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스님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국수, 싫어하는 음식은 의외로..
◇ 스님들 사이에 국수 별칭은 ‘승소'
서울 조계사 바로 앞에 조계사 신도들을 위한 국숫집이 있습니다. 옥호(屋號)는 승소(僧笑)입니다. ‘스님이 웃는다’는 뜻이지요. 현재는 코로나 19 때문에 식당 내 취식은 못하고 조계사에서 봉사하는 신도들을 위해 컵밥만 포장 판매하고 있지만 지난 2011년 이 집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신도들 사이에 인기는 대단했지요. 잔치국수, 비빔국수와 미역 옹심이가 기본 메뉴이고, 계절별로 열무 냉국수와 떡국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지요. ‘승소’라는 이름은 스님들 사이에서 국수를 부르는 별칭입니다. 국수 이야기만 들어도 스님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는 뜻에서 붙은 별칭입니다. 당시 조계사 주지였던 토진 스님은 국숫집을 열면서 ‘승소’를 아예 옥호로 달았던 것이지요.
스님들의 국수 사랑은 유명합니다. 매년 음력 정월 26일 법정(法頂) 스님의 추모 다례재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상에 올라가는 음식이 ‘간장 국수’입니다. 생전에 그만큼 즐기셨다는 이야기이지요. 스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거 음식이 귀하던 시절, 국수만한 별식이 없었다고 합니다.
◇ 김장김치 아껴 먹으라고 소금 왕창 뿌리기도
70년대까지도 절 살림은 가난했습니다. 1950년대말 청담 스님이 해인사 주지를 맡았던 시절, 김장독에 소금을 뿌렸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해 가을 해인사 김장은 심심하고 맛있게 담가졌다고 합니다. 김장김치가 맛있으니 젊은 스님들 식욕이 동했겠지요. 김치와 밥 소비량이 급격히 늘었다고 합니다. 한 보름쯤 지났을 때 공양간(식당)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답니다. “어떤 놈이 김치에 소금을 이렇게 뿌렸나!” 그 맛있던 김장김치가 갑자기 소태로 변했답니다. 알고보니 ‘범인’(?)은 주지 청담 스님이었답니다.
일반 스님들 입장에서야 간이 심심한 김치가 맛있겠지만, 절 살림을 감당해야 하는 주지 스님 입장에선 고민이었겠지요. 김장김치는 봄까지 먹어야 하는데 겨울이 가기 전에 떨어질 판이 됐거든요. 게다가 해인사는 예나 지금이나 국내 어느 사찰보다 상주 인구가 많은 절이거든요. 그래서 밤에 몰래 김장김치 독마다 소금을 잔뜩 뿌렸고, 덕택에 그해 겨울도 밥과 김치 소비량이 잘 ‘관리’(?)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인사의 ‘짠 김치’ 전통은 그대로 이어지는 모양입니다. 제가 10여년 전 해인사에서 먹었던 김치의 짠 맛은 지금도 혀끝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듯합니다. 당시에 함께 출장 갔던 사진부 선배는 식탐이 좀 있는 분이었는데, 접시에 김치를 잔뜩 쌓아왔다가 그걸 꾸역꾸역 다 먹느라 엄청나게 고생했습니다.
◇ “칼국수 끓인다” 소식엔 온 절이 들썩들썩
그렇게 먹을 게 귀하던 시절에 ‘오늘 점심엔 칼국수 끓인다’는 소문이 나면 온 절이 들썩들썩하고 스님들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쌀도 귀해서 툭하면 죽을 끓여 양을 늘려 먹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노스님들은 편찮으셔도 시봉하는 이가 “스님, 죽 끓여왔습니다”라고 여쭈면 “됐다. 생각 없다” 하다가도 “스님, 국수 삶아드릴까요” 여쭈면 “그래?”하며 벌떡 일어나시곤 했다지요. 몇 년 전 한 원로 스님은 제자들과 함께 해외 성지순례를 갔다가 10인분쯤 되는 국수를 거의 혼자서 드신 적도 있다고 합니다. 밥 10인분은 못 먹어도 국수 10인분은 먹을 정도로 국수를 좋아한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고수와 국수 싫어하는 스님이 있다면 좀 이상한 스님’이란 말도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도 스님들은 잔치국수, 칼국수뿐 아니라 파스타까지 국수라면 거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아합니다.
◇ 소식한 성철 스님은 국수도 안 즐겨
그럼, 성철 스님은 어떠셨을까요? 성철 스님을 평생 시봉한 원택 스님은 “국수 삶아드린 기억은 없다”고 하시네요. 성철 스님은 젊은 시절 20년 가까이 쌀과 솔잎 등을 익히지 않고 생식(生食)하다가 그 후로는 익힌 음식을 드셨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성철 스님은 뭔가 남다른 분이었습니다. 익힌 음식을 드시긴 했지만 엄청난 소식이었다고 합니다. 원택 스님에 따르면 어린이 밥공기만한 그릇에 밥을 담고 콩, 당근 몇 조각과 솔잎 등에 표고버섯과 당근, 감자 등을 넣은 국 정도만 드셨다고 합니다. 그것도 소금을 넣지 않은 무염식(無鹽食)으로요. 성철 스님은 이렇게 적은 양의 식사도 거의 30분에 걸쳐 천천히 드셨다고 합니다. 쌀알이 거의 물처럼 될 때까지 씹고 또 씹는 식이었지요. 몸도 정신도 맑게 유지한 성철 스님만의 비결이었던 셈입니다. 덕택에 성철 스님은 소화제 같은 것은 구경도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제자들이 밥 많이 먹고 소화가 안 돼 쩔쩔 매는 꼴도 못 보셨다지요. 그래서 지금도 성철 스님이 거처로 삼았던 해인사 백련암 약통에 소화제는 없답니다. 성철 스님은 10년에 한 번, 노년에 들어선 5년에 한 번 정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진단 결과는 ‘영양실조’였답니다. 요즘 사람들은 나트륨 섭취를 줄이려고 애쓰는데, 성철 스님은 반대로 나트륨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도 성철 스님의 사진을 보면 체격이 큰 편인데 어떻게 그렇게 소식으로 버티셨는지 의사들까지도 신기하게 여겼다지요.
◇ 요즘 스님들이 싫어하는 음식은 산채 비빔밥
앞에서 옛 스님들이 죽을 싫어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요즘 스님들은 어떤 음식을 싫어하실까요? 아마 많은 스님들이 “산채비빔밥!(혹은 산채 정식)”이라고 외칠 것 같습니다. 산나물을 가끔 먹는 불자들 입장에서 스님들에게 식사 대접할 때 나름대로 배려해서 산채비빔밥 식당으로 모시는 경우가 있는데, 스님들 입장에선 산나물은 거의 끼니때마다 상에 오르거든요. 스님들과 식사 약속을 잡고 싶다면 “국수 한 그릇 하실까요?”라며 물으면 십중팔구 ‘오케이’일 겁니다. 일상을 짓누르는 이 코로나 먹구름이 걷히고 ‘승소’가 다시 문을 열어 신도들이 맘 편히 국수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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