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전당대회서 최고위원 뽑으면 '친문' 지도부 되나요?
여의도에는 다양성이 존재할까요? 세상엔 청년, 여성, 성소수자뿐 아니라 각자의 다양한 의견을 가진 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여의도 정치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해줄 이들은 마땅치 않습니다. 주류의 의견이 아니면 무시되거나 공격을 당하기도 하죠. 여의도 정치의 다양성을 꿈꿔봅니다.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최고위원들을 중앙위원회가 아닌 전당대회에서 선출하기로 결정을 바꿨습니다. 일부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당대회를 거칠 경우 권리당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친문 강경 지지자들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돼 또다시 친문 일색의 지도부가 구성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당대회를 통해 최고위원을 뽑으면 친문 성향의 의원들만 당선되는 걸까요? 중앙위 선출과 전당대회 선출은 어떻게 다를까요?
원칙대로라면 전국의 당원을 대표하는 당의 최고대의기관인 전국대의원대회(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게 맞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당헌·당규를 보면, 당대표와 최고위원의 선출은 전국대의원대회(전당대회)를 통하도록 돼 있습니다. 다만, 정당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그 권한의 일부를 중앙위원회에 위임할 수 있도록 했을 뿐이죠. 한 두 명의 최고위원을 뽑아야 하는 경우가 생겼을 때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전당대회 대신 약식으로 중앙위가 이를 대체할 수는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당 지도부 전원이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총 사퇴를 했을 때 중앙위를 통해 최고위원만 따로 뽑는 경우는 거의 전례가 없었습니다.
전대가 정당성은 있지만 ‘새 얼굴’ 진입장벽 높아
그럼에도 애초 최고위원을 중앙위에서 선출하기로 한 것은 대선을 앞둔 비상 상황에서 지도부의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까지 함께 전당대회를 치르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고 자칫하면 전대 연기론까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과 당원들 중심으로 이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자 비대위가 다시 입장을 바꾼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부 초·재선의원들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민심과 당심이 다르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또다시 ‘당심’이 중심이 되어 친문 성향의 지도부를 구성하게 되면 쇄신과 개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을 포함해 시·도당위원장 및 지역위원장, 시·도지사, 시장·군수 등 선출직 대표들로 구성된 700~800명의 선거인단이 투표를 하는 중앙위 선거와 달리 전당대회의 규모는 훨씬 큽니다. 전당대회에는 매달 당비를 내며 정부와 당의 주요 정책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권리당원들의 의견이 40% 비율로 반영되는데, 이들은 특히 일반당원과 달리 강성 친문 성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실제로 지난해 8·29 전당대회 때 최고위원 선거에 나선 김종민 의원이 대의원 투표에선 4위에 그쳤지만, 권리당원 투표에서 압도적 1위를 하면서 전체 1위로 뽑힌 것이 그 예입니다. 김 의원은 2019년 ‘조국 사태’ 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엄호하는 강성 발언을 하면서 권리당원의 마음을 얻었다는 풀이가 나왔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12일 열린 민주당 재선 모임을 마친 조응천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전당대회 선출을) 주장하는 분(의원)들은 전당대회를 하면 메리트(이점)가 있는 분들”이라며 “(이들이) 사흘에 걸쳐서 줄기차게 이야기해서 (비대위 결정을) 엎어버렸다. 자기 기득권을 못 버린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날 비공개로 열린 열린 민주당 재선 모임에서도 비슷한 의견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재선 모임 뒤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몇명이 최고위원 전당대회 선출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며 “지난 선거에서도 지도부를 포함해 친문을 의식한 듯한 발언들 일색이라 다양성이 반영되지 못했던 거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전당대회를 통해 최고위원을 선출하게 되면 인지도에서 밀리고 ‘소신 발언’으로 뭇매를 맞는 초선들이 최고위원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규모가 큰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나서는 것은 선거운동 비용 측면에서도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한 초선의원은 “전당대회를 거치게 되면 친문 당원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뿐만 아니라 선거운동을 위한 비용도 많이 들어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는 초선들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줄어든다”며 “중앙위를 거치게 되면 전국적인 지명도가 없어도 당내에서 신망을 얻은 이들은 도전해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선거에서 참패한 뒤 사실상의 비상 지도부를 구성하는 상황이라면 ‘정당성’을 갖춘 당 최고대의기관인 전당대회를 통해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와이티엔>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와 함께 선출하는 게 이치적으로 당연하고 마땅하다”며 “처음부터 그렇게 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엇갈리는 전망…‘중앙위든 전당대회든 다 친문’ VS 민주당 위기감 반영될 것
또한 선출직 대표들로 구성된 중앙위도 친문 성향이 대부분이라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우리 당이 전체적으로 친문 일색인 점을 비춰보면 중앙위에서 선출하는 것과 전당대회를 통하는 것에 대해 큰 차이가 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전당대회는 지난해와 판이한 상황에서 치러진다는 것이 변수입니다. 지난해 전당대회와는 다른 당 안팎의 분위기도 변수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굳건했던 지난해 전당대회와는 달리 현재는 재·보궐 선거 참패 뒤 국정 지지율과 함께 당 지지율도 추락한 상황입니다. 2017년 대선 이후 민주당이 처음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은 중앙위원들도, 권리당원들도 다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친문 일색의 지도부가 또다시 등장할 경우에 대한 위기감도 상당하기 때문에 당원들의 선택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의원 45%, 권리당원 40%, 국민 10%, 일반당원 5%로 정해진 전당대회 투표율 반영 비율을 조정할 여지도 남아 있습니다.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는 12일 전당대회에서 일반당원과 국민의 투표 반영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전준위 안에서는 전당대회가 얼마 남지 않아 물리적으로 조정이 어렵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강성 지지자로 구성된 권리당원의 의견보다는 일반당원이나 국민 등 ‘민심’을 더 많이 반영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습니다. 대선을 1년도 채 앞두지 않은 시기에 민주당원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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