열매를 태워버렸다.

조선시대 실학자 최한기는 그 시대의 백성들이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가 도덕적 선악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지금 집이 있는 국민들은 대부분 집값이 오르기를 바란다. 1가구 1주택 양도세 면세를 계속 누리려 한다. 그러나 더 많은 국민들은 주거의 안정을 원한다. 더 많은 국민들이 좋아하는 일을 용기있게 해야 한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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