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생명의 계절

남상훈 2021. 4. 1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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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다.

곳곳에 역병의 기운이 음험하게 도사리고 있는데도 봄은 다시 찾아왔고, 생명의 기운들이 사방에 충만하다.

하긴 다시 맞는 이 봄에 고맙지 않은 것이 있을까.

연일 역병으로 사망자 수를 갈아치우는 이 아슬아슬한 세상에서 다시 맞는 이 봄은 선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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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다. 봄. 봄이라는 말이 입안에 상큼한 진동과 함께 향기롭게 감긴다. 지금까지 살면서 수십 번의 봄을 맞았고, 그 봄들은 각기 다른 기억과 추억으로 내 생에 저장돼 있다. 아름답거나, 찬란하거나 슬프거나 혹은, 비통하거나. 해마다 봄은 사연을 달리하고 빛깔을 달리하며 내 생을 수놓았다. 그 봄들 위로 올봄이 더해진다. 그동안 축적된 시간의 층위로 한 켜가 더 쌓인다. 지난봄들 가운데서, 내가 맞고 보낸 그 수십 번의 봄들 가운데서도, 올봄은 유난히 애틋하고 고맙고, 감사하다. 곳곳에 역병의 기운이 음험하게 도사리고 있는데도 봄은 다시 찾아왔고, 생명의 기운들이 사방에 충만하다. 고맙게도 올봄은 비가 인색하지 않아서 생명의 기운이 더 왕성하다. 한 번씩 봄비가 내릴 때마다 꽁꽁 얼었던 동토는 부풀어 오르고, 나무들은 부지런히 물관에 양분을 실어나르며 연둣빛을 띠었다. 연둣빛은 신호이고 시작이고, 생기였다. 튀밥 터지듯 꽃망울을 터트리는 꽃들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 또한 환해진다. 정말, 도처에 꽃이다. 목련꽃은 다시 흰속살을 드러내고, 벚꽃은 사태진 듯 화르륵, 피었다가 다시 꽃눈으로 세상을 밝힌다. 노랑, 연두, 분홍, 흰색…. 봄의 색들은 순하다. 순해서 더 애틋하다.

나도 봄의 생명들처럼 나만의 색을 갖고 싶고 향기를 지니고 싶다. 독하지 않고 진하지 않은, 주변의 생명들과 조화를 이루고, 사람들에게 위안과 위로를 주는 그런 색깔과 향기 말이다. 어디 꽃뿐일까. 아파트 입구 초입에서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들도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그동안 집안에 꽁꽁 숨어 있던 아이들도 햇빛을 좇아 나와 층간소음 걱정 없이 햇빛 속을 강중거린다. 다행히 할머니들은 모두 무사하고 건강해 보인다. 몸피가 큰 할머니도 보이고, 키 작은 할머니도 보이고, 유난히 손마디가 굵은 할머니도 보인다. 어김없이 할머니들 앞에는 봄의 기운을 머금은 푸성귀가 펼쳐져 있다. 할머니들은 추위도 채 가시기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생명들을 키워냈을 것이다. 그 할머니들의 생명에 대한 희구와 삶에 대한 자세가 이 봄에 더 눈부시다. 하긴 다시 맞는 이 봄에 고맙지 않은 것이 있을까.

연일 역병으로 사망자 수를 갈아치우는 이 아슬아슬한 세상에서 다시 맞는 이 봄은 선물인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게 주어지는 하루하루가 덤이자,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니 더 감사할 일이다. 제 아무리 역병의 위세가 기세등등하다지만 삶에 대한 희망까지 꺾을 수는 없다. 역병이 수그러들지 않고 우리를 위협하면 그에 맞춰 계획을 수정하고, 다시 이어가면 된다. 내일에 대한 희망을 놓아버리는 일, 죽음은 그것이 아니겠는가. 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할머니들이 남은 생을 무력하게 방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언 땅을 갈고 씨를 뿌려 새 푸성귀를 키우듯, 그렇게 하루하루 씨뿌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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